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명·민병주·감하영 등 포함... "평판 체제 무력화해 사이트 공신력 저하"
유머, 시사, 경제, 과학 등의 정보를 공유해온 '오늘의 유머'(아래 '오유')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가 대한민국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01년부터 오유 사이트를 운영해온 이호철(44)씨는 10일 오후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종명 전 제 3차장 등 8명을 상대로 총 5000만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구 아무개 전 1기획관과 이 아무개 전 2기획관, 이 아무개 전 심리전단 안보3팀 5파트장,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도 포함됐다.
이 씨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댓글 공작으로 인해 사이트의 게시글 평판 체제(추천/비공감)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사이트의 공신력이 떨어져 사이트 운영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직원이 '오유'에서 여론 조작 활동... 사이트 공신력 떨어져"
▲ <오늘의 유머> 게시판.
이날 <오마이 뉴스>가 입수한 소장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4개팀) 직원들은 지난 2012년 8월 28일부터 12월 17일까지 '오유' 사이트에서 73개의 아이디를 개설했다. 이후 IP 주소를 기술적으로 바꾸어 접속하거나 복수의 아이디를 사용해 여당(여당 정치인)을 지지하고, 야당(야당 정치인)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 390건과 댓글 10건을 직접 작성해 게시했다.
이들은 게시글과 댓글 작성에만 그치지 않았다. '오유' 사이트에서 여당을 지지·옹호하는 게시글과 댓글, 야권과 야당을 비판하는 게시글과 댓글에는 1375회 '찬성' 혹은 '추천'을 하고, 야당을 지지·옹호하는 게시글과 댓글, 여당을 비판하는 게시글과 댓글에는 1460회 '반대'를 했다.
이 씨는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들은 여러 개의 아이디를 사용하고 IP 주소를 세탁해 개개인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형태로 위장하고 소수의 인원으로 여론 조작 활동을 했다"라며 "이로 인해 '오유' 사이트 평판 체제가 붕괴되었고, 평판 체제를 통해 '오유' 사이트를 관리·운영하는 자가 방해를 입었다"라고 했다.
이 씨는 "또한 '오유' 사이트의 회원들이 평판 체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고, 일반 이용자들의 추천·반대활동이 위축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오유' 사이트의 공신력이 저하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오유' 사이트는 이 씨가 지난 2001년부터 운영해왔다. 유머, 시사, 경제, 과학 등 83개 분야별 게시판으로 구성된 인터넷 커뮤니티로 가입 회원 수만 70만 명에 이르렀다(2012년 12월 당시). 가입 회원은 자신의 고유한 닉네임으로 게시글과 댓글을 쓰고, 자료 등을 올릴 수 있다.
특히 다른 회원의 게시글에 '추천'이나 '비공감' (반대)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오유' 사이트의 가장 큰 특징인 '평판체제'이다. 각 게시판의 게시글 가운데 10개의 추천, 3개 이하의 비공감을 받은 것은 베스트 게시판에 자동 등록되고, 그렇게 등록된 게시글 가운데 100개 이상의 추천, 10개 이하의 비공감을 받은 것은 베스트오브베스트 게시판에 자동 등록된다.
댓글에도 이러한 평판 체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은 추천수에 따라 메달 모양의 아이콘과 파란색 음영이 표시되어 눈에 더 잘 띈다. 반면 비공감(반대)을 많이 받은 댓글은 숨김 처리되어 '보기' 버튼을 눌러야만 해당 댓글을 볼 수 있다. 회원들의 '평판'(선호도)에 따라 게시글과 댓글 등의 공유 정도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 씨는 이것을 "자정 작용"이라고 부른다.
"'종북 사이트 운영자'라는 손가락질.. 깊은 정신적 피해 입어"
▲ 구치소에서 풀려난 원세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10월 6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된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구치소를 빠져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그런데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의 여론 조작 활동('댓글공작')으로 인해 이러한 평판 체제가 자정 작용이 붕괴돼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이 씨의 말이다.
이 씨는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행위 금지), 공직 선거법 제85조 제1항과 제86조 제1항 제1호(공무원의 선거관여 금지), 형법 제314조 제2항(업무 방해죄)의 직무상 불법 행위로 인해 사이트 유지·관리 업무에 방해를 입었고, 사이트 관리 및 평판 체제 복구를 위해 인적, 시간적 비용을 투여해야 하는 손해를 입었다"라고 했다.
또한 이 씨는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오유' 사이트에서 벌어진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종북 사이트'라는 오명을 얻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했다.
이 씨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 국정원 사이버팀 직원들이 '오유' 사이트에서 게시글/댓글 작성, '추천'/'반대' 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라며 "그런데 국정원은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오유' 사이트에서의 사이버활동이 대남 심리전이 벌어지는 종북 사이트에서 정당한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밝혔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로 인해 '오유' 사이튼 거의 대부분 회원들의 정치 성향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북 사이트', '좌빨 사이트'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라며 "위법한 여론 조작 활동을 '종북 사이트에서의 대남 심리전에 대한 대응'으로 포장함으로써 '오유' 사이트가 '종북 사이트'라는 오해를 받게 하고, 나를 '종북 사이트 운영자'로 비치게 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결국) 무력화된 평판 체제를 복구하고 사이트를 정상화하는 데만 상당한 인적, 시간적 노력을 투여해야 했고, '오유' 사이트가 국가에 의한 여론 조작의 앞마당이 되고, '종북 사이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종북 사이트 운영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됨으로써 깊은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라고 했다.
이 씨를 대리한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국정원 직원들과 그 협력자들은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만 단 것이 아니라 '추천'/'반대'를 조작했다"라며 "문재인 후보 지지 게시글과 댓글에는 '반대'를, 박근혜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는 게시글과 댓글에는 '추천'을 했다"라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이로 인해 '오유' 사이트의 평가 체제가 무력화되었고, 운영자는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라며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조작 사건에서 법원이 업무 방해 혐의를 인정했고, 검찰도 앞서 국정원 직원 김하영 씨의 업무 방해 혐의를 인정한 바 있기 때문에 '오유' 사이트 건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