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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2555
    작성자 : 글곰
    추천 : 17
    조회수 : 1286
    IP : 203.142.***.241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4/01/07 09:21:33
    http://todayhumor.com/?panic_62555 모바일
    [연재] 奇談 - 다섯번째 기이한 이야기 (4)
      해원은 쓰러진 그녀의 목을 받치고 힘을 주어 똑바로 눕혔다. 그녀는 몸 여기저기가 긁힌 데다 옷은 흙투성이였고 양팔의 팔꿈치는 다 까져버려서 엉망이었다. 해원은 혀를 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행히도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해원의 얼굴을 본 그녀는 울먹이더니 급기야 해원에게 덥석 안겨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해원은 매우 어색하게 굳어 있다 간신히 손을 움직여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희정의 등 뒤쪽에서 나타난 바리가 해원을 노려보더니 비아냥거리며 혀를 힘껏 내밀었다.

      “어이구, 참 좋겠네요?”

      다행히도 희정은 목 놓아 우느라 바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한참 후, 가까스로 진정한 그녀는 해원에게서 떨어져 민망한 듯 몸을 옹송그렸다. 해원이 차분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꺼낸 희정은 그날 저녁에 해원과 해어진 후 있었던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자신이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던 해원의 얼굴이 점차 심각해졌다.

      “아까 희정 씨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 정말 큰 일 날 뻔했네요. 도망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입니다.”

      “......무서웠어요.”

      희정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해원은 그녀를 격려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나도록 하지요.”

      어떻게요? 라고 그녀는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희정의 등 너머를 쳐다보았다.

      “벌써 여기까지 쫓아오신 모양입니다?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다치면 어쩌시려고요.”

      빈정거림이 섞인 그의 말에 희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일단의 남자들이 아래쪽에서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몇몇의 손에는 손전등이 쥐여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희정을 비추자 눈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장이었다.

      “이해원 선생인가. 벌써 그 아가씨한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해원은 대답하더니 두 걸음 움직여 희정을 자신의 몸으로 가렸다. 희정은 해원의 어깨 너머로 자신을 쫓아온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남자들이 적어도 열 명 이상이었는데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여럿이었다. 이장이 있었고 여전히 정복 차림인 경찰관도 보였으며, 여자를 폭행하던 성한이라는 남자도 있었다. 손전등 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낮보다 훨씬 더 흉악해 보였고 덩치는 마치 거인 같았다. 설령 저 사람들이 전부 덤벼들지 않더라도, 성한이라는 남자 혼자만으로도 평범한 체구인 해원쯤은 한손으로 가볍게 들어 집어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아 희정은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나 해원은 태연했다.

      “이거야 원. 이장님께 착수금은 선불로 받았습니다만,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남은 비용은 받기 어려워 보이는군요. 맞습니까?”

      “일을 끝내야 보수를 주는 거 아니겠소? 그게 아니면 돈을 못 주지.”

      이장이 킬킬댔지만 해원은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의뢰는 완수했습니다.”

      “완수했다고?”

      “예.”

      “흐응. 그럼 어디 들어나 봅시다.”

      이장이 고개를 외로 꼬며 말했다. 해원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 귀신의 정체입니다. 이름은 류신혜. 나이는 스물여덟. 사망일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1개월 전. 사망 원인은 자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섬에서 도망치려다 실패하고 결국 삶을 비관하여 자살. 그러니 그 책임은 이 섬의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난처하다는 듯, 이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요? 본인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해원의 목소리가 어느 새 날카로워져 있었다.

      “어제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귀신이 나타난다면 응당 죽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귀신이 나타났다고 하면서도 막상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하셨지요. 혹시나 해서 따로 알아봤지만 사망신고 내역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다들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영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어디 있는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언덕 위의 나무, 류신혜 씨가 자살한 곳이었지요?”  

      해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희정은 방금 전에 본 귀신이 생각났다. 그녀가 귀신을 본 곳이 바로 언덕 위의 나무 아래서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해원은 말을 계속했다.

      “이장님은 제가 단순히 귀신을 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만화에 나오는 퇴마사 따위가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은 영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어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지요. 원인이 당신들이라는 걸 말입니다.”

      “허허, 이런. 사람을 잘못 불렀구먼.”

      이장이 탄식 비슷한 것이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해원이 추궁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겁니까? 사람을 납치하고, 강제로 몸을 팔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끔 몰아붙이다니, 인간의 탈을 쓰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성한이라는 남자가 인상을 쓰며 해원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러나 이장이 손을 내저어 그를 막았다. 그의 얼굴에 웃는 듯 화내는 듯 미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원 참. 외부인 주제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구먼. 육지 사람이 이곳의 사정도 모르고 멋대로 지껄이지 마시게. 바다일은 목숨을 걸고 하는 거친 일이라네. 위안거리가 필요하지. 하지만 여기엔 젊은 여자들이 없어. 다들 육지로 떠났지. 그래서 외부에서 데려온 거라네. 나름대로 돈도 많이 들었지만 마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지.”

      “이장님이 하신 일이란 말씀입니까?”

      이장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장으로써 마을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한 것뿐이네.

