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도록 고요한 기분입니다. 분노가 없는 건 아닙니다.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저 고요합니다.
어제 1시 30분 경부터 대학로 방통대 앞의 시민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근처에는 성균관대가 있었고, 그날 논술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논술시험에 지각하는 학생이 없도록 4시 정각에 출발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더군요.
거기서 나눠주던 종이는 총 네 가지였습니다.
'역사쿠데타 중단하라.'
'박근혜 OUT'
'세월호 인양하라'
'민주주의 수호하자'
구호도 대충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나왔구요.
이석기 석방하라는 소리는 다른 곳에서 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4시부터 출발해서 멈췄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인도를 걷는 행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7년 전 광우병 촛불집회 때에도 참가했습니다만 그때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좀 더 우호적인 느낌이더군요.
제 착각일지도 모릅니다만.
대열에는 종교인도 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걷다 보니 유모차를 끌고 오신 분들도 만났습니다.
피켓을 흔들다가 팔목를 어떤 아이의 머리에 부딪해서 사과한 기억이 납니다.
행렬 중간에 결혼식장을 지났습니다.
마침 식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어떤 분이 '결혼축하해요!'라고 소리치시더군요.
구호에 맞춰 10살 정도 되는 소녀가 플라스틱 나팔을 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걷는 도중 건물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나와서 길을 비켜줬던 기억도 납니다.
구호를 외치는 건 듬성듬성이라 앞에서는 '역사쿠데타 중단하라'를 외치고 뒤에서는 '박근혜 물러나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잘못 외치면 '박근혜 중단하라'라고 외치게 되기도 해서 자기 혼자 실없이 웃기도 했습니다.
뒤에서 앞에서 전혀 통솔이 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모여서 즐겁게 떠들고 구호를 외치고 차도를 걷는 것.
시위행렬이 아니라 일종의 축제행렬 같다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중간에 행렬이 잠시 오랫동안 멈추고(교통정리 때문에 그 전부터 듬성듬성 멈추긴 했습니다만)
청년집회 분들이 우리 행렬을 앞질러 갔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깃발을 보며 기억해 두려고 해도 무리일 정도로요.
5시 20분 경에 광화문 광장을 약 500미터 남겨두고 저희 행렬은 정지했습니다.
행진 본부는 무리하게 행진을 강행하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말을 듣고 있을 시민들이 아니죠.
하나 둘씩 자리를 빠져나가더니 어느새 행진 대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게 됐습니다.
저도 30분 쯤부터 광화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고, 갈수록 인구비율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차벽이 보이고 그 뒤로 물대포가 보이더군요.
처음엔 이젠 얘들이 방패나 버스가 아니라 아예 벽을 세워버리는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은 곧 바꿔야 했습니다.
차벽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운동본부 사람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차벽을 부수고 나아가자, 뭐 이런 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구요.
일종의 실황중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의 합법적인 집회를 경찰이 방해하고 있다.
물대포를 쏘지 말라. 차벽 너머의 사람들에게 닿을지 모르겠지만 함성을 질러주자.
그리고 연속되는 구호들.
사람들은 거의 차벽에서 50~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벽에 가려져서 잘 모르겠지만, 그 앞에서 차벽을 넘기 위해 고생하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리가 들렸고,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구급차가 도착하고 떠날 때까지 살수차는 물대포를 멈추지 않더군요.
그 구급차에 물대포가 맞았는지 아닌지는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뒤에서 꽹과리 소리와 북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민 분들의 꽃가마와 풍물단이었습니다.
박수 치면서 보는 와중에 꽃가마와 풍물단은 차벽쪽으로 접근했고, 물대포는 꽃가마 바로 위를 쏴버리더군요.
제가 바로 근처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색물과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 시민들의 저항, 구출, 피와 바닥에 흥건한 거품.
하아...
오늘 다시 광화문을 다녀왔습니다.
종각역에서 내려서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왔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하더군요.
광화문 광장 근처에는 경찰들이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었고, 그 좌우편에 경찰버스가 몇 대 늘어서 있던 걸 본 게 전부입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도와 횡단보도를 걸었습니다.
JR동일본 노조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걸 봤습니다.
그냥 현수막만 든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니, 그건 아니겠지.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좌절감, 패배감, 무력감, 결국 7년보다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아니 오히려 악화 됐다는 절망감...
촛불집회 때 친구가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걸 봤다."
그렇습니다. 시민은 바뀌었습니다. 더이상 침묵하지 않습니다. 속고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했습니다. 더이상 이 모든 슬픔은 일부 불행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차벽 너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더군요.
텔레비전 화면 너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그 행진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요.
나이에도 걸맞지 않게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오유에서, 이 사이트에서 많은 주장이 오가고 있다는 걸 압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격, 나이, 성별, 생각, 지식,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만큼 다양한 주장이 오가는 건 당연하죠.
괜찮습니다. 7년 전 촛불집회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어떨 땐 사랑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은, 일제시대의 잔재는 모든 것을 획일화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분열하는 '울타리 밖의 것들'을 조롱합니다.
서로 분열하느라 뭉치지도 못하는 것들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분열과 충돌과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올바른 토론이 가능한 새로운 세대를 만들 교육방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육이 부족했기에 현재의 난장판이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많은 주장을 듣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져도,
장신의 올바른 주장이 통하지 않아 상처를 받아도,
최후에 '우리'가 결정한 길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마세요.
절망의 세계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것이 바로 저들이 바라는 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세상을 되찾기 위해선,
세상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선,
각각 한 사람 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바로 그 날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전 그러기로 결심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마음이 고요한 것 같습니다.
보면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접어 놓은 태극기입니다.
7년 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산 태극기입니다.
아마 제가 제 돈 주고 산 최초의 태극기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 가져갈까 생각했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이것까지 들어야 할 상황이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고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만.
12월 5일이 그 날이 된다면, 저는 이 태극기를 들고 갈 생각입니다.
전 딱히 애국자도 아니고 민족주의자도 아닙니다.
개인을 국가와 민족의 틀에 맞춰 자르고 붙여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입니다.' 이딴 소리 들으면 이유도 없이 꼭지가 도는 사람입니다.
네. 저는 애국심이 쥐뿔도 없는 평범한 헬조선의 한 시민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소시민입니다.
들고 갈 쇠파이프도 화염병도 돌조차 없는 시민입니다.
그러니 이 태극기 한 장과 쥐뿔도 없는 애국심