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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키타큐슈 감금살인사건(北九州監禁殺人事件)이란, 2002년 3월 키타큐슈 오구라키타구에서 밝혀진 감금, 살인사건이다
개요
사람의 약점을 잡아 감금해 금품을 뜯어내고, 고문과 학대에 의해 마인드컨트롤 아 래에 두어, 서로의 불만을 맞부딪히게 해서 상호불신을 일으켜 거역하지 못하게 하며, 또한 피해자끼리 학대하게 함으로서 상호불신을 한 층 깊게 하여,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쓸모없어진 인간을 살해해 사체처리를 하게함.(재판에서는 6명의 살해와 1명의 상해치사) 전직 유치원 교사에게 아동을 살해하게 하거나, 경찰관에게 살해를 하게 하고, 더욱이 10세의 아동에게까지 친동생의 살해와 시신의 해체를 하게 한, 세계적으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잔학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도 잔혹해 제1심에서 검찰측은 [귀축의 소행]이라며 용의자 남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비 정상적인 잔학성,악질성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보도관제가 걸렸다고하여, 사건의 지명도는 높지 않다. 당초에는 지역 보도기관을 중심으로 보도되었으나, 내용이 너무나도 잔학하기에 도중에 보도기관이 자율규제하여, 전국의 보도기관에서의 집중보도로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의 발각
2002 년 3월 6일, 소녀A(당시17세)가 남자X와 여자Y의 2인조에 의해 감금상해를 당했다며, 조부의 집에 도움을 청하러 옴으로써 사건이 밝혀졌다. 다음날인 3월 7일, X와 Y가 체포되었다. X와 Y는 혐의와 이름을 포함해 완전묵비를 계속했고, 신분증은 위조된 것 뿐이었기 때문에, 당초엔 신원이 불분명했으나, Y가 소지하고 있던 사진집을 계기로 판명되었다.
당 초엔 X와 Y 두 사람에 의한 A에의 상해와 감금사건으로 보여졌다. 그 후, A의 증언에 의해 X와 Y는 A의 부친 B(당시 34세)의 지인으로, 5~6년 전부터 넷이서 살게 되었으나, 함께 산지 약 1년 후에 B가 행방불명이 되어, 그 후론 3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후일, 다른 장소에서 A가 돌보던 4명의 아이들이 발견되었다. 4명중 쌍둥이 아이들에 대해, 여기에 맡겨져 있었던 것을 부모는 몰랐다. 다른 2명에 대해서는 DNA검사로 X와 Y의 자식으로 판명되었다.
며 칠 후, A가「B는 X와 Y에게 살해당했다」고 증언함에 따라, 사건의 해명은 크게 움직였다. 더욱이 A는, Y의 가족 6명이 살해당해, 사체는 해체되어 바다 등에 뿌려졌다고 증언했다. 살해된 Y의 가족 6명의 내역은 농협 부이사장인 부친C(당시61세), 주부인 모친D(당시58세), 치과위생자인 여동생E(당시33세)、전직 경찰관으로 농협관련단체 직원인 여동생의 남편F(당시38세), 초등학생인 조카딸G(당시10세), 보육원아인 조카H(당시5세)였다.
경찰은 A의 증언을 토대로「살해현장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배관」까지 잘라내어 DNA검사를 했으나, 시간이 지난대다가 7명의 사체가 이미 완전히 소멸된 탓에, 물적 증거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Y가 자백함으로써, 다시금 사건의 개요가 판명되었다.
사건관계자의 상관도
사건
B 살해후 X는 돈을 벌게하기 위해 Y에게 오이타현 유후인쵸에 호스티스로 일하게 했으나, Y가 X에게 돌아오지 않게 되자, X는 Y가 B를 살해한 것을 구실삼아,Y의 부친 및 여동생 일가를 공갈하여,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게 하는 등 금품을 빼앗았다. 또한, X는 Y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Y와 이따금 만나던 여동생 E를 통해X자신의 자살・장례식을 날조함으로써 Y를 불러들여 다시금 지배하에 두었다.
