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사람들이 소방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다. 맞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매일 목숨 걸고 불과 싸우는 이들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하는 일은 화재 진압만이 아니다. 불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몫이다. 예컨대 보행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층 건물의 얼음도 깨고, 가스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출동한다.
이렇게 소방관은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공무원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잘 아는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순직이 이어지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현실도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프레시안>은 소방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2월 13일 오전 4시 15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플라스틱 공장에서 난 화재를 진압하다 가산 119소방센터 윤영수 소방교가 숨졌다. 불탄 후 물을 먹은 벽은 바스러지기 쉽다. 진화 작업에 나선 구급대원이던 윤 소방교는 벽이 무너지면서 그 밑에 깔렸다가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다.
소방관들에게 "구급대원이 왜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가"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눈앞에서 당신의 동료들이 불길이 치솟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당신은 뭘 할 건가?" 소방관들이 기자에게 들려준 답이다.
최근 5년 사이 화재 진압 중 37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은 그 흔한 악플도 그리 많이 달리지 않는 뉴스다. 영결식 사진은 독자뿐 아니라 매일 뉴스를 만드는 '말공장'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인력 부족, 장비 노후, 지방직 공무원의 한계 등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해결되는 건 별로 없다.
소방관들이 힘을 모아 해결책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09년 1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소방관을 노동조합 가입 대상에서 제외한 공무원노조법에 대해 재판관 7인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당시 일부 소방관이 가입하려 했던 전국공무원노조 자체가 현재 법외 노조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소방관들에게는, 순직 사고가 날 때마다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읍소하는 것 이외에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수도 있는 화재와 매일 씨름해야 하는 소방관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정부의 홍보 부서와 협력해 소방관들이 매뉴얼대로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을 전달하는 식의 기획은 소방관들의 속마음을 진정성 있게 담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방담을 기획했다. 방담에 등장하는 소방관들의 이름, 직책, 근무지 등은 소방관들의 요청으로 모두 가렸다. 두 명의 소방관 모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30대 남성들이다.
"대통령 취임식장 의자 눈 치우는 게 소방관이 할 일인가"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은 불이 얼마나 자주 나는지는 잘 모르지만 평소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소방관이라는 건 안다. 시민들에게 소방관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김구급 : 구급대원이다. 이 정도로만 밝히는 것을 양해해 달라.
이소방 : 그냥 소방관으로만 해달라. 민감하다.
프레시안 : 여러모로 피곤이 일상일 것 같다.
김구급 : '소방관은 주간에 족구도 하고 다른 운동도 하고 잠도 자고', 일반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주간에도 훈련이니 민원 처리니 일이 많다. 이를테면 내가 전날 아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날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낮에 민원도 있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다. 그리고 화재는 저녁이나 밤, 새벽에 많이 발생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상태에서 밤에 구급차를 몰고 나가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졸음도 온다. 사고 위험도 많다. 주간에 체력 관리? 비번일 때 개인 볼일도 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 날 또 24시간 근무를 한다.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낀다. 체력 좋은 소방관?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소방관들은 체력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주간에 여유가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특히,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2교대를 할 때는 24시간 업무에 묶여 있어야 했다. (편집자 : 2008년 9월 19일 서울시가 시범적으로 종로·중부·강남 등 3개 소방서를 완전 3교대로 전환하면서, 전국 소방본부의 3교대 전환이 본격화됐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13년 1월 2일 현재 전국 소방관서의 3교대 실현률은 93.9%다. 그러나 지역별로 3교대 전환율 편차가 있고, 인력 충원 없이 3교대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일선 센터 근무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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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옆 상가 건물 일대 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잠시 화재 진압을 멈추고 물로 눈을 씻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
프레시안 :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근무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김구급 : 그렇다. 그런데 그게 힘들다. 근무 환경을 좀 제대로 조성해 달라는 게 간절한 요구다.
