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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이미지 검색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늑대에 관한 이야기다.
"한 놈은 악이란다. 그 놈은 화, 질투, 욕심, 오만,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 우월감이며, 그리고 바로 네 자아란다."
"그리고 다른 놈은 선인데, 그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겸손, 친절, 자비, 진실, 공감, 정의이며, 그리고 바로 믿음이지."
"똑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내면에서도 마찬가지야."
"할아버지 둘 중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기지."
한번 쯤은 들어봤을 이 이야기는 당신과 나, 우리의 내면 속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내적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늑대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선'과 '악' 사이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다. 사회정의라든가 법과 질서, 보편적 가치 같은 의미심장하고 거창한 화두 뿐만이 아니라, 때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도 '선'과 '악'은 늘상 부딪히고 반목하며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온전히 개별 주체의 판단에 달려 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득과 실리를 쫓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자신이 믿고 있는 원칙이나 신념, 양심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해 보인다. 그에 대한 답은 할아버지의 나즈막한 대답 속에, 혹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법률신문 (주)로이슈
윤석열, 박형철, 그리고 임은정. 이 세 사람은 전자가 아닌 후자를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들은 절대적 복종과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권력과 조직 앞에서 보란 듯이 다른 선택을 했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당당히 '아니오'를 외친 것이다. 이 세 사람이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원래부터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검사로서의 '가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어찌됐든 저들은 권력과 조직의 명령에 충성하는 대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소신을 따랐다.
그러나 저 세 사람은 권력과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던 대가를 지금 톡톡히 받고 있는 중이다. 검찰 조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검 중수부 1·2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던 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인해 대구고검으로 좌천되었다가 최근 고검검사급 인사에서 다시 대전고검으로 이동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검사 역시 대전고검으로 밀려 났다가 이번 인사에서 부산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의 인사라인에서 저 두사람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지난 2012년 진보당 간사 재심에서 검찰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해 윗선의 눈 밖에 난 임은정 검사 역시 같은 처지다. 임 검사는 최근 부부장 승진에서 2년 연속 탈락했다. 임 검사의 동기가 부장으로 승진했고, 후배 기수가 부부장으로 승진한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다. 공판 능력을 인정받아 검찰총장 표창까지 수상했던 임 검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인사다. 임 검사는 승진 탈락 뿐만 아니라 검사 심층적격심사 대상자로 선정돼 검사복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다. 권력과 조직,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던 대가치고는 참으로 혹독하다.
검찰의 노골적인 충성 요구는 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영전한 이상용 안양지청장, 포항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홍창 차장의 경우를 보면 더욱 도드라진다. 이 두사람은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최경환 부총리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장본인들이다. 불의한 일이라 할 지라도 권력에 충성하고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면 그에 걸맞는 상급이 주어지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보복과 처절한 응징이 가해진다. 치졸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검찰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이며, 축소판이다.
ⓒ 뉴스 1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윤석열, 박형철, 임은정, 이 세 사람에게서 빛이 나는 까닭은. 그들은 노골적인 권력의 충성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며 남들과는 다른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정의감의 발로에서였는지 아니면 투철한 사명감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가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의 선택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맥이 닿아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에게서 빛이 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세 사람이 빛나는 것은 그들이 특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 시대가, 세대가 어두운 까닭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짙을 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작고 작은 빛 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그 작은 빛 하나로 칠흑같은 어둠이 물러간다는 사실을. 윤석열과 박형철, 임은정.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을,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대답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의가 사라지고 양심이 무너진 어둠의 시대를 밝히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어쩌면 바로 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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