이 윽고 Y의 부친 및 동생 일가가 돈을 빌리 수 없게 되자, X는 Y의 부친 및 동생 일가를 감금하고, 고문에 의해 자신들이 하는 말을 듣게 만들었고, 나아가 각각의 약점을 붙잡고 서로가 다투도록 의심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Y의 가족과 A는 X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97년 12월, X는 Y를 시켜 그 부친인 C에게 전기를 흘리게 했고, C는 사망했다.(제2살인. 단, 재판에서는 상해치사로 인정)
X는 Y와 그 일가족에게 사체의 해체를 지시했다. 더욱이 거듭되는 감전에 의해 괴성을 지르게 된 Y의 모친 D의 살해를 Y와 그 여돈생 E, 그 남편 F에게 명해, 1998년 1월, Y등에게 몸을 짓누르게 한 채 F에게 교살하게했다(제3살인)
더욱이, 반복되는 감전에 의해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 E에 대하여, X는「정신이 나갔다」며 시비를 걸어, F와 Y의 조카딸G(=E의 딸)에게 살해를 지시, 1998년 2월, Y등에게 몸을 짓누르게 한 채 F에게 교살토록했다(제4살인)
거듭되는 감전과 식사제한으로 F가 쇠약해지자, X는 욕실에 F를 가두어,1998년 4월, 쇠약사시켰다(제5살인)
1998년 5월, 어른들이 전원 사망하자, G는 X에게「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동생 H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할게요」라며 자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간청한다. 그에 대해 X는「사체를 토막냈으니까 경찰에 잡혀버릴거아냐. H가 아무 말도 안하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되지 않을까나. H는 불쌍하니까 엄마 E곁으로 보내줄래?」라며 둘러서 H를 죽일 것을 명했다. G는 H에게「엄마E에게 대려다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Y와 함께 H를 살해했다(제6살인). G는 어른들의 사정도 모른채 사건에 휘말려, 살해와 시신의 해체를 도와야 했다.
그 후 X는「쟤는 떠벌릴거 같으니까 처분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Y에게 살해를 제안, G에게 충분한 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감전을 반복, 다음달인 6월에는 Y와 A에게 G를 교살하게했다. 그 때, G는 조용히 드러누워, 목을 조르기 쉽게 고개를 들어올렸다고 한다.(제7살인)
이 러한 순진한 아동까지 자신의 조부모와 양친의 살해 및 사체 해체에 참가시키고, 더욱이 누이에게 동생을 죽이게 하고, 남은 누이도 용서없이 죽인 것은 전대미문이다. 제1심 판결에서는 이 점에 대해,「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동이 범행에 휩쓸리고 가슴아픈 희생이 된 것이다. 이것들은 범행의 잔인하고 냉혹한 측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리-
X, Y(사기꾼)가 B라는 남자를 가둬서 각종 고문 후 쇠약사 시킴. 그리고 그 B의 딸인 A에게 시체 처리를 하게 함.
이후 A를 협박과 학대를 반복하며 데리고 지냄.
그 후 X는 Y의 집안에 돈을 뜯어냄.(넌 B를 살해한 죄가 있다며 협박)
Y의 여동생 E를 이용하여 Y를 계속해서 협박하다, Y의 일가가 돈을 줄 수 없게 되자 감금시킴. 이후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태를 만들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듬.
(이후부터 A와 일가는 X의 말에 따르게 됨. 인물 상관도를 보면서 보세요)
Y(여성)는 아버지를 전기살해하고 그 시체 처리를 Y의 가족이 하게 함.
그 후 Y의 어머니를 가족 전체(딸 Y, Y의 여동생E, 여동생의 남편F)가 살해하게 함.
F(여동생의 남편)에게 E(여동생)를 죽이게 하고. F는 욕실에 가둬서 쇠약사 시킴.
G(Y의 여동생의 딸)에게 H(Y의 여동생의 아들)을 죽이게 한 후
Y와 A(첫번째 살해한 남자의 딸)에게 G를 교살하게 함.(이때 G는 조르기 쉽게 목을 내밀었다고함)
출처 : http://yaksha.egloos.com/274065
인간이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 자아를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과
인간의 정신력과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끔찍한 범죄.
우리 사회의 단편을 상징적으로도 보여주는 듯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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