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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아직 살아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애플잭의 숨 찬 소리가 동굴 속에 크게 울려퍼졌다. 이번에도 그녀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있었지만, 다행히 영혼이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역겨운 기분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머리에 쓰면서, 그녀는 최근들어 자꾸만 늘어나는 것 같은 문제들의 목록에 불쾌할 정도로 생생한 악몽을 꾼 사실을 추가했다.
햇빛이 동굴 입구로부터 비쳐 들어오자 그 깊이가 눈에 들어왔다. 뒤돌아선 애플잭은 적잖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동굴은 햇빛이 더이상 비치지 않는 안쪽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끝은 도저히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플잭의 궁금증은 금방 사그라졌다. 한시바삐 이 섬뜩한 동굴 속에서 빠져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애플잭은 오른쪽 앞발에 한번 무게를 실어 보았다. 발굽이 그리 아프지 않다는 사실은 그녀를 다소 기쁘게 해 주었다. 부상이 악화될 위험 때문에 아직 뛰기는 무리였지만, 느긋한 걸음걸이만 유지한다면 높은 지대를 찾아 위치를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 안에 집으로 갈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 애플잭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다. 무서웠던 어젯밤, 살면서 가장 겁에 질렸던 밤이었지만, 그녀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암말이었다. 그녀는 밤중에 여태껏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무엇 때문에 하루종일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모자가 안전한가 확인해본 애플잭은 어깨를 쭉 펴고 동굴 밖으로 걸어나왔다. 햇빛의 각도와, 머리 위에 적당히 넓게 펼쳐진 하늘 위에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으로 보아,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다. 어젯밤 이후로 밤 중에 나와있을 생각이 없던 그녀로서는 다행이었다. 그러나 탐험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동굴이 뚫린 절벽의 모습을 좀 더 잘 살펴보기 위해 애플잭은 동굴에서 몇 발자국 떨어졌다. 예상대로 단단한 암벽은 저 위로 곧장 솟다가, 안쪽으로 점점 굽어져 결국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산은 주위를 살피기에 최적의 장소였지만, 여기서는 올라갈 길이 없었다. 아예 다른 산을 찾기보다 한번 쭉 돌아보고 완만한 곳을 찾는게 더 나을 것이다. 돌아올 길을 쉽게 찾기 위해 애플잭은 동굴 입구 주변의 모습을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풀로 덮인 땅은 임시 거처로부터 경사져 내려가고 있었다. 동굴까지 올라오는 언덕에는 나무가 없었다. 경사가 끝날 때까지 땅은 풀로만 덮여 있었고, 그 끝에는 빽빽한 관목들과 함께 나무들이 위압적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애플잭은 나무들 앞에 툭 튀어나온, 이끼가 무성한 큰 바위를 표지물로 삼았다. 순간 들려온 낯익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녀의 두 귀가 움직였다. 분명 덤불이 움직이는걸 흘끗 본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제의 풀숲을 바라보았지만 일 분이 지나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평소 애플잭은 작은 소리에 잘 반응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다. 밀림에서 날 법한 다른 소리의 부재가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머리를 흔들어 어떻게 할 수 없는 걱정을 치워버리고, 애플잭은 돌아서서 가파른 산을 오른편에 둔 채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밀림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이 멈칫했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더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움직임을 찾아보려는 처음 한두 번의 시도가 결실없이 돌아오자 나중에는 멈추어서 살펴보지도 않았다.
애플잭의 걸음걸이는 빠르지 않았다. 발굽이 심하게 다치지 않았음을 두 공주님께 감사하면서,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느긋한 걸음걸이도 열대의 더위 때문에 몹시 힘들었다. 산 주변의 땅은 바위가 많았기 때문에 발 밑에 자라있는 식물은 짧은 풀 이외에 없었다. 오른쪽의 암벽은 꾸준하게 굽어질 때도 있었고, 앞으로 쭉 뻗다가 갑작스럽게 꺾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암벽이 앞으로 곧장 뻗어 있었지만 저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게 눈에 보였다. 몇 분 후, 애플잭은 모퉁이를 돌아 드디어 목적지를 발견했다. 두 시간이나 걸린 탐색 동안 그녀는 산을 오를 길이 있을지 긴가민가 했었지만, 눈 앞에 드러난 광경은 힘든 여정을 값어치 있게 해 주었다.
동굴이 있던 쪽을 앞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애플잭은 지금 산의 뒷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산을 올라갈 길이 시작점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었다. 딱히 말해 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쪽이 덜 가팔랐다. 비탈길은 앞 3 미터부터 풀 없이 오로지 자갈과 작은 돌로만 덮여 있었다. 과거에 한번 산사태가 일어난 듯한 모습이었지만, 밑에 풀이 자라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 일 같았다. 경사는 저 멀리 계속 이어지다가 산의 삼분의 일 지점에서 평탄해졌다. 애플잭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분의 일 정도라면 그녀가 바랄만한 좋은 시작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소중한 아침 시간을 이미 많이 써 버렸다. 시간은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동굴에 도착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몸서리쳤다.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았다. 물을 찾아야 한다. 그 전처럼 이상한 해변가에서 깨어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비틀거리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물을 찾는 작업은 훨씬 수월했다. 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밀림 속에서 수원을 찾은 애플잭은 오를 준비를 하기 위해 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명료한 정신과 야외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 있으면 물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친구들 중 몇몇은 약간의 운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겠지만, 애플잭은 운을 믿는 포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운’ 덕분에 그녀의 과수원이 이퀘스트리아 최고가 되었다고도, ‘운’ 덕분에 생애 최고의 다섯 친구들을 만났다고도, ‘운’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이퀘스트리아를 여러번 닥쳐온 종말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고도 믿지 않았다. 아니, 운은 애플잭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믿음 하나로 그녀는 삶의 여러 고난을 극복해 나갔고,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무의미한 성찰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음을 깨달은 애플잭은 산을 향해 서둘러 떠났다. 다친 앞발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느려졌지만 대체적으로는 괜찮았다. 곧 그녀는 비탈길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저 위에서 찾을 수 있을 다양한 가능성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가장 좋은 방안은 무슨 문명이든 찾아서 집으로 가는 비행선을 타는 것이다. 아무런 결실이 없더라도 어디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내륙 쪽인지 찾아보고 그 길이 이퀘스트리아로 이어지기만을 바라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플잭은 모자를 고쳐쓰고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높은 등산길에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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