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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4001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13
    조회수 : 1762
    IP : 218.144.***.58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4/02/11 15:27:01
    http://todayhumor.com/?panic_64001 모바일
    Alive (1)
    모든것은 태어나고 죽는다, 그것은 일반 생명체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위도 언젠가는 삭아 형체를 잃어버리고, 거기서 작은 조약돌들과 자갈들이 생겨난다. 강물은 언젠가는 다른곳으로 흘러가고, 강물이 흐르던 곳은 흙으로 메워지며, 그곳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해진다. 생명들이 살던 별도 언젠가는 사라지며, 몇천년을 내달릴 빛을 낳는다.
    인간의 생애에는 무릇 삶과 죽음이 함께 하며, 그것을 혜택으로 삼아 생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시간조차 내어놓지 않는다. 그저 앞만보고 살아갈 뿐이며, 자신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 인간이 태반이리라. 이는 다른 이의 생애 마지막 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질 않고, 남의 마지막과 자신의 마지막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이기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오인건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게, 항상 생각해 오고 있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취업을 해 본 적 없는 백수이자, 친구 하나 없이 방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 외톨이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생각이 깊다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감도 남들 앞에서는 한마디 내색조차 할 수 없지만,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취직하고 사람들도 사귀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치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며 위안을 갖는 것이다. 처음에는 위로해 주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그 위로에 전혀 비례하지 못하고 진전이 없는 오인건의 모습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제 자리에 두고 떠나갔다. 공부를 못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적에 그는 꽤나 공부도 잘하고, 기계나 컴퓨터도 잘 다루는 수재였다. 모두들 그가 굉장한 프로그래머나 공학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는 그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는 왕따를 당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를 칭찬하던 학교는, 따돌림 받고 폭력에 노출된 그를 패배자 취급하고 그에게서 문제점을 찾으려 애 쓸 뿐, 항상 가해자들의 편이었음은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일견 학교란 것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두루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자 배움의 터 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와 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소일 뿐이었다.
    오인건은 이런 교육체계에 길들여져 얌전히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이들을 '건전지' 라고 불렀다.
    정말 건전지 같았다.
     
    건전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에 에너지를 쓸 것인지 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누가 원한다면 그곳에 전력을 쏟아내어 줄 뿐이다. 그리고 전력이 다 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면, 쓰레기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 건전지를 찾는다. 사람들은 새 건전지가 얼마이고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지는 알지만, 다 쓴 건전지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떠한 처우를 받는지는 알 지 못한다.
    현실은 그런 건전지가 쉴 틈 조차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많이 보던 문구지만, 정말로 현대 의학은 눈부시고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암을 정복하고,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며,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인류는 두뇌와 신체의 침범할 수 없었던 곳을 하나 정복했다.
     
    슬립타이저(Sleeptizer)
     
    수면대체약.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약이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복용하여 해결하는 약이라고 했다. 사람이 잠을 자면서 해결하는 것들을 약이 대신 해결해주고, 잠이 오게 하는 자극을 억제시킨다고 했다. 그로 인해 사회는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렸다.
    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으로도 모자라서,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었으며.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지급되는 슬립타이저를 수시 복용하고 일했다. 군인들도 슬립타이저를 복용해 가며, 더욱 경계근무에 박차를 가했다. 가수들도, 식당 주인도, 시장의 아줌마도, 거리의 미화원들도. 누구나 슬립타이저를 복용했고, 이를 복용하지 않는 자는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한번 복용하면 잠을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 처럼 정신이 깨끗해지고 몸이 가뿐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축복이라고 까지 불렀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반발했다. 잠은 인류에게 주어진 큰 기쁨과 축복중 하나라고. 수면까지 희생해 가며 일을 할 이유는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결국 사회의 큰 압박에 무릎을 꿇었고, 이제는 일을 하는 사람들 치고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오인건은 여태 한번도 취직한 적도 없고, 별로 그 약이라는 것을 먹고싶어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을 건전지로 만드는 약이라 생각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먹지 않았다.
     
