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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쓰던 놈이 또 쓰게 된 점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글을 시작하려 한다. 사실 그 동안 일베에 대한 근본주의적 탐구는 몇몇 분들에 의해 꽤 심도 있게 진행되어 온 터라, 필자가 할 것은 그 동안의 내용을 가공하여 재창조하는 것 밖에는 없을 듯 하다. 비교적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보고자 하였으나, 본인의 한계에 의하여 새로운 접근법은 사실 거의 바닥난 듯 하다. 이 시리즈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또 일베에 대해 이런 탐구를 해보는 것이 과연 얼마나 유익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필자는 그들의 정치적인 문제, 그들이 발산하는 모종의 파시즘에 대해서는 견제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그 동안의 글도 그런 문제의식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이번 글도 그런 접근법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조금은 진부할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의 한계다! OTL 이 부분은 독자들이 아량을 베풀어주길...ㅋ
오늘 이야기 해볼 주제는 포스트 모더니즘.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는 모더니즘의 구조주의를 탈피하여 해체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 사조다. 모더니즘의 세계관이 세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 유물론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담론을 지녔다면(대표적으로 칼 맑스가 모더니즘 철학의 대표주자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에서 탈피하여 구조로 똘똘 뭉친 세계를 해체하고자 한다. 익히 들었다시피, 푸코라던가 장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등등등...
아주 간단하고 거칠게 이들의 특징을 분석하자면, 세계를 거짓된 것 그 자체로 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 - 실재계를 덮고 있는 환상은 사실 모두 거짓된 것이다. 시뮬라시옹의 개념은 이거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법 - 국가 -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축을 관통하는 것은 그것이 언어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알튀세는 여기에 숟가락을 얹는다.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언어는 이데올로기를 수반하였고,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라는 조명이 더해진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은 이렇게 거짓되어 있다.
베충이들이 보여주는 일종의 "팩트" 싸움은 이런 근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팩트"는 전혀 거짓없고 사실 그 자체만을 회떠서 가져온다. 거시 담론에서 우리는 데이터로 이야기를 하지만, 이들은 데이터에서 회떠진 조각조각 - 그것을 "팩트"라고 명명하며 우리들의 세계관을 거짓된 것이라 뒤흔든다. "너희는 거짓을 보고 있다!"
소위 이들이 이야기하는 "저격"이니 "주작"이니, 제 3자가 보기엔 조금은 웃겨보일 수도 있는 싸움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 - 이것을 "무정부상태"라고 명명하자. 나는 이런 무정부 상태를 가져온 하나의 근거가 거시 담론이 가져왔던 역효과 - 08년 촛불이 만들어낸 하나의 반동적 현상임과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그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부분을 차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그들이 말하는 언어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실재에 가까운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촘스키가 던지는 한 마디는 강렬하다.
"진지하게, 그들(포스트모더니스트)의 원리는 무엇이며, 그들이 기반으로 삼는 증거는 무엇이며, 그들은 자명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는가? 이 질문들은 이론을 만든 누구에게라도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요청이다.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나는 유사한 상황들에서의 흄의 조언에 의지할 것을 제안한다. 태워버려라." - 노엄 촘스키
일련의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충이들이 보여주는 쓰레기 같이 왜곡된 해체 의식 - 예컨대 그들은 노무현의 과오를 비판하지만, 그 반대 급부에서 박정희에 대한 공통된 해체성 의식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가지는 "자명하지 않음"에 대해 "자명한 것"을 만들어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이야기하는 "팩트"는 일정하게 국가 - 법치 따위의 "자명한" 언어로 이쁘게 포장되어 있다. 사실 그것도 자명하지 않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의 해체성 의식이 가져다주는 자명하지 않음은 일정하게 이들을 자명한 것으로 재귀시켜놓았고, 그러한 재귀는 이들을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반동시켰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편에서, 이들의 언어가 가지는 한 가지 모순점 - 그들이 해체주의에 일조한, 혹은 그들을 "깨어있게" 한 주체는 무엇일까?
베충이들이 "거짓됨"을 비판하며 취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반대급부에서, 자신들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이런 비판은 사실 거의 위선에 가까운 것일 터. 그러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던가? 하물며,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지배된 대중이 존재하는가?
좌파들이 흔하게 비판하는 스탈린주의의 주요 맹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당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 대중은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지배되었다. 당과 대중은 갑과 을의 관계다. 당은 대중을 선도해야만 하고 대중은 자신들을 계몽하는 당에 충성해야 한다 - 스탈린주의는 이데올로기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 선진적 부위의 "지도" 당원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초인을 탄생시켰다. "위대한 수령 스탈린"
이 부분이 베충이들과 어떤 유사점을 지니는지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베충이들의 언어 - 선동 당한 반쪽짜리 주체 - 그리고 그것을 계몽하는 선진화된 "산업화". 이런 점에서는 그들 역시 계몽주의의 어떤 부분을 심각하게 오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탈린주의가 그랬듯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당은 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로써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계몽하고 각성시킬 의무가 있다."
"좌좀들의 선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 일베 애국 우익들은 선진화된 팩트로 무장하고 좌좀에게 선동 당한 대중을 산업화할 의무가 있다."
다른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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