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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당은 대의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시민의 투표를 독려하는 한편 투표율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도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당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정당은 아주 독특하다. 다른 여타 국가들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반해, 이 정당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시민들이 투표를 많이 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에 기대어 정치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이 정당이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정당은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 무시무시한 저력을 갖추고 있다. 생각할수록 기이한 일이다.
ⓒ 연합뉴스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국민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현행 '만 19세 이상'에게 주어지는 투표권을 '만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해달라고 여당에 주문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론화되었던 의제를 정 의장이 다시 꺼내든 것이다. 당시 국회에서 논의되었던 선거연령 하향 문제는 여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여당은 민법을 예로 들며 18세 투표연령자는 심신의 발육이 충분치 못해 판단능력이 부족한 '행위무능력자'들이기 때문에 투표연령 하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여당의 진짜 속셈이 젊은 층의 투표가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젊은 층의 투표율은 선거 당락의 주된 변수 중의 하나다. 여당의 주장은 또한 OECD 국가 34개 국중 32개국이 18세로 투표연령을 조정하고 있고, 전 세계 232개국의 93%에 해당하는 215개국이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적 추세와도 동떨어진다. 저들의 주장이 솔직하지 못할 뿐더러 대단히 정략적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입장은 아주 솔직하다. 그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연령 하향 문제가 불거지자 "수도권에서는 18세 연령이나 이런 것은 너무나 파장이 커서 수용이 어렵다"며 "오차 범위내 초접전 지역이 대부분인데 전체 선거의 절반이 수도권인데 선거연령을 줄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제안"이라고 말했다. 그 스스로 인정했듯이 선거연령 하향이 전체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 경향신문
여당 내에는 원유철 원내대표보다 더 화끈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사람도 있다.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선대위총괄본부장을 역임하는 도중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의 전략은 이 중간층이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다면서 투표 자체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끔찍한 발언이 여당의 선거를 책임지고 총괄하는 선대위총괄본부장의 입에서 나왔다. 대의민주주의를 완벽하게 부정했던 이 사람은 지금 여당의 수장이 되어 있다.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여당의 모습은 투표시간연장을 거부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비용의 문제를 들어 묵살해 왔다. 그러나 '사자방' 같은 각종 무분별한 국채사업으로 낭비된 수십조원의 혈세에 비하면 투표시간 연장에 드는 100억원의 비용은 조족지혈에 불과할 뿐이다. 선거 때마다 정부와 선관위, 지자체가 홍보예산을 투입해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 비교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제는 비용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책 결정의 권한을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리할 사람을 선출하고 그에게 정책 결정을 위임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율이 높아야만 한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대의민주주의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으며, 선출된 대표자의 대표성 역시 취약해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OECD 국가들 중 최하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투표율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각계각층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투표율 제고 방안은 대의민주주의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 중앙선관위
이 나라의 정당은 투표율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냐에 따라 두개의 범주로 나뉘어진다. 대의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과 투표율이 높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정당이 바로 그렇다. 이 둘 중 누가 대의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는 문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투표 포기전략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정당, 투표율이 낮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정당, 투표율 제고 방안 마련에 마음이 전혀 없는 정당에게 대의민주주의의 신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자 당착이다.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가로막는 정당이 계속해서 집권하는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는 힘들다. 도발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대의민주주의가 확장되려면 새누리당이 망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어야 살 수 있다. 어쩌면 이 역설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미래가 달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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