    도시는 밤에도 불이 꺼진 창문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집도 필요가 없다며 일자리에서만 생활하는 자발적 홈리스(어감이 매우 우습다고 생각했다) 들도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류가 원자력에 손을 대고 핵전쟁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처럼,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변화는 화를 불렀다.
     
    처음 발생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뉴스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SNS에서만 그 흉흉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떤 회사원이 독감에 걸렸는데, 바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소식이었다. 한동안 '뇌사독감' 이라고 별명이 붙여지고 떠들썩하게 소문은 퍼져나갔다.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정부는 이러한 사실은 괴담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괴담 유포자를 물색해 엄격히 처벌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그때는 이미 열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후였다.
    이미 괴담으로 일축하고 소문을 차단하기엔 희생자가 너무 많이 불어났으며, 사회의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부는 문제점을 타개하려 의학 전문가들의 출석을 요구하고, 임시연구센터를 세웠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연구는 진행되었으나, 연구에는 차도가 없었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희생자들 또한 어떠한 의료행위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점점 희생자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는 공포에 빠졌다.
     
    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기에, 정부는 무능함에 대한 질타는 피할 수 있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정부와 의료계가 야속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전염병이 틀림없다 생각하여, 희생자들을 격리시켰지만. 전혀 지역적 공통점 없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인 터라, 발병 전 감기에 걸려 있었다는 공통점 외에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독일에서 전 세계에 한가지 사실을 공표했다.

    현 심각한 사태의 원인은 슬립타이저에 있다.
     
    수면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이, 수면을 통해 항상 재생되고 보호받아 왔지만. 인류가 더이상 수면을 필요로 하지 않자 그 면역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변이를 잘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체의 약한 곳으로 변질되어 버린 이 곳을 공략하게 되었고, 곧 파괴시켰으며. 이로인해 영원히 잠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을 거듭했어도, 인간의 뇌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 투성이이기 때문에 실로 어떤 방법을 거쳐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고, 단지 진행상태만을 파악했을 뿐이라고 발표했다. 세상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혼란으로 치달아갔다.
     
    이를 복용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거의 인류의 대부분이 이 약을 복용했다. 가격이 매우 쌌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도 더 열심히 일 해서 돈을 벌고자, 이 약을 너도나도 사먹었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여태껏 먹던 슬립타이저를 내팽겨치고 복용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미 인류는 틀린 길로 너무 많이 걸어온 것일까, 이미 면역력을 잃어버린 인류가 태반이었고, 갑자기 슬립타이저를 끊은 사람들은 감기에 들 시간도 없이 가사상태에 빠졌다. 이미 두뇌가 잠을 통해 몸을 회복하는 법을 잃어버린 탓이다. 슬립타이저가 일반인들에게 배포된 지 불과 한달 하고도 며칠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약의 개발회사에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이미 개발자를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은 도피를 끝낸 상태였고, 그들이 도피하지 않았더라도 사태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실의에 빠졌고, 혼란이 가중된 사회가 얼마나 무질서 해 지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전 세계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도둑과 강도, 방화, 살인이 판을 쳤다. 신이 인간을 심판한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이비 종교도 부쩍 늘어났으며, 도시 곳곳에는 군대가 파견되어 경찰과 함께 치안을 담당했다.

    그러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만다.
    병이 진화했다.
     