      “필요한 일이 이 따위 일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팔고 사다니요! 게다가 사람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일을 또 반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희정 씨까지 납치하려 하셨더군요. 그러다 또 도망치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습니까. 또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나요? 하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해원의 어투는 격정적이었지만, 대조적으로 이장의 목소리는 평상시처럼 태연했다.

      “넘겨짚지 마시게. 전에 있던 여자도 우리가 죽인 건 아니네. 이해원 선생도 그렇게 말하셨잖은가? 자기가 혼자 목을 매단 거라고. 그런데 누가 살인자라는 건가?”

      해원은 기가 막혔는지 입만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자네들 때문에 정말 곤란하게 되었어. 어쨌거나 이대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말이지......”  

      이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게 신호인 듯, 그때껏 움직이지 않고 있던 마을 남자들이 동시에 해원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희정은 겁에 질려 해원의 바짓단을 움켜쥔 채 그의 뒤통수만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해원은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말씀드릴 게 하나 더 남았습니다.”

      “뭐요? 유언이라도 남기시려나?”

      이장이 비웃듯 물었다. 그러나 해원은 침착했다.

      “아까 의뢰를 완수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 이야기입니다.”

      “호오.”

      이장은 흥미롭다는 듯 입을 오므리더니 남자들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계속하라는 듯 손을 까딱해 보였다. 하지만 해원은 말을 계속하는 대신 양복 안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길이가 두 뼘쯤 되는 누런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중 한 장을 조심스레 집어든 그는 다른 종이들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누런 종이를 사이에 두고 양손을 겹쳤다. 일순간 화악 불길이 일어나더니 종이가 순식간에 타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마술 같은 모습에 마을 남자들이 웅성댔다. 이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응? 그건 또 뭔가?

      하지만 해원은 대답 대신 천연덕스럽게 다른 말을 꺼냈다.

      “이장님의 의뢰는 귀신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 일은 영의 한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한이라. 좋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풀어주려 하시나? 대신 앙갚음이라도 하시려고?”

      “아니요. 그저 잠시 만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만난다? 누굴?”

      이장이 갸웃거리자 해원이 웃었다.

      “누구겠습니까?”

      기척도 없이 누군가가 이장의 옆에 서 있었다. 이장은 무심코 옆을 돌아보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 히엑!”

      놀란 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거나, 마구잡이로 도망가거나, 심지어는 납작 엎드려 벌벌 떠는 자들도 있었다. 성한이라는 남자는 꽥꽥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치다 어딘가 걸렸는지 된통 넘어져서 끙끙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희정마저도 깜짝 놀란 나머지 해원의 다리를 잡히는 데로 붙들고 죽어라 꼭 끌어안았다.

      귀신이 남자들을 휘 둘러보며 하나하나 얼굴을 확인하듯 눈을 맞추었다. 푸른 입술이 벌어지더니 스산한 말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야

      “저, 저리 가!”

      이장은 다시 비명을 지르더니 일어서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갑자기 해원을 쳐다보며 외쳤다.

      “이, 이해원 선생! 도와주시오! 살려주시오!”

      “의뢰는 완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원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귀신이 자꾸만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기에, 처음에는 원한을 갚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으니 저를 부르셨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잖습니까? 류신혜 씨가 하고 싶은 일은 복수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겁니다. 자기 자신처럼 타의에 의해 희생양이 된 사람을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약속했습니다. 반드시 그 분을 무사히 섬 밖으로 데려가겠다고,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는 혀를 찼다.

      “어쩌다 보니 제가 구해야 할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장님께서 순순히 이분들을 내보내 주실 것 같지는 않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웬걸, 이장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친히 여기까지 올라와 주셨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떠날 때까지 여기서 류신혜 씨와 잠시 담소라도 나눠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왜 그랬어

      영이 울부짖었다. 마치 귀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였다. 이장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급기야 엉금엉금 양팔로 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마을 남자들도 비명을 꽥꽥 질러대며 저마다 살길을 찾아 도망치고 있었다. 추한 모습이었다.

      희정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귀신인지 뭔지가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까지 난리를 피우다니, 명색이 남자들이면서도 희정 자신보다 더 겁을 집어먹은 게 아닌가? 그들 중 제복을 입은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누운 채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 대고 있었다.

      해원이 희정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저어, 일단 제 바지를 좀 놓아 주시면 좋겠는데요.”

      희정은 황급히 부둥켜안고 있던 해원의 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날이 어두운 탓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해원이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녀는 엉겁결에 해원의 손을 잡았다. 해원은 그녀를 부축해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그는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성한의 주머니를 뒤져 열쇠다발을 꺼냈다. 성한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저항하려 했지만, 갑자기 옆에 정체 모를 희뿌연 그림자가 나타나자 기겁을 하더니 머리를 바닥에 파묻었다. 그림자는 나타났을 때처럼 순식간에 기척도 없이 다시 사라졌다. 해원이 감탄하듯 말했다.

      “옳지, 잘 했어!”

      해원은 다시 옆에 굴러다니던 손전등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비명 소리를 뒤로 한 채 천천히 언덕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글곰의 꼬릿말입니다
    不榮通不醜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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