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라는 이름이 찬란한 빛을 뿜던 때가 있었다. 그가 2011년 중반부터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돌며 펼친 ‘청춘콘서트’가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을 때 이미 그는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뭇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학력과 ‘성공한 벤처기업가’로서 사회에 대한 공헌도가 높다는 언론의 극찬 덕분에 안철수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갔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야권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그보다 지지도가 한참 뒤지던 박원순에게 양보함으로써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대통령 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안철수는 2012년 7월 23일 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해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대선 출마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고 선거운동을 하다 민주당의 문재인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주고 사퇴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안철수는 2013년 4월 24일 치러진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60.5%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2014년 2월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섰다가 3월 26일 민주당 대표 김한길과 전격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로 만들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7월에 실시된 재보선에서 참패함으로써 겨우 넉 달도 안 돼 대표직을 사퇴했다. 안철수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가’에 관한 의혹은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첫째, 그는 2014년 4월 16일에 터진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안철수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과 시민들의 단식이나 농성에 동참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둘째, 이명박이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저지른 ‘4대강 사업’을 빙자한 자연 파괴와 ‘영포그룹’과 재벌기업들에 몰아준 수의계약들에 대해서도 단 한마다 비판을 한 적이 없다. ‘자원 외교’라는 구실로 저지른 천문학적 액수의 국고 탕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셋째,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는 역사쿠데타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반론을 내세우지 않은 채 ‘강 건너 불 보듯’ 한 자세로 일관했다.
넷째, 지난 11월 14일 13만여명이 참가한 ‘민중총궐기대회’에서 68세의 농민 백남기가 경찰이 조준 사격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최종책임자인 대통령 박근혜에게 구체적으로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 지난 7월17일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안철수 의원과 문재인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다섯째,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는 ‘노동 5법’(민주진보 진영에서 ‘노동 재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노동 악법이 공포되면 ‘쉬운 해고’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노동자들이 삶의 벼랑으로 몰리리라는 것이 자명한데 말이다.
그런 안철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과 다음 대통령 후보밖에 없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지난 5월 새정연 대표 문재인이 혁신위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하자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김상곤이 위원장을 맡아 어지러운 당내 사정을 극복하며 일궈낸 혁신안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지도 않으면서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새정연 대표 문재인의 지도력이 약하고, 중대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할 때 우유부단한 자세를 보인다든지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워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적합한 절차를 거쳐 당 대표가 된 그를 ‘혁신’이라는 구실을 앞세워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혁신위원장 직을 사절한 안철수가 그러는 것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그는 지난 11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이 제안한 바 있는 ‘문안박(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연대’를 거부하고 ‘혁신전당대회’를 제안했다.
“야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혁신전당대회로 새로 거듭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야권은 왜 공멸하게 되었는가? 그 책임이 문재인에게만 있는가?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혁신위의 활동에 딴죽을 거는가 하면 ‘최소 20명의 현역의원 공천 배제’에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에 편승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던 안철수의 책임은 없는가?
여기서 안철수에게 엄중히 묻는다. 당신이 이루려는 ‘혁신’은 무엇인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는 박근혜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한 뒤 2017년 대선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과 비주류가 당권을 차지하고 공천권을 잡기 위한 것인가?
1962년생인 당신이 1987년 6월항쟁 때 넥타이를 매고 거리의 시위대에 합류했는지 그러지 않았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사독재 시기에 당신이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음은 잘 알고 있다. 벤처기업을 키우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것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당신은 새정연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 수십년 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운 인사들의 의견을 경청하려 한 적도 없다. 최소한의 경의라도 표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 그런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혁신’을 외치니 누가 동의하겠는가?
안철수 당신은 누구 편인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 삶의 터전을 유린당하고 있는 빈민, 비정규직으로 고달프게 살고 있는 다수 청년들의 편인가? 아니면 부정과 불법행위를 일삼는 수구보수세력 지도층의 편인가? 당신이 지금 같은 ‘정치’를 계속한다면 옛날에 누리던 ‘명성’은 무참하게도 ‘오욕’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차라리 조용히 국회의원 임기나 채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