    첫 발생이 어디서 있었는지는 모른다, 언론은 곳곳에 일어나는 폭동을 취재하고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 바빴으니까. 하지만 언론이 다루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병의 진화를 알아채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식물인간 중 하나가 깨어난 것이다. 의료진들은 화색이 되어 환자에게 달려갔겠으나, 그 환자는 곧바로 의사의 목덜미를 물어 뜯어버렸다. 의료진의 미소가 비명과 절규로 바뀌는 순간이었겠지. 이런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회에 흩뿌려지듯 발생했고, 병자에게 물린 희생자 또 한, 그들처럼 사람들을 공격했다.
    뻔하디 뻔하지만 언론은 이들을 좀비라고 소개하며 대서특필하고 메인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보로 전해진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인근 쇼핑센터와 마켓에 득달같이 몰려들어 식료품을 사제끼기에 바빴다. 십대 소년들이 노인들을 구타해 먹을것을 갈취하고, 건장한 청년들은 식품을 독점하기 위해 가게 문을 걸어잠근 주인을 거리로 끌고 나와 공개처형했다. 시민들은 칼과 총을 들고 거리로 나와 강도로 돌변했다. 사회는 미쳐갔고, 적으로 돌릴 상대가 없자, 칼 끝을 정부와 군대를 향해 돌렸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좀비들이 발생해 중세시대의 흑사병처럼 번지고 있는 와중에 멀쩡한 사람들까지 폭도로 돌변해 군대를 공격하니 실로 속수무책이었고, 탈영병이 급증했다. 우스운 일은 지휘관이나 정부 측 관계자들은 이미 벙커 안으로 숨어들어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들이 누가 어떻게 알아내는지는 몰라도 인터넷 곳곳에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오인건은 이러한 소식을 끊임없이 접하면서도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있었다. 나설 이유도 없었고,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집에는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는 그의 성격 덕분에 식량이 꽤 많이 비축되어 있었고, 나가봤자 험한 꼴만 당할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저 인터넷만 주구장창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더 지났다.
     
    오인건은 기르던 달팽이가 있었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달팽이라는 것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의문스러울치 만큼 이해가 안되지만, 세상에는 거미나 지네를 기르는 사람도 있으니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무엇이다 라고 딱히 규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달팽이는 의사를 표하지 않는다. 더듬고 먹고 자고, 듣지 못하고 보질 못하고 그저 옆에 있어 줄 뿐이다. 별로 남과 소통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흔한 이유다. 단지 독특한 점은 인건은 단 한번도 이 달팽이를 건드려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깔려있는 흙이나 달팽이가 먹고 남긴 채소의 잔해, 껍데기의 조각같은 청소해주어야 할 요소들은 달팽이가 무언가 위에 올라섯을 때만 갈아주었다. 건드리면 축축하고 끈적하고 멀컹한 느낌이 날 법 하지만, 자신이 건드렸을 때 달팽이가 겁을 집어먹고 집에 들어가 버리는 모습이 보기 싫은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을 달팽이 따위에게 대입을 시키는지도 몰랐다. 건드리고자 하면 그 끈적하고 말캉한 살을 건드릴 수도 있지만 '신동집의 오렌지' 에 빗대어 말을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내가 가지고 있던 달팽이가 아니게 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달팽이라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견딜 수가 없다.
    인터넷이 일주일 전 부터 끊긴 것이다. 인터넷은 왠만해선 끊기지 않는다. 근처에 전선 따위가 끊어진 것 도 아닐 것이다. 아마 서버를 운영할 사람이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그 생각을 더욱 확고히 굳게 만든 일은 이틀 뒤에 전기가 끊긴 일이었다. 현대 문명인이 인터넷과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더욱이 컴퓨터에 많은 것을 의존하던 인건의 경우에는 언급할 필요조차 무용한 것이다. 집중할 일이 사라지니 불안감이 연신 엄습해왔고, 뭐라도 해봐야 안정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구가 수면 위로 머리를 들기에 이르렀다.
    소소한 내 삶의 작은 일탈이라도 꿈을 꾸는 것일까.
    남은 식량은 썩기 전에 전부 먹어치운 것 외엔, 한 가마가 조금 모자라는 뜯어놓은 쌀 포대 하나(여지껏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생쌀로 씹어삼켰다)와 애용간식 트롤리 사우어 구미 캔디 한 박스, 그리고 김치나 장아찌 한줌 등의 발효식품이 다였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은 식량이 줄어들 수록 가중된 데다가, 최종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가장 큰 이유는 담벼락을 넘어 들어온 사람의 걸어다니는 시신일 터였다.
    일주일 전에 한 사람이 담을 넘어 들어왔다. 마당에 선 그는, 창문에 비치는 모니터의 불빛을 본 것일까, 연신 방범창을 두들기며 살려달라 신음했다. 반나절 뒤, 조용해진 마당은 적막만이 감돌았었다. 가끔 들려오는 총성과 폭음으로는 그 적막을 묻어버리기엔 부족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신음소리가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다. 녹이 슬고 낡고 투박한 쇠를 돌로 긁어내는 것 같은 굵직한 쇳소리가 누군가의 목청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주인이 얼마 전 담을 넘어 들어온 남자에게서 나오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고, 그가 어떻게 숨이 끊어진 뒤에 다시 소리를 낼 수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더욱 뻔히 드러나는 사실이었다.(정확히 죽은것은 아니겠지만, 의식을 잃고 인간성을 잃은 순간을 죽는 순간이라고 치기로 했다)
    이들은 수면으로 몸을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 여기저기가 거무튀튀하고 거칠거칠하며 섬세하게 힘을 쓸 수가 없다. 대신 적당히 몸을 사용하게 만드는 리미터가 망가졌기 때문에(두뇌가 망가졌기 때문이리라) 무식하게 힘이 세고, 날래며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이다.
    방범창 따위야 얼마든지 뜯어버리고 침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인건은 더이상 소리하나 낼 수 없었다. 그 점은 그에게 크나 큰 압박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겨주신 큰 집이 그의 삶을 이어주는 생명줄이 되고 있었다. 담이 높아서 왠만해선 누군가 넘어 들어올 수 없고(의식이 있는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 들어올 수 있겠지만, 지능이 떨어진다면 들어오기 힘들다), 건물도 튼튼해서 왠만한 충격은 버티는데다 침입로가 한정되어 있다. 집에만 있다면 안전하다는 현실이라면 왜 인터넷이 끊기고 전기가 차단되겠는가, 왠만한 것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튼튼한 집 덕분에(정확히는 높은 담벼락이다) 여태껏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인건은 부모님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더욱 물씬 솟아나는 것이었다.
     