프레시안 : 출동은 어느 정도 하나?
이소방 : 내 경우는 하루에 다섯 건 이상이다. 오인 신고도 있지만 실화도 많다. 경기도에는 공장이 많다. 공장에서는 화재가 많이 발생한다. 화재가 아니어도 불산 유출 같은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소방관이 언제나 출동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소방관은 건축 관련, 민원, 행정 업무도 담당해야 한다. 업무량이 굉장히 많다. 근무지에 따라 한가한 곳도 없지 않지만, 바쁜 곳이 훨씬 많다. 소방관들의 평균 수명이 낮지 않나. 58.8세라고 한다. 사고도 사고지만 교대 근무를 하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게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프레시안 : 업무에 훈련도 들어가는데, 훈련이 많나?
김구급 : 도상 훈련, 현지 적응 훈련 등….
프레시안 : 1년에 몇 번 받나?
이소방 : 수도 없다. 장비 조작 훈련 등까지 다 칠 경우 (문서나 일지대로라면) 종일 훈련만 해야 한다.(
웃음) 그러나 우리가 훈련만 할 수 있나. 민원 처리도 해야 한다. 센터에서 하는 일이 워낙 광범위한데, 소방관들이 다 처리한다. 소방관은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김구급 : 훈련이 좋은 점도 분명 있긴 하다. 몇 년 전 미아리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서 큰불이 났다. 당시 소방은 크게 안 깨졌다.
경찰은 많이 깨졌다. 소방은 화재지구로 지정해서 특별 관리를 하고 훈련도 했던 게 드러났으니까. 어떻게 보면, 경찰이 당시에는 운이 없었던 거다.
이소방 : 훈련 계획은 많이 잡힌다. 좋은 취지다. 훈련을 많이 하면 사고도 안 나고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한다. 다 좋다. 그런데 우리가 늘상 하는 업무가 있는데, 몇 시간 이상 훈련을
시행하라고 내려온다. 그러면 하루가 35시간도 아니고 24시간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근무일지에 다 기록해야 한다. 실제로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기록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김구급 : 너무 안 좋은 면만
부각되지 않게 해 달라. 우리도 바라는 게 많고 요구 사항도 많지만 최소화해서 얘기하겠다.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몸을 사려야 한다. 걸러서 들어 달라.(웃음)
프레시안 : 소방관이 고생하는 것에 걸맞은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구급 : 소방관 하면 고맙고 좋은 공무원이라고 사람들이 인정은 해 준다. 그런데 막상 접하면 우리를 만만한 사람들로 보는 경우가 있다. 시쳇말로 '호구'다.(웃음)
이소방 : 뉴스에 나왔더라.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장의 의자 눈을 치우는 데 소방관이 동원됐더라. 그게 솔직히 소방관이 할 일인가. 눈이 위험 물질인가? 제일 만만한 게 소방관이니까 그런 곳에도 동원되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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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을 다룬 영화 <반창꼬> 스틸 사진. ⓒORM PICTURES |
"사람 구해라, 여기 불 꺼라"…
현장에 가면 바빠서 죽을 맛
프레시안 : 얼마 전 구급대원이던 고 윤영수 소방교가 화재 현장에서 순직했다. 구급대원도 불 끄는 일을 해야 하나?
김구급 : 그렇다. 사실상 일이 정해진 게 없다. 불이 났으면, 구급이고 뭐고 일단 불은 끄고 봐야 한다. 경기도 같은 경우는 워낙 땅이 넓다. 그런데 사람(소방관)이 없다. 지난번 사건은 불을 끄던 중 무너지는 벽에 깔려서 사망한 것이다. 구급도 전문 분야다. 구급이나
응급 분야 하나만 해도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실제로는 소방관에게 '멀티
플레이어'를 원한다. 한 분야만
집중해서 알고 그 일에만 몰두하면 사고를 조금 더 안전하게 예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프레시안 :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지적되는 게 소방관 인원 부족 문제다. 숫자가 부족하면 굉장히 힘들 것 같다.
