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리얼이 카시오페아에게 한눈을 팔며 딴생각에 잠겨있었다. 시비르는 자신의 집앞에 서있는 그의 옆에 조용히 다가갔다.
"넌 누구지?"
시비르가 이즈리얼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물었다. 이즈리얼은 몸을 움찔하며 놀랐다.
"아, 필트오버에서 온 이즈리얼이라고 합니다. 라이트삼촌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즈리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시비르는 매우 귀해보이는 장신구와 반짝이는 갑옷을 입고있었다. 누가 보아도 돈이 많다는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즈리얼의 말에 시비르는 고개를 기울이며 팔짱을 끼었다.
"라이트라.. 라이트가 누구지..?"
"고고학자인데요 머리랑 수염이 너저분해서 하얗고 입이 싼..."
"흠, 모르겠군."
시비르가 고개를 저었다. 이즈리얼은 잠시 머리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제가 듣기로는 시비르씨의 보물중 몇개를 감정해 주었다고 들었는데."
라이트가 누군지 떠오른듯 시비르는 손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 가방은 큼지막해서 모든 잡물건을 넣고 다니는 행상인 같은사람!"
이즈리얼은 잠시 머릿속에 라이트삼촌을 떠올렸다. 그리고 몇초 안돼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항, 너가 그의 조카였어? 어쩐지 조금 닮은것 같기도 하고."
"네 제가 조카 이즈리얼이에요."
"그래 무슨일로 여길 찾아오셨을까? 네 삼촌대신 내 보물들을 감정하러 왔나? 아직 때가 아닌데."
"오늘 하루만 재워주실수 있나요? 가능하면 내일 떠날때 식량도 얻고 싶은데요."
이즈리얼의 당돌한 말에 시비르는 순간 코웃음을 쳤다.
"맨입으로?"
"라이트 삼촌이 시비르씨에게 많은걸 해주었다고 들어서요."
"그건 라이트고 너는 너고."
시비르의 단호한 대답에 이즈리얼은 말문이 막혔다. 적어도 라이트 조카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그럼 돈을 지불해야 하나요?"
"물론이지,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이야."
"안녕히 계세요."
이즈리얼은 금방 단념을 하고 물러났다. 가격을 물어본다 하더라도 사막 한가운데 호와스러운 집에서의 하룻밤의 가격은 비쌀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돌아가는 이즈리얼을 본 시비르가 그를 불렀다.
"이봐! 너도 삼촌처럼 감정같은것도 할줄 아나?"
"네, 어느정도는요. 저도 학자거든요."
시비르는 이즈리얼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에 든 칼을 던졌다. 칼을 날라가며 십자 모양으로 변하더니 이즈리얼의 바로 앞에 꽂혔다.
"그걸 한번 감정해봐. 그럼 재워주고 식량도 줄수 있지."
시비르의 말에 이즈리얼은 십자모양의 칼을 들었다. 상상 이상으로 가벼운 무게와 날카로운 날이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게 느껴졌다. 금으로 된 칼의 날을 일일히 살펴보니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옛 물건은 대게 문양이 박힌걸로 어느층에서 사용했나 알 수있죠. 이 물건은 딱 보니 고대 슈리마제국 황실문양이 새겨져 있으니 황실에서 사용한 칼이네요."
"그리고?"
이즈리얼은 다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칼날이 아닌 동그란 손잡이를 보았다. 손잡이는 장식이 하나도 없었다. 손잡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용도는 그저 4개의 칼날을 고정시키거나 접을 수 있게 하는 역할로만 보인다.
"굳이 또 말하자면, 손잡이가 단순한 원형인것으로 보아. 실제 쓰이는 칼이 아닌 장식용으로 보이네요."
시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삼촌도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뭔가 디테일이 떨어지는군."
이즈리얼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 학자라면 관심이 있겠지. 내일 땅에 묻힌 고대 슈리마 제국으로 출발한다. 따라오면은 밥값은 벌게 해주지. 어때?"
"제 솜씨를 제대로 보여드리죠."
"대신 목숨은 보장 못해. 그래도 괜찮나?"
이즈리얼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든 목숨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지."
시비르는 살짝 굳은 그를 보고 살짝 웃더니 정문을 지키던 용병한테 말했다.
"오늘은 이만 문닫고 쉬도록 해. 저 아이한테는 방을 하나 내주고."
시비르의 말에 용병은 고개를 숙이며 이즈리얼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