    을씨년스럽게 밤 바람이 집의 창문을 긁고 지나갈 때는, 방음창이지만서도 그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달팽이 한마리와 단 둘이 남겨진 그의 가슴에도 미세한 울림을 전해 주고 있다는 것은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많은 갈등이 그를 끌어안고 놓아주질 않았다. 목숨을 걸고 집 밖으로 나서 볼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집에서 버틸만큼 버티다 굶어 죽을 것인가. TV나 에어컨의 리모콘 따위에서 긁어 모은 건전지 몇 개와 비상용 랜턴, 무기로 쓸 수 있을것 같은 쇠망치와 식칼. 그리고 여분의 옷과 세안도구, 식량의 전부와 담요하나. 언젠가 등산을 가고싶다는 약간의 생각에 충동구매를 했던 등산용품셋트(나침반이나 망원경, 다용도 칼 따위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식수까지. 집을 나설 짐은 다 싸놓은 상태였다.
    여실히 느껴지는 것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로 자신이 뭔가를 행동하기 전에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먹을것이 필요하면 사오고, 먹고싶은것이 있으면 사오고. 갖고싶은게 있으면 사오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원하는 생활방식은 고수 했지만, 어디를 가볼지 어떤 행동이나 어떤 일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등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던 것이다.
    이 목숨을 담보로 한 심한 갈등에서도 그가 집 밖으로 단 한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고민과 갈등을 부여잡고 이틀을 더 버텼다.
     
    솔직히 씻고 싶었지만, 먹을물도 부족한 탓에 세수나 양치조차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고약한 냄새가 머리와 얼굴에서부터 퀴퀴하게 방 안을 메우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손바닥 따위가 콤콤하고 찝찝한 느낌이 연신 그를 괴롭혔지만 수도가 끊긴지는 전기보다도 오래 되었고, 솔직히 수도가 나온다 하여도 수도관리청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겁이나는 까닭에 마시거나 사용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병이라도 옮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와중에 밖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워메 씨벌, 이게 뭐시여!! 집주인인가!?"

