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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HUFFINGTON POST
얼마 전 치뤄진 캐나다 총선에서 저스틴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이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했다. 전체 338석의 의석 중 과반을 훨씬 상회하는 184석을 확보하는 압승이었다. 이에 반해 스티븐 하퍼가 이끄는 보수당은 99석을 얻는데 그쳐 제1 야당으로 내려 앉고 말았다. 총선이 끝나자 세간의 관심은 온통 트뤼도에게로 집중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케나다 총리에 오른 트뤼도의 나이가 43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훤칠한 키와 연예인 뺨치는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가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트뤼도는 총선 다음날 지하철 역에 모습을 나타냈다. 수행원과 경호원 없이 그는 지하철 역에서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며 사진 촬영을 했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는 격의없이 사진을 찍었고, 때로 시민들의 핸드폰으로 직접 셀카를 찍어주기도 했다. 유투브에 공개된 영상을 두세 번 되풀이 해서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연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민과 하나되어 서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대단히 신선해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트뤼도는 새 내각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남녀 비율을 50대 50으로 동등하게 구성한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2015년이니까요"라고 말하며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이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정치인의 위트있는 답변에 열광어린 환호를 보냈다. 저 'Cool'한 답변은 그가 왜 4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의 총수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잘생긴 43살의 캐나다 총리 트뤼도의 인기가 식을줄 모르고 있다. 비단 캐나다 자국 내에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누리꾼들이 이 젊은 총리의 등장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우리나라의 누리꾼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도 트뤼도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트뤼도의 젊음과 패기, 열정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이 트뤼도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일보
혁신과 개혁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정서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사실 정치 혁신과 정치 개혁은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 정치를 관통하는 시대적 요구였고, 변치않는 화두였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당마다 정치 개혁과 혁신을 늘 강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따로 놀았고,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그 중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다. 새누리당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한 정치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더 치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절박해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사안마다 기가 막히게 헛물을 켜고 있는 이 정당의 모습은, 과연 이들에게 수권 정당으로서의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수년 째 혁신과 개혁을 외쳐대고 있는 이 정당이 좀처럼 지지율을 끌어 올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 다시 한번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지도체제 변경 문제를 놓고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비주류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출되고 있고, 탈당을 시사하는 발언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여당이 국정교과서를 강행시킨 엄중한 시국임에도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친박과 비박간의 박 터지는 싸움을 뒤로 한 채 국정화 정국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새누리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어제 '5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 50대 인사들을 당의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치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국민일보
'50대 기수론'은 중도성향의 중진 모임인 '통합행동'이 이끌고 있다. 그들은 박영선•조정식•민병두•정성호 의원과 김부겸•송영길•정장선•김영춘 전 의원 등의 50대 인사들로 당의 얼굴을 교체해 총선에서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통합행동'의 한 인사는 "당의 얼굴을 50대로 바꿔야 한다. 캐머론 총리,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 우리는 이미 늦었다. 당이 변화했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어렵다"며 '50대 기수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통합행동'이 들고 나온 '50개 기수론'은 문재인 대표 퇴진론의 연장선 상에 있다. 내년 총선에 대한 불안감이 '문재인 흔들기'로 나타나고 있고, 이를 주도하고 있는 안철수•김한길•박지원 의원에 이어 당내 중도성향의 중진 의원들마저 이 대열에 가세한 것이다. '50대 기수론'은 누군가처럼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문재인 퇴진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부를만 하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대표 체제를 견제할 수 있고, 또 50대라는 젊은 이미지를 앞세워 새 정치를 부각시킬 수도 있으니 나름 명분도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50대 기수론'에는 그들이 간과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50대를 전면에 내세워 당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그들의 비책은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 볼품없이 쪼그라들고 만다. '50대 기수론'의 취약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50대 인물들은 그다지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참신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미 정치판에서 산전 수전 다 겪은 기성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새롭지도 않을 뿐더러, 더 결정적으로 그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조차 없다. 그저 50대로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 새바람이 일어나고 땅에 떨어진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 믿는다면 순진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정략적이거나 둘 중 하나다.
ⓒ 연합뉴스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이 캐나다 총선에사 압승을 거둔 것은 그들이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하퍼가 이끄는 보수당과의 정책 경쟁과 선거 전략에서 승리한 탓이지 젊고 참신한 총리의 후광 때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자유당은 트뤼도 총리와 함께 집권을 위해 치밀한 선거 전략을 세웠고, 보수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경제 공약을 내세웠다. 여기에 트뤼도 총리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시너지 효과를 거두며 마침내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큰 위기에 빠져 있다.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당권과 공천권을 향한 지독한 계파갈등과 권력투쟁만이 난무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중도성향의 중진의원들이 들고 나온 '50대 기수론' 역시 이같은 흐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50대 기수론'에 빠져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용'이다. 젊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속을 채워 넣을 내용이 없다. 신상품의 경쟁력이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있듯이, '50대 기수론'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기성 정치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50대 기수론'에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의 외침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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