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337 김수환 추기경님, 먼저 용서를 빌어야겠습니다. 처음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접하는 순간 '슬픔'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제 힘없고 가난한 약자들은 누구의 품에서 안식을 찾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이 땅의 약자들은 여전히 권력과 자본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생존권을 지키려는 약자들이 공권력의 잔혹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일궈놓은 민주주의는 하루하루 무너지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계셨어야 했습니다.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1972년 인천 동일방직의 어린 여공들이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기업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권익을 찾으려는 몸부림이었지요. 박정희 정권과 기업주는 잔인했습니다. 10대의 여공들을 난폭하게 구타하고 인분(人糞)까지 뿌려댔지요. 기동경찰은 노조 회의장에 난입해 노조원들에게 몽둥이찜질을 가했습니다. 사복경찰들은 어린 여동생 혹은 딸쯤 되는 여공들이 인분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낄낄댔다지요? 권력과 자본이 합동으로 힘없는 노동자를 무참하게 짓밟은 것입니다. 당시 겁에 질린 채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어린 여공 30여명을 본 김 추기경께서 이렇게 분노를 터트리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사람을 짓밟고 울려야 합니까? 이 나라 법은 약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까? 힘없는 이들을 계속 짓밟으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추기경님, 그 이후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1972년의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과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동일방직 여공들은 인분을 뒤집어썼을지언정 용산 철거민들처럼 뜨거운 화염 속에서 무참하게 죽지는 않았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나를 밟고 가라"며 든든하게 지켜주신 성당 안에서 동일방직 여공들은 안전할 수 있었지만, 철거민들은 한 겨울에 물대포를 맞고 꽁꽁 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6명의 귀중한 인명을 앗아간 참사를 일으킨 정권이 사과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을 알카에다식 자살폭탄 테러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군포 연쇄 살인 사건'을 활용해 '용산 철거민 참사'를 덮으려는 후안무치한 행각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거기다 그런 일이 없다며 거짓말까지 했으니 세상에 이런 뻔뻔스럽고 부도덕한 정권이 동서고금에 있었을까요?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때도 추기경님은 약자 편에서 일갈하셨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그래도 전두환 정권은 순진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고문 경찰관의 책임으로 돌렸으니까요. 지금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철거민들이 철거민들을 죽였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강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추기경님,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장로입니다. 입만 열만 예수님을 찾는 분입니다. 시장 좌판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쫓겨날 처지에 놓인 지하 셋방의 모녀 이야기를 전하며 신 빈곤층 대책을 강구하라고 하는 대통령입니다. 얼핏 보면 참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 대통령 같습니다. 그러나 TV와 신문 등 '매스컴 쇼'만 끝나면 돌아서서는 복지예산을 깎아버립니다. 가난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건설회사들의 아파트 장사와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돕는 무리한 재개발 사업을 예수께서 과연 반기셨을까요?
예수님은 약자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과 결탁한 종교지도자들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사사건건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바리사이파들의 위선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이명박 장로는 과연 예수의 길을 따르고 있는 걸까요? 이명박 장로가 '짝퉁 장로'일까요? 아니면 '짝퉁 예수'를 믿는 걸까요?
추기경님, 저 '짝퉁 예수'들이 득시글한 이 세상에 우리들만 홀로 남겨두고 가셨지만 추기경님은 하늘에서도 약자들을 감싸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땅을 밟고 사는 저희들도 저들이 계속 짓밟으면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기경님, 주님 곁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고, 또한 늘 약자들을 지켜주소서.
세례자 요한 박상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