이소방 : 한 센터에는 구급차, 물차(물탱크차, 물을 공급하는 차), 펌프차(화재 진압에 투입되는 차), 세 대가 있다. 아무리 없는 센터라고 해도 이 세 대는 꼭 있다. 일단 구급차에는 구급대원이 최소 두 명 있어야 한다. 물차는 한 명이 한다고 해도 펌프차는 운전수 한 명, 불 끄는 사람(경방) 한 명 해서 두 명이 있어야 한다. 5명 정도가 있으면 한 사람만 불을 끄는 데 투입될 수 있다. 이것은 센터 얘기고, 물론 1인 지역대도 있다. 1인 지역대는 더 문제다. 혼자 차 몰고 가서 불을 꺼야 한다.
(편집자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10월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시도별 소방 공백 지역대 및 1인 지역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이 아예 한 명도 배치돼 있지 않은 무인 지역대가 전국 208개소에 달하고 상주 소방관이 단 한 명인 지역대는 166개소에 달한다.)
일선 센터만 해도 (펌프차 인원 중)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불을 끈다. 펌프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불을 끄기 위해 차량과
기계를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차를 떠날 수가 없다.
수압도 조절해야 하고 물이 부족하면 새로 물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물탱크차를 담당하는) 한 사람은 물을 공급한다. 그 센터 인원이 현장에 제일 처음 도착하기 때문에 물차를 담당하는 사람은 화재 상황을 무전으로 뒤에 오는 후착대(일종의 지원대)에 전달해야 한다. 물이 떨어지면 소화전을 찾아 연결해야 한다. 일이 복잡하다. 바쁜 상황이면 정말 죽을 맛이다. 옆에서는 사람 살리라고 하고, 또 여기 끄라고 하고, 저기 끄라고 하고….난리가 난다. 거기에다가 후착대에 보고를 정확히 해줘야 한다. 그래야 후착대가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줄이고 곧바로 투입될 수 있다.
김구급 : 한 사람이 불을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옆으로 번지는 것만
방어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우선 임무다. 이미 번진 불은 끄려고 해도 끌 수가 없다. 후착대가 올 때까지 번지는 것을 막고, 후착대가 오면 그때부터 진압하는 것이다.
이소방 : 작은 센터는 인명 검색까지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못할 경우도 있다. 불 끄고 인원 검색하고, (두 임무를) 동시에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경기도는 특히 워낙 넓어 평시에도 구급대원이 불 끄는 것을 도와주는데…. (그러던 중에 사고가 난 것이다.) 벽돌이나 블록은 불을 먹으면 약해진다. 무너질 위험이 높다. 거기에 물까지 먹으면 더 약해진다. 이런 현장
지식은 모두 항상 교육을 받고 또 교육을 한다. 당시 현장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구급대원이 불 끄는 데 미숙해서가 아니다. 전반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뜬금없는 질문인데, 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소방 : 불을 보면? 불이 났네, 생각이 들지 무슨 생각이 드나.(웃음)
김구급 : 일부 선배들이 한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불을 진압하러 뛰어들었는데,
천장에 불이 붙어 빨갛게 익고 있는 모습이 우스운 소리 같지만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있다고 하더라.
이소방 : 불에 익숙한 사람들 얘기다. 일반 시민들은 무서울 것이다. 신고할 때 보면 완전 패닉 상태다. 정확한 위치를 얘기해야 하는데 얘기를 못하고 '아이고 아이고' 이런 소리만 계속하고 있다. 차량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으니까 위치를 찍으면 가는데,
시골은 위치가 정확치 않다. 길을 한 번 잘못 들면 정말 당혹스럽다. 뒤에 줄줄이 펌프차, 물차 따라오는데, 그때는 정말
식은땀이 흐른다. 그리고 '소방관들 월급 많다', 이런 소리는 안 해주셨으면 한다.