    꽤 오랜시간동안 듣지 못했던 사람의 육성이었다. 이윽고, 마당에 건재히 돌아다니고 있던 좀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면서 한바탕 큰 소동이 일었다. 마당에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정원손질 도구나 화분따위가 걸려 넘어지고 있음은 소리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야!! 오빠 조심해!!"
    "이 새끼가, 어딜!! 덤벼!! 이!! 시끼가!!!"

    잠시 뒤, 소란은 잠잠해졌고 뭐라고 소곤대는 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방음창이다 보니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얼 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현관문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것이다. 그는 상대가 문을 깨부수고 들어올까 겁이나, 며칠간을 떡진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순식간에 현관문을 열어제꼈다.
    문 앞에는 눈이 둥그렇게 뜨여진, 제법 반가운 눈치를 보이고 있는 남녀가 한 쌍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터라, 목이 많이 잠긴 소리로 오인건은 나직이 말했다.

    "들어오세요."
     
    살집이 두둑히 잡힌 껄렁해보이는 남자와 초췌한 몰골이지만 명랑하고 생기가 있어 보이는 여자.
    이 집에 이렇게 손님이 들어온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오랜만에 맞이한 손님인 탓도 있지만,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기도 하고, 더욱이 여자쪽은 예쁜 미인이었기 때문에 인건의 기분은 다소 상기되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이다. 이 와중에 남자가 통성명을 시작했다.

    "나는 장종수고, 이 애는 내 동생 장민아요. 허허, 집 좋네."

    서른 초반 쯤 되어보이는 남자는 넉살좋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간혹 로봇이나 만화 캐릭터의 피규어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를 훑어보기도 하였고, 장식용 상어 아가리나 그림 따위에도 관심을 보였다. 시뻘건 야자나무 수 놓아진 반팔 남방 사이로, 시퍼런 문신 따위가 비칠때는 겁이라는 녀석이 조금씩 머리를 들기도 하였지만, 워낙 친근하게 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인건도 다소 마음이 놓이는 터였다.

    "혹시, 씻을 물은 없겠죠?"

    민아가 조심스럽게 인건에게 물어왔다. 인건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마실것도 부족할텐데 있을리가 없지' 하며 자기혼자 체념하고는, 냉장고나 부엌 선반 따위를 열어보며 식료품을 파악하였다. 하지만 제지할 이유도 없는 것이, 이미 모든 먹을 것은 인건이 배낭에 다 챙겨두었기 때문에 부엌은 비어있는 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이 큰 집에 혼자 사시고?"
    "네, 저, 음.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요."

    종수는 방정맞게도 느껴질 법한 웃음을 껄껄 터뜨리고는 편하게 생각하라고 인건을 독려했다. 두 사람이 다소 버릇없게도 느껴질 법 했지만, 싫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물론 기분이 나빴어도 싫은 소리를 할 수는 없는 성격이지만). 거기다 이들도 간만에 생존자를 발견한 것일테고, 안전한 장소도 발견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터 였기 때문에 내심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먹을것도 없는데 여긴 왜 남아계시오? 혹시 나가기가 무서워서 그라요?"

