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취 문제를 두고 장고를 해왔던 안철수 의원이 탈당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3일 (탈당) 기자회견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극적으로 타협할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로써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은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정치권에도 커다란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발' 정치 빅뱅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의 탈당은 그 자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안철수 의원의 탈당, 그 이후에 대해 예측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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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그에게는 신당 창당과 천정배 의원이 준비 준인 '국민회의'와 힘을 합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 둘 중 후자는 이미 창당을 선언하고 세를 모으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의 연대를 전제로 한다. 이럴 경우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국민회의' 내에서 다시 당권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과의 통합을 통해 학습효과를 맛본 그가 또 다시 이같은 과정을 반복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비주류들과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게 되면 그와 뜻을 같이하는 당내 비주류와 호남을 지역구로 한 의원들의 탈당 러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의 측근인 문병호 의원에 따르면 최소 20명에서 최대 30명에 이르는 현역 의원들이 순차적으로 탈당할 것이라 한다. 이렇게 되면 바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안철수 의원의 향후 선택지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 숫자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원내교섭단체를 이룬다면 당장 원내 3당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챙길 수 있다는 실익도 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하고 신당 창당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정치 지형은 2년 전과 매우 유사한 상황으로 흘러가게 된다. '안철수 신당'의 창당 준비가 한창이던 그때와 흡사한 정치 구도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안철수 의원에게는 최대 30명에 가까운 현역 의원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2013년 당시에는 안철수 의원을 포함한 몇 명의 현역 의원들과 외부인사만으로 창당을 준비해야 했다면, 이제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한 의원들과 함께 조직과 세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다. 2013년 당시 조직도 형체도 없던 '안철수 신당'은 단지 입소문만으로도 60년 전통의 민주당 지지율을 가뿐히 뛰어 넘었었다. 그런데 이제 조직과 체계, 그리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현역 의원들까지 대거 거느리게 됐으니 눈치밥 2년 만에 일궈낸 눈부신 성과다. 안철수 의원 본인의 말처럼 조직도 세력도 없던 그가 조직과 세력을 갖게 됐으니 '신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은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뒤흔들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이것이 2년 전이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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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 지지율의 훌쩍 뛰어넘었던 당시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극명한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당시가 안철수 의원 개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최대치에 이른 시점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체제에 실망한 유권자의 정치불신과 혐오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전략을 구사했다. 양비론을 내세워 여야의 중간지대에 안전하게 자신의 베이스캠프를 차린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에 편승한 그의 전략은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사안마다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보이는 그에게 유권자의 실망이 잇따른 것이다. 그는 양비론을 고수했고, 기존 정치세력을 구태로 규정했다. 구태는 낡은 것, 그래서 청산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낡은 것을 청산하겠다는 구호가 유권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면, 낡은 것을 대체할 새 것이 기존의 것과 비교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지를 반드시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아직까지도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가 없다. 실체가 없는 구호는 공허하며, 행동이 없는 비판은 무책임하다.
그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양비론에 입각해 기성 정치를 낡은 것으로 돌려 세우고, 이전보다 더한 정치 분열과 불신, 혐오를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국정원 사건을 여야의 혼탁선거로 인식하고,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해묵은 진영논리라고 일단락시킨 것이야말로 안철수 의원의 정치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정치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고, 새정치의 당위를 외쳐 왔던 그에게서 갈수록 기성 정치인의 풍모가 우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SBS 뉴스
새 것의 효용가치는 '새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얼마나 좋은가'에 달려 있다. 안철수 의원이 내세운 '새정치'에는 새로움도, 실체도, 좋은 점도 없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보여줄 무엇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다. '새정치'를 표방했던 그가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답습하는 순간 정치인 안철수의 생명력은 끝났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과 신당 창당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새정치'를 전면에 내세웠던 안철수 의원의 전략은 이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가 기성 정치인보다 더 빠르게 그들과 동화되어 버린 탓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헌정치'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정당이 있다. 평소 그 정당과 대립각을 세운 적도 없으니 그들이 안철수 의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그 정당은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스탠스와도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안철수 의원이 30명에 달하는 '덤'까지 달고 들어간다면 최고의원 자리는 따논 당상이고, 만에 하나 박심을 얻기라도 한다면 차기 대권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가지를 고려해 볼 때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선택지는 신당 창당이 아닌 새누리당행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정치를 위해서도. 안철수 의원이 부디 새누리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능력과 비전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