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6월 22일 그리고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은 두 문서에 서명을 한다.
미묘하게 비슷한 이 두 개의 문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한일기본조약)’ 그리고 그 문서의 부속협정문4가지. 그 첫 번째가 우리가 논하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한일청구권협정)’이다. 이 협정 2조 1항에는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김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되어있다.
2015년 합의서에서도 중요한 단어로 등장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단어!
이 조약과 함께 3억엔의 경제협력자금을 대한민국 정부가 받게 된다. 65년 당시 일본은 이것을 경제협력자금 혹은 독립축하금이라고 말했고, 박정희 정부는 식민지배상의 성격이라고 이야기했다. 같은 서류에 서명하고서 이 둘의 입장이 다른것은 한국에서 볼때는 사과, 일본에서 볼때는 배인 문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일기본조약 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에 나오는 이미무효(already null and void)에서 이미의 시점을 우리정부는 1910년 한일병합당시부터 무효라고 주장하였고, 일본은 65년 조약을 체결하는 순간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그 차이점은 이렇다. 1910년부터 이미 무효라면 일제 36년은 ‘일제강점기’가 되는 것이며 국가운영권만 뺒겼을뿐 한국인의 지위는 인정된다. 당연히 한국인의 전쟁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이 일본에게 부여된다.
이번 합의서에서도 피해는 개별국민이 당하였으나 돈은 국가가 받는다. 그것도 배상금이 아니라 재단설립비용이다. 특이하게 그 재단을 설립하는 주최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정부인 대한민국이 하도록 합의했다.
1991년 김학순할머니를 시작으로 위안부와 징용피해를 요구하는 소송을 별였으나 번번히 패소했다. 그 대표적인 이유가 한국정부가 청구권을 소멸시켰으니 더 이상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특이할만한 사실은 일본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청구권소멸이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인이 조선땅에 남겨두고간 재산이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원폭피해에 대해서 미국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하고 있었고, 시베리아에 억류된 일본인들이 소련을 상대로 벌이던 소송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이 주장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여서 재론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맺어진 조약은 바꿀수 없는 것일까? 혹은 이것을 바꿀려면 양국의 외교장관들이 모여서 서명을 하면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헌법 61조 1항에는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되어있고,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은 문서로 합의한 것을 조약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지난 12월 28일의 합의는 국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그러한 사례도 있다.
한일기본조약 어업협정부분에서 일본이 1996년 200해리 EEZ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한일기본조약 부속협정중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새로운 어업협정을 재체결하자고 요구하자, 97년에 7차례, 98년에 8차례의 공식협상을 거쳐 11월 28일 서명하고, 이듬해 1월 6일 국회 비준을 거친 후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을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대체한 사실이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도 국회의 비준을 거쳐야만 한다.
한국 정부가 돈 97억이 없어서 지난 수십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것이 아니다. 많은 시민과 피해자분들이 1200회가 넘는 긴 집회를 매주 이어온 것이 아니다. 일본정부의 책임도, 국가의 배상도, 총리의 사과도없는 이 가벼운 역사인식앞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