    인건은 살짝 웃고 고개를 떨궜다. 별로 이런 깊은 개인사정은 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시끌벅적하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지금은 좋은 것이다. 처음보는 낯선 이들에게서, 보호자가 옆에 있다는 마음을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가지게 되고 있다는 것이 안심되고 편안해지는 이유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아무래도 사고가 터지면 이들이 보호해 줄 것 같았으니까.
    우선 이 두 남매는 한 숨 자면서 여독을 풀겠다고 말하기에, 빈 방을 열어주고 침구를 깔아주었다. 방을 나서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곯아 떨어졌고, 인건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집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깨끗하고 깔끔했으나(먼지는 자주 털지 않아서 많이 쌓여있는 곳도 있었지만) 인건의 방만 지저분하고 어지럽혀져 있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방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욱 하고 몰려와섯는 악취와 함께, 그는 이러한 방의 작태가 진절머리났다. 깨끗한 거실에서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혼자서 끙끙 앓듯 생활했던 이런 쓰레기장같은 방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과 동시에, 본인이 유일하게 평안함을 느끼던 단 하나의 장소를 본인이 진저리치며 싫어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도 생각하여 웃음이 절로 나기도 했다. 사람한번 봤다고 이렇게 본인이 쉽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가진 고뇌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평상시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손님이 아니라 침입자 정도로 여기고 끔찍하게 생각했겠지만, 마치 세기말같은 이 사태가 자신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놓았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무척 경계하고 싫어하던 본인이었으니까.
    인건은 두 사람에게 부모님의 방을 소개하였다. 침대 사이즈가 2인용이기도 하였지만, 왠지 남같지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접객실도 있었지만 궂이 안방을 소개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본인을 보호해주길 바라고 안심하는 모습이 너무나 창피하고, 본인이 누구보다도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지만 의지할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상기되는 면도 없지않아 있었다.
    두 명의 손님은 그렇게 하루종일 자고 다음날 아침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아침부터 인건은 배낭을 열어 생쌀과 트롤리 사우어 구미 캔디 한줌, 그리고 물과 고추장 따위를 꺼내어 아침상을 차렸다. 유치원생 소꿉놀이 밥상같이 보여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식량이 없다는 생각에 걱정도 들고 근심이 가득해졌다. 생쌀에 식수를 조금 부어 물에 불렸고, 트롤리 사우어 구미 캔디(지렁이 모양의 새콤달콤한 젤리이니, 지렁이 젤리라고 하겠다)는 반찬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간장종지를 꺼내어 그나마 반찬다운 고추장을 조금 덜어서 내어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깨우러 안 방으로 들어섯다.
    두 사람은 잠에서 깨자마자 산해진미 진수성찬을 받아들듯 애들 장난같은 식탁을 맞이하여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 정말 고추장의 고춧가루 한 톨, 지렁이 젤리의 설탕가루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운 뒤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식탁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인건도 간만에 맛있게 식사를 하였고, 자신이 차린 식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근래 몇년간 이런 흐뭇한 일이 있었던가.

    "햐, 그래도 식량이 남아있긴 했나보네요?"
    "아, 네. 남은 식량은 전부 배낭에 싸 놨었어요. 그걸 조금 꺼내봤는데, 맛있게 잘 드셔서 다행이네요."
    "아 맛있다마다요! 한 삼일을 물 만 조금 먹고 내리 쫓겨다녔는데 당연히 꿀맛이죠!"

    민아도 한마디 흥겹게 거들었다.

    "이거 젤리 디게 맛있네요. 이런 과자 먹어본게 얼마만인지."

    민아의 한마디가 인건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흔들어놨다는 것은 말할 이유조차 없이 당연했다. 민아는 웃으니까 더욱 예뻤다. 얼마나 예뻤나 하니, TV에 나오는 영화배우들 만큼이나 예뻤다. 그런 감상을 속으로 줄줄이 늘어놓고 있는 인건에게, 종수는 나직이 물음을 던져왔다.

    "그래, 배낭까지 싸 놓으셨다고 하니 인제 나가실 참이신거 같고. 우리랑 같이 가시겠수? 내 이래뵈도 쌈 좀 합니다? 좀비 두 셋쯤이야 거뜬하지. 그리고 내 동생이 의사요 의사! 저어기 그, 서울대 나온 의사란 말이지. 서울대 들어가기 무지무지 힘든 것 아실것아뇨?"
    "아, 예. 알다마다요. 대단하시네요."

    방금 전까지는 무척 든든해 했지만, 다시 한번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들일지 재어보고 있는 인건은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의 문제만큼 진지한 것이 얼마나 될까. 인건은 다시한번 난제를 맞이하여 밤새도록 고민했고, 여지껏 한달은 고사하고 몇년을 고민했던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할것인지 말것인지를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수심깊은 그의 심정은 얼굴로 여실히 드러났고,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들에게 그것은 입을 열지 않고 얘기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밖이 겁나시나본데, 언제까지고 여기서 죽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조용히 몰래몰래만 다니면 되고, 좀 위험하다 싶으면 담 몇개 넘어가면 금방 못따라오니까 그 틈에 도망가면 되고. 우리도 그 폐허에서 두달넘게 살아있는것 아뇨? 아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이고, 내가 딱 보니까 우리 인건씨가 착하고 바르게 보여가지고. 그 뭐시냐, 동생같이 보여서 그래요. 아, 안그래요? 살아남은 사람들끼리야 뭐 가족같은거 아뇨? 그렇잖어? 으응?"

