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저와 생각이 비슷한 분을 만났습니다. 어찌나 비슷한지 그분은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산 적이 있는게 아니냐고 의심까지 하셨습니다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 나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하지요.
수학과 관련하여 몇가지 화두를 던져주셨는데, 그것에 답하는 식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그냥 최근에 제가 생각하던 것들을 적어보는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써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연필로 그린 선을 깔끔하게 펜으로 정리하는 것을 선따기라고 합니다. 며칠간 시도하다가 도저히 못해먹겠어서 이거 어떻게 컴퓨터로 할 수 없나 찾아보려고 '자동선따기' 로 검색을 시도해보았더니,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자동선따기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고 하더군요.
그럴듯합니다.
절 놀라게 한건 이게 아니라, 최근에 연구중인건 선을 대신 따는걸 넘어서서 아예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잔뜩 입력해서 교육시켜, 그 화가의 그림처럼 따라그리는 인공지능이 개발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맨 위의 그림은 렘브란트가 그린게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컴퓨터가 3D프린터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손이 거쳐야 가능하지만, 사람 없어도 되는 지경에 이르면.. 화가는 무슨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수학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어느 비관적인 책에서 읽기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찾는건 무의미하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인공지능은 결국 모든 걸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날은 얼마나 빨리 올 것인가? 수학자는 얼마나 빨리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수학 하기'라는 것은 어떤 능력을 필요로 하는가?
-인간의 어떤 면이 수학을 할 수 있게 하는가?
1.
우리의 수학교육은 수를 세는것부터 시작합니다. 덧셈뺄셈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10+15를 계산한다고 하면 왠지 수학이라는 이름은 너무 거창해보입니다. 단순해보이는게 일단 이유지요. 이런건 산수-수를 산한다- 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중학교때 국사선생님이 (어떤 포인트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런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건 수학보다는 산수에 가깝다. 이차방정식 푸는게 어디가 수학이냐? 배우는건 수학이겠다만..' 확실히 근의 공식을 외운 뒤에 a자리에 최고차항의 계수, b자리에 일차항의 계수, c자리에 상수항을 넣고 계산돌리는건 수학하곤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근데 그렇게 치면, 어지간한 건 다 산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차방정식 풀이가 산수면 계산법을 배운 뒤의 함수에 대한 미적분도 산수죠. 미분방정식도 산수입니다. 겁나 고급적인 산수가 되겠네여. ........근데, 이렇게 치면 대체 산수가 아닌건 뭐죠? .. 수학은 뭐죠?
비둘기가 4마리가 있는데, 집은 3개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머리를 굴려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집의 수가 비둘기 수보다 모자르니까. 모든 비둘기가 자기 집을 가질 수는 없다.
-어떤 비둘기는 밖에 나와있어야 되겠네.
-한 집에 여러 비둘기가 들어간다고 한다면, 네마리 다 들어갈 수는 있겠네. 그러면 어떤 집에는 비둘기가 2마리도 들어가고 3마리도 들어가야겠네.
-만약 모든 비둘기가 들어가 있다면, 적어도 어느 집은 비둘기가 두 마리 이상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서 우리는 어떤 결론 -어느 집엔 적어도 두 마리의 비둘기가..- 에 도달했습니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어떠셨을진 모르지만 저는 참 좋았습니다. 머리를 굴리는 느낌이 참 좋죠. 저는 이것은 수학이라고 봅니다. 머리를 굴리는 것.
근데 교과서에는 친절하게 써 있어요. 비둘기가 n마리이고 집이 m개일 때, 만약 m<n이면.. 어느 집엔 적어도 두마리의 비둘기가 있어야 한다, 이걸 비둘기집의 원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풀이에 '비둘기집의 원리에 의하여..' 라는 말을 써야 되는 문제를 푸는거죠.
이 과정은 마치 기술을 배우는 훈련과정처럼 느껴집니다. 이차방정식의 근의공식을 배워서 abc에 숫자를 집어넣는것과 별다를게 없죠. 그렇다면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누군가가 수학하기를 한 것을.. 우리는 열심히 기술습득을 하는것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만으는 부족합니다. 깊든 얕든 우리는 수학하기를 해야만이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적어도 비둘기가 아닌 사람과 숙박집으로 바꿔도 문제를 풀 수 있어야겠지요. 더 나아가서, 이런 것도 생각해봄직 합니다.
'자연수 전체의 집합을 둘로 나누면, 적어도 어느 한 집합에는 무한히 많은 원소가 있어야 될 것이다.'
이건 분명히 앞에서 배운 비둘기집의 원리랑은 다릅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 머리를 굴려보면, 수학하기를 하면 - 분명 그럴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런 것이겠지요. 덧셈뺄셈을 배워서 하는것, 근의 공식에 숫자를 넣는 것은 산수, 혹은 기술입니다. 배운 공식을 단순적용하는것도 수학이라기보단 기술입니다.
만약 당신이 비둘기집 원리를 머리로 생각했으면 그건 분명 수학입니다. 만약 덧셈뺄셈의 원리를 알고 새로운 계산방법을 고안해냈으면 -그것의 효율성이나 독창성과는 상관없이 - 그 과정은 분명 수학입니다.
우리의 수학교육은, 물론 수학교육과 분들이 더 정확히 알고 계시겠지만.. 크게 보면 두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 지식 - 일차방정식, 비례식 등 - 의 기술을 훈련하는 것. 둘째는 간단하게나마 수학하기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
그래서 비둘기집의 원리를 외워서 적용하는것으론 부족한 것입니다. 하다못해 비둘기가 아니라 사람에게까지는 적용할 수 있어야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형분석이니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식으로 입시수학은 발전되어왔고 학생들에게 수학하기에 흥미를 느낄만한 계기는 아직도 없어 보입니다.