소방차 세차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웃음) '내가 낸
세금으로 왜 세차하느냐'고. 소방차는 기본적으로 깨끗이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방화복을 입어도 불기운을 견디는 데 한계가 있을 것 아닌가?
김구급 : 당연한 얘기지만, 방화복 입었다고 안 뜨거운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만약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처리가 되나?
이소방 : 다치면
공상 처리가 된다. 공적인 업무를 하다가 다친 것이니까. 그리고 병가를 준다. 정해진 것이 있긴 한데, 그런 것도 인력 때문에 한계가 있다.
공상 처리를 하게 될 경우도 따질 게 많다. 먼저 안전 수칙을 지켰는지 등을 따지는데, 공상 처리는 되지만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저번에 문제가 된 게 있었는데, 2011년
강원도에서
고양이를 구조하다가 순직한 분이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뉴스에도 크게 나왔다. 그때 국가
보훈처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고양이를 구하다 떨어진 경우는 국립현충원에
안장이 안 된다는 것이다. 화재 진압이 아니라 민원 업무를 하다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신고 받은 소방관이 출동 안 해서, 고양이를 민간인이 구출하려다가 떨어져 다쳤다고 생각해봐라, 소방관들이 무슨 욕을 먹게 되겠나.
김구급 : 우리는 신고 들어오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 고양이가 됐든 뭐가 됐든 구해달라는데 안 나갈 수가 없다. 안 나가면 문제가 된다. 소방관이 고양이를 구조하다 떨어져서 순직했다. 그 사람은 국립묘지에 묻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쟁이 여전히 있다. 왜 안 되나. 우리가 개인 용무로 나가서 다쳤나. 누구나 그 전화를 받으면 나가는 상황이다.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런 논쟁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웃긴다. 나도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굉장히 서글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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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층 건물 얼음을 깨고 있는 소방관. ⓒ경기도 소방본부 |
얻어맞는 소방관들…"제발 때리지 마세요"프레시안 : 긴박한 일들을 많이 겪을 것 같다.
김구급 : 부끄러운 자랑 같지만,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린 적도 많다. 모든 소방관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응급 환자를
병원에 이송할 때 얘기다. 보통 사람들은 구급차는 무조건 빨리만 가면 되는 줄 아는데, 구급차들이 사고가 많이 난다.
환자 보호자들이 '신호고 뭐고 까고(무시하고) 빨리 가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안 하면
폭행도 하고 그런다. 자기
가족이 응급한 상황이니 '어떻게 신호를 다 지키고 가느냐'고 하는 거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소방관이 다 책임질 수밖에 없다. 보호가 안 된다.
프레시안 : 교통사고가 나면 소방관이 혼자 책임지나?
김구급 : 물론 서에서 보험 처리는 다 하지만, 사고 처리도 당사자가 해야 하고
인사고과에도 안 좋게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때문에
안전 교육을 매번 한다. 신호를 엄수하라고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앞서 말했지만 환자 보호자는 마음이 급하면 소방관 폭행도 하고 그런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면 신호를 '까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아찔한 상황도 많이 발생한다. 되도록 교통 법규나 신호를 지키고 매뉴얼대로 하려고 하는데도,
응급차가 사고 나는 건수가 굉장히 많다. 위에서는 일단 사고가 안 나는 게 중요하니까 천천히 가라고 한다. 거기에 우리도 물론
공감한다. 그런데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프레시안 : 소방은 시간이
생명인 것 같다.
이소방 : 시간이 중요하다. 모든 화재나 사고에는 시간 기록이 남는다.
군대나 경찰과 같은 기관이 그런 것처럼 소방도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도착했는데 현장이 아수라장이 돼 있으면 시간 볼 새가 어디 있나.
프레시안 : 화재가 나면 몇 분 안에 출동한다는 식의 매뉴얼이 있지 않나.