    인건의 마음속에 흔들리는 불씨가 더욱 더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함께 하자고 한 이가 내 생애에 몇이나 있었던가, 아니 근래 몇년간 한명이라도 있었던가?

    "인건씨, 같이 나가요. 문제가 있으면 얘기하구요, 같이 해결하면 되잖아요?"

    차분히 말을 건네는 민아의 말이 인건에게 많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하나의 결단으로 인건의 마음은 완전히 기울었다. 인건은 뭔가 결심한듯, 벌떡 일어나 어느때보다 힘차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달팽이 사육장을 꺼내어 들고 나와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육장을 열었다. 투명한 사육장 안에는 집 안에 웅크리고 나뭇가지에 딱 몸을 붙인 채 잠을 자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사육장 뚜껑을 열자 축축한 흙 내음과 약간은 비릿한 알 수 없는 냄새가 후욱 하고 몰려나왔다. 그리고 인건은 달팽이를 나뭇가지에서 떼어 꺼내어들고는 생수를 그릇에 조금 부어놓고 달팽이를 안에 담궜다.
    차가운 물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자 달팽이는 살기위해 집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때 인건은 처음으로 달팽이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끈적하고, 멀컹멀컹할 것만 같았던 살은 다소 단단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아, 이런 느낌이었구나. 처음으로 직접 느낀 달팽이의 촉감이었다.
     
    잠시 뒤, 인건은 배낭을 매어들고 집을 나섰다. 마당에 잠시 서서 뒤를 돌아 그가 여지껏 태어나고 살아온 집을 바라보았다. 이 커다란 집 한채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 이제서야 나서게 되었다.
    그는 정원 창고를 뒤져 챙겨가면 이로울 공구를 몇 개 챙기고, 오이나 고추, 호박, 옥수수 등의 씨앗들이 담긴 봉투도 챙겨가지고 나왔다. 현관문을 살짝 열어보고는 밖에 좀비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이 수색행위는 인건이 전날 저녁에 지렁이 젤리가 담겨있던 종이상자와 손거울 조각 두개로 만든 잠망경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좀비가 없음을 확인한 일행은 살며시 집을 빠져나왔다.
    한블럭 한블럭 이동하기가 굉장히 긴장되고 힘들었지만, 그나마 한산해서 한번도 발각되지 않고 동네를 옮겨갈 수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대충 종수가 알려준 기본 사항들이 있다.

    "사람들이 사제기를 하고 먹을것을 구하러 대형마트로 주로 모여들었었기 때문에, 그 주변만 아니면 좀비가 거의 없는 편이지. 그리고 군대가 숫자를 꽤 많이 줄여놓은 것도 한 몫 하기도 했고, 생존자 몇이 발각되서 도망칠 때는, 대부분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다가 발각되었었는데 그때는 꼭 큰 길가로 도망치다가 잡히더라구? 그래서 이런 주택가 좁은 길 구석구석엔 좀비가 많이 몰려있지 않은 편이지."