2.
앞에서 말한 수학하기의 훈련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개발하게 됩니다.
첫번째 : 추상화. 비둘기집의 원리에서 중요한건 비둘기가 아닌 것을 아는 것이 추상화입니다. 들어갈 것과 들어가는 것의 갯수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건 극도로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개념이 추상적, 일반적일수록 더 많은곳에 적용가능합니다. 수학과의 커리큘럼은.. 개집합, 폐집합(개구간,폐구간의 일반화입니다)을 배우고 위상공간을 배우게 되는데, 다음과 같이 극도로 단순화,추상화된 공간에서도 거리공간에서 정립했던 수많은 개념들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공집합과 X가 T에 포함되고
T의 임의의 원소의 합집합이 다시 T에 포함되며
T의 임의의 원소의 유한 교집합이 다시 T에 포함되면,
T를 X의 위상이라고 한다.'
위상공간의 정의입니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단순함과 추상적, 일반성을 느껴 보세요.
두번째 : 빠르기. 여태껏 보지 못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디부터 봐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대게 휴대폰 새로 샀을 때 많이 발동되는 능력이죠. (요즘 폰들은 다 비슷비슷해서 좀 그 관찰이 불필요한것이 안타깝습니다.)
즉 앞에서 비둘기와 집 이야기를 만났을 때, '집 하나는 어디갔어? 비둘기가 새로 왔나보다' 같은 생각은 실제로 문제를 풀 때는 불필요함을 알고, 집과 비둘기수를 비교하고, 집이 모자람을 아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그런 쪽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수학과 교수님들을 뵈면 제일 크게 놀라는 것이 어떤 개념을 들고 가도 순식간에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앞에 놓인 물건에 대해서, 어딜 보고 어떤걸 생각해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 극도로 발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리스트를 만들어 앞으로 생각해야 할 것을 정리하는 것. 만약 단어로 표현한다면, 통찰력이 되겠습니다.
통찰력은 훈련을 통해 습득 가능합니다. 수학문제로 과게에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저는 오답노트를 권장하는데, 오답노트가 통찰을 얻는 훈련으로서 제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오답노트에 써야 할 내용은, 해설지에 있는 풀이의 카피가 아니라, (심지어 어떤 학생은 해설지를 오려붙이는데 그러면 전혀 도움되지 않습니다. )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보고 해설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틀린 것이지, 해설을 생각할 수 있으면 문제는 푼거나 다름없습니다. 문제를 읽고 어떻게 해설에 도달하는가? - 비둘기집의 원리를 어떻게 떠올릴 수 있는가? - 가 실제로 중요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답노트에는 문제의 어떤 단어, 어떤 문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할 지에 대해서 연구합니다. 처음엔 정말 막막해서 아무말대잔치가 되어버리지만, 하다보면 됩니다. 오래 걸리지만요.
네.. 오래 걸립니다.. 근데 가끔 안 그런 애들이 있죠?
3.
직선이 이렇게 움직이면,
포물선과 직선이 두 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해도 두 점에서 만날까요?
전자는 비교적 당연해보이지만, 후자는 바로는 잘 모르겠군요.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상상해봐야겠는데, 거기부터는 지식을 써야 되거든요.
근데 사실은, 전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두 점에서 만남을 증명해보아라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세요. 당장은 ' 이렇...게.. 선을 위로올리면 분명히 만..나잖아..'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증명을 채우려면 포물선에 대한 지식, 함수를 좌표평면에 나타내는 방법, 기하학적 교점이 수식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걸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히 저건 볼록하고 이건 안그렇고 그래서 이렇게 만나면 두점일거 아냐. 라고 먼저 생각하죠. 우린 이걸 직관이라고 합니다.
직관은 정말 유용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생각해야 할지를 즉시 알려주니까요. 초등학교때 보면 머리가 좀 되는 애들은 수업도 안듣고 문제부터 풀어제끼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맞아 보이는 걸 찾아가면' 답이 나오거든요.
진짜로 직관이 발달하면 고등학생이 되어도 이렇게 풉니다. 문제 풀이를 묻고 싶은데 눈으로 훑다가 답을 딱 적고 가버리면 보는사람은 딥빡이죠.
미친듯이 직관이 발다라면 더이상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증명을 해야 되는데, 뜬금없이 f(x) =어쩌구 를 씁니다. (뭔데 그게...) 이것저것 해보더니 안되네. 그러다가 상수를 몇개 바꿔요. 된다. 이거면 증명이 된대요. 해보니까 그걸 쓰면 증명은 돼요. 어떻게 찾았는데? 아니, 애초에 f(x)가 필요한건 어떻게 알았는데? 는 말을 못합니다. 왜냐면 번개같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니.
속도면에서.. (그리고 외부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면에서 ) 직관이 앞에서 말한 통찰보다 겁나 우월해 보입니다. 실제로 아무리 뛰어난 통찰도 처음의 직관이 없으면 무소용일 때가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직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직관력은 될 때만 됩니다. 언제나 문제를 딱 보면 풀렸는데, 안되는 문제가 나와요. 그럼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다시 번개같이 생각이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거죠. 그 '다른 방법' 은 결국 수학교육과정의 훈련이고.. 통찰이 가지는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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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수학하기는 통찰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이걸 할 수 있느냐? 는 질문에는.. 저는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통찰력이 뛰어나지 않을까는 생각하지만, 직관력을 얼마나 가질지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어차피 저도 직관력이 형편없으므로 걔가 얼마나 잘하든 말든 저랑은 상관없어보인다는게 결론이었습니다. ㅋㅋㅋ...
두서없이 글을 쓰긴 했는데 여기까지가 제가 일주일 정도간 생각해보던 것이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