이소방 : 있긴 있다. 서울의 경우는 5분 안에 출동해야 한다. 그게 성과
평가 대상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스트레스가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있었을 때 출동이 걸린 적이 있다. 어떻게 5분 안에 나가나. 보던 일을 끊고 나갈 수 있겠나. 그래도 재빠르게 나가야 한다. 방금 말한 '똥' 얘기는 기사에 써 달라.(웃음)
김구급 : 우리도 최대한 빨리 출동한다. 그러나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차도 막힐 때가 많다. 중앙선 넘어서 지르기도 한다. 내 주종목은 구급차 운전인데, 사람이 없으면 펌프차나 물차도 운전하게 된다. 그런 것은 할 수 있다. 출동하면서 환자와 통화하기도 한다. 그 상황에서 도로가 막히면 (신호를) '까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진입하기 어려운 화재 현장도 있다.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소방관이나 운전하는 사람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달라. 우리도 마음이 급하다. 그러면(우리를 자꾸 건드리면) 사고가 난다. 위에서는 교육을 한다. '신호를 까지 말라'고 한다. 위에서는 면피가 된다. 교육을 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게 없다.
사이렌을 '열나게' 켰는데 신호 기다리고 있다가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왜 급한데 신호를 무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험 처리는 되겠지만, 형사 합의는 우리가 봐야 한다.
"3교대가 되긴 했는데"…'21주기 3교대'의 명암
프레시안 : 소방관 근무 형태가 21주기 3교대라고 하는데, 복잡하다. 쉽게 말해 어떤 형태인가?
김구급 : 지역마다 다 다르다. 일단 경기도 지역은 21주기다. 21일 주기로 근무가 순환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나?
이소방 : 설명하겠다. 내가 주간 근무를 5일 연속으로 했다고 치자. 그러면 '휴휴' 즉 이틀하고 반나절을 쉰다. 이틀 쉬는 때가 돌아오면 정말 말 그대로 쉴 수 있게 된다. 즉
아침에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다섯 번 하고, 그 다음에 쉬는 날 이틀, 그리고 야간 근무로 들어간다. '야비, 야비, 야비…' 즉 야간, 비번을 하루씩 돌아가면서 2주 동안 그렇게 한다. 21일이다.
사이클이 길다. 3주에 한 번씩 주간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몸이 힘든 걸로 따지면, 예전의 2교대와 비교했을 때 지금 3교대는 나쁘지 않다.
프레시안 : 요일 개념은 제로일 것 같다.
김구급 : 그렇다. 그래도 몇 가지 애로 사항이 있다. 이를테면 평일에 내가 비번이라고 하면 나 혼자 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한다. 뭘 할까. 가족들과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친한
친구도 볼 수 있겠지만, 친한 동료들끼리 보는 것은 어렵더라. 쉬는 날, 업무 시간에 못했던 일을 할 때도 있다. 어휴….
프레시안 : 21주기 3교대는 수도권에서만 하나?
이소방 : 다른 지역 현황은 잘 모르고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아마 상당 부분 21주기 3교대를 시행하고 있을 것이다.
김구급 : 솔직히 말하면, 아직 소방 인원 자체만 놓고 봤을 때 3교대를 시행할 수 있는 인원이 안 된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인원이 충원되지 않았는데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뀐 것이다. 행정적인 함정도 있다. 이를테면 관서(소방관, 소방서) 평가 점수를 3교대를 실시한 곳에 더 높게 준다. 그래서 일선에서 3교대로 근무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인원이 없어도 쪼개고 쪼개고 해서 3교대를 할 수밖에 없다. 관서 평가 점수가 높으면 누군가에게는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좋을 수 있지만.
이소방 : 물론 좋기는 하다. 이런 식으로 서마다 3교대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하루에 한 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람 자체는 적어지게 된다. 그러면 피해는 누가 보는 것인가. 3교대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대처하는 인력이 부족하고 근무하는 인원이 없어서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할 수 있다. 그게 가장 걱정이다. 인원 충원이 정말 시급한 상황이다.
