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반말로 작성함을 하해와 같은 마음씨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11월 11일. 한가로운(파리 날리는) 매장 전면 창문 너머로 빼빼로 노나먹는 커플...들 구경하며 내일 있을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다, 문득 약 40년 전 이맘 때 쯤 군생활 중이셨을 할아버지의 군대 이야기가 생각나 글을 쓴다.
1932년생이신 필자의 할아버지께선 군생활을 두번 하셨다고 한다.
만으로 18살이 되던 해.
6.25 전쟁이 터지면서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셨다.
제주도에서 내륙으로 들어와 필자의 고향, 전남 어느 구석마을에 터를 잡자마자 증조부께서 강제 징용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일찍 등지시고 대신 가장의 역할을 짊어지고 계시던 할아버지에겐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옆집의, 이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시는 친구가 강제로 징집당해 트럭에 올라탈 때 할아버지의 집에도 어김없이 징집관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하늘이 도우셨음인가.
영락없이 끌려가는 구나 싶었으나 집안에 18세 이상의 성인 남성이 할아버지 한영 뿐이었기에(둘째, 셋째 작은 할아버지는 당시 징집연령보다 어리셨다.) 징집관은 별 말 없이 돌아갔다.
그 날은 온 동네가 줄초상이 난 것 처럼 울음이 그칠 줄 몰랐다고 당신은 기억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방향으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기나긴 피란길에 오르고, 겨우 겨우 생면부지의 부산에 도착해 난민촌이나 다름 없는 곳에서 근 2년을 버티셨다.
그 곳에서, 할아버지는 징집되셨다.
징집연령이 된 동생(작은할아버지) 대신 스스로 가겠노라 징집관에게 말하고 증조모께 집에 돌아가 계시면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겠다 말씀하시고 입대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은 작은할아버지께서 말해주셨고, 정확히 기억하시진 못하셨지만 1953년 4~5월 경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전쟁은 기초군사훈련이 끝나고 전선으로 이동해 배치되자마자 끝났고, 약 2년여간을 더 복무하시다 징집이 해제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징집해제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께선 그냥 오라고 해서 갔고 가라고 하니 오셨다고... 당시 병사들 인사관리가 보통 개판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수년만에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눈물겨운 해후를 보낸 할아버지는 다시 가장으로써, 농부가 되어 가족을 분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셨고, 그렇게 약 3년이 지난 어느 날.
영장을 받으셨다.(응???)
난리통에 기록이 안된건지, 기록 자체가 유실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장이 나왔다.(X친...)
하지만 당시 농사나 짓던 시골 청년이 무얼 알겠으며, 알아도 어떻게 항의를 할 것인가.
할아버지는 그렇게 두번째 입대를 하시게 된다.
(둘째 할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형이 죽을 고생을 했다며 아직까지도 할아버지께 미안해 하신다. 정작 당사자는 무덤덤하신 것이 함정.)
졸지에 이등병 계급으로 다시 돌아온 휴전선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전쟁을 겪은 부사관/장교가 넘쳐나는 탓에 군기 잡기가 엄청났다고...
전방 초소에서는 연일 교전이 났느니, 경계를 서던 병사들 목이 따였다느니 소문(실제로 목없는 시신을 운반한 적도 있었다고 하신다.)이 그칠 날이 없었고, 그 때 마다 지휘관과 고참들의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지금이야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전쟁이 막 끝난 당시의 군대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보급마저 열악했을 것을 생각하면 말해 무엇하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특정 당/특정 집단에서 군 관련 이야기를 지껄이면 더욱 피가 거꾸로 솟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무겁다면 무거운 이야기인데, 이젠 좀 가벼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두번째 복무를 하던 시절.
보급이 부실하니 부족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대에 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초도 보급품, 그것도 속옷이 남아나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적자면,
'소대장놈들이 검사할 때 처음 노나준 고대로 없으믄 죽도록 패는거여. 군기가 빠졌다문서. 그니까 신병이 오믄 고참들이 다 가져가버리는 거여. 그럼 쫄병들은 어찌냐, 고참들 마냥 뺏을 수가 없응께 그냥 빨래 하고 널려있는거 그냥 돌라(훔쳐)왔었제.'
비단 속옷뿐만 아니었는데, 전투모는 그 물품 부족 현상의 최고봉이었다.
고참이, 간부가 몇개씩 빼돌려버리니 남아날 수가 있나.
'쫄병들이 별 수 있나. 넘으(남의) 거 돌라(훔쳐)야제.'
여기서 좀 재미있는 상황이 나온다.
도난 빈도가 가장 높은 전투모가 집중적으로 도난당하는 시간은 훈련시간도, 취침시간도, 식사시간도 아닌
바로
'똥간에서 똥 누고 있을 때, 모자를 우게(위쪽에) 걸어두는디, 고걸 획 채서 도망가. 그러믄 모자 주인이 똥 누다 말고 엉거주춤 허니 뛰나와. 근데 돌라간 놈은 폴쎄(벌써) 도망가부렀지.'
피해자는 창졸간에 모자를 도난당한 것도 모자라 채 떨어지지 않은 변칠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은 누군가 소대장의 모자를 잘못 훔치는 바람에 소대 전체가 기합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저녁도 못먹고 기합을 받은 탓에 잔뜩 날이 섰지만 고약한 고참 몇놈이 화풀이 삼아 기합을 준 것을 빼곤 다들 소대장을 욕하고 마는 분위기였다.
설마 자기 소대장 모자를 못알아봐서 훔칠 정신머리 없는 놈이 있겠느냐, 다른 소대 몹쓸놈이 훔쳤겠거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다른 소대 누군가의 모자를 자기 모자와 바꾸셨다고 한다.
'아따, 아직도 김xx병장(당시 이병. 할아버지 맞고참) 빠따 맞은거 생각하믄 미안해 죽것어야.'
그런데 껄껄 웃으시는거 보면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으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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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이야기는 하나 더 있는데, 나중에 시간 나면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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