    종수가 집을 나서기 직전에 한 마지막 말은, 주택가 곳곳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나 편의점 위주로 들어서서 식량을 비축하고. 최종 목적지는 서울 용산에 자리잡고 있는 국방부와 미군부대라고 했다. 그곳에서 총기나 군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고, 운이 좋으면 군용 트럭을 이용해서 시민들의 버려진 차량으로 가득 메워져 막혀있는 도로를 제설차가 눈 밀어버리듯 밀어버리면서 강원도 같은 안전한 곳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와중에 군 비상식량이 잔뜩 쌓인 벙커를 발견해도 좋고, 둘 다 발견을 못하더라도 총과 약간의 군용식품만 있어도 살아남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워하나가 우뚝 서 있는 것이 상징인 남산을 거쳐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거의 남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산으로 올라가기 직전, 날이 저물기 전에 엉망이 된 편의점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몰래 식료품을 챙겨 계산대 뒤의 스테프 룸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먹었다. 편의점 내부에 손님으로 보이는 좀비 하나와, 알바로 보이는 좀비 하나가 있었지만 누가 손 쓸 틈도 없이 종수가 휘두른 쇠 지렛대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인건에게 사람의 머리는 저렇게 쉽게 바수어지는구나 하고 처음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여느 영화처럼, 피가 튀어서 감염이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의사 출신인 민아가 피가 아니라 설사 물리더라도 한번도 슬립타이저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먹을것이 모자라 생수 조금에 생쌀만 씹던 생활인지라, 편의점에서 간만에 맛본 짭쪼름한 참치와 번데기 통조림의 맛은 정말 인건에게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염분 부족이었던 모양인지, 그렇게 짠 통조림들로 배를 채워 놓고도 모자라 짭짤한 맛의 감자칩이라던가, 맛이 가기 직전의 소세지까지 먹어치워 버렸다. 건량은 이동할 때 먹어야 한다고 종수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육포나 오징어포 마저 먹어버렸을 것 같다. 온통 짠 음식들을 실컷 먹고 나자 이제는 갈증이 느껴져서, 무거워서 가방에 담아 가지고 갈 수 없는 캔 음료 위주로 연신 들이켜댔다.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도 인건과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계속 같은 것을 먹고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콜라를 단숨에 들이킨 종수가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말했다.

    "캬아. 정말 운이 좋아. 여기는 폭동의 습격을 받지 않은 모양을 보아하니, 사람들보다도 좀비들이 먼저 장악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정말 운이 좋아. 편의점이라는 것을 발견해도 음식이 없기가 부지기수거든."

    이윽고 밤이 되었다. 주변은 가로등 불 빛 하나 없는 탓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비록 유리로 되어 있지만 편의점의 문도 굳게 걸어 잠궈 놓았고, 스테프 룸의 목재 문 또한 마찬가지로 잠궈 놓았으니 소리만 크게 내지 않고, 빛나는 물건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들킬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안심했다. 그러나 불침번은 필요 했기 때문에, 가장 약해 보이는 인건이 맨 처음으로 불침번을 서고(심적으로 많이 불안해 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 다음에 민아. 마지막으로 종수가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종수 말로는 날이 밝을 때는 좀비들도 눈이 보이기 때문에 더 활동적으로 변해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일어나 있는것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종수는 역시나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인건 또한 하루종일 힘들었던데다 긴장이 급히 풀리고 배부르게 먹은 탓에 무척이나 졸리웠다. 하지만 졸지 않으려 노력하며 몸 여기저기를 꼬집기도 하고 이를 악물기도 하는 등 애처로울만치 애쓰고 있었다.
    그때 민아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이구, 불쌍해라. 그렇게 졸려요?"

    다 큰 남자가 잠을 쫓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퍽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캄캄한 어둠이 이때만큼은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 인건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리라. 인건은 무안함을 쫓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있던 차라 화제를 돌렸다.

    "종수씨나 민아씨는 원래 어떻게 살고 있었어요?"

    인건은 물음을 던지면서도 내심 후회했다. 조금 더 운치있거나 영리해 보이는 질문을 하지 못하고, 마치 이래서야 초등학생 같지 않은가. '어떻게 살고 있었어요' 라니 너무나 뭉뚱그려지고 목적없는 질문인 탓에 이것만한 우문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민아는 나름대로 착실한 현답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말해주는 과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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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에 쓴 작품 재업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죄송해요 ㅠㅠ 중복이라 죄송해요 ㅠㅠ
     
    이어서 연재할 생각이라 ㅎㅎ 다시 올려봅니다 ㅎㅎ
     
     
     
     
     
    윈스턴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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