김구급 : 예전에는 일선 센터에서 탱크차에도 운전 한 명에 경방이 한 명 더 붙었다. 요즘에는 인원이 모자라서, 그렇지 않다. 3교대를 하면 그렇게 인원을 유지하지 못한다. 3교대로 바뀌며 탱크차에 붙어 있던 경방이 없어진 거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3교대를 안 할 수는 없다. 솔직히 따지면 3교대를 하는 이유가 예산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2교대를 하면
초과근무수당 등을 지자체가 감당하기 힘들다. 그나마 3교대를 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윗분들은 3교대를 하면서
복지를 챙길 수 있고, 복지를 하면서 예산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발상이 참…. 그나마 일부 지자체에서 소방 공무원 처우를 개선한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예산은 크게 건드리지 않고, 또 법률로 정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단기간에 해줄 수 있는 게
초과근무수당 미지급분을 주는 것이다. 최근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것을 해 줬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그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 이외의 것은 법률과 예산 문제가 돼 버리니까.
프레시안 : 근무 환경은 어떤가. 이를테면 장비 문제라든가.
김구급 : 열악한 곳이 많다. 낙후한 지역으로 갈수록 장비도 옛날 장비다. 강원도나 전라도가 특히 그렇다. 광주에서 작년 1월에 고층
아파트의
고드름을 깨는 작업을 하다가 소방관 두 명이 떨어졌다. 한 명이 순직했다.
사다리 와이어가 끊어졌는데, 보도를 보니 19년 된 사다리를 타고 고드름을 깨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용 연한이 15년인데, 4년을 더 썼다. 순직한 소방관 아이가 세 살이라고 하던데, 나도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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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0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용마터널 안에서 공사 자재를 내려놓던 5톤 화물트럭에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안전에 지역 편차가 있나요? 인원 늘리고 국가직 전환해야"
프레시안 : 처우 부분에서 애로 사항이 많은 것 같다.
이소방 : 어떤 사람은 소방관 월급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월급만 보면 그렇다. 수당이 많으니까. 사실 모두들, 어떤 직업이든 힘들겠지만 소방관도 그와 마찬가지다. 업무
강도나 하는 일을 보면, (월급이) 많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소방 공무원이 지방 공무원인데 국가 공무원으로 전환되면 좋겠다. 이 얘기는 꼭 써 달라.
프레시안 : 왜 전환돼야 하나?
김구급 : 한마디만 하자. 안전에 지역 편차가 있나? 사고에 지역 편차가 있나? 빈도는 다르더라도, 경기도 아파트는 불이 나고 전라도 아파트는 불이 안 나나? 소방관 근무 환경이나 처우가 지역마다 편차가 심하다는 게 말이 되나.
프레시안 : 정리해 보자. '인원 충원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 근본적인 것은 국가직 전환이다. 국고 지원을 받아야 예산이 늘고, 그래야 인원을 늘릴 수 있다. 그러면 소방 장비를 새로 충원할 수 있고, 소방관들의
휴식 시간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이 안정돼야 시민들의 안전도 더욱 잘 지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김구급 : 그렇다.예산 때문에 자꾸 논의를 피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드는데, 정치권에서 정면으로 다뤄줬으면 한다. 예산 문제 놓고 '돌직구'를 던져줬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전을 중시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안전에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행정안전부도 안전행정부로 바뀌었다. 뭘 주저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안전은 소방, 구급, 119 아닌가?
이소방 : 매일 말만 나오는데, 순직 사고 나면 더 관심을 받다가 흐지부지되고 그러다 보면 또 순직사고가 나고. 그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안전 사고 방지 교육을 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다. 사고가 안 나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사고가 안 나는 것이다.
출저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30305174100§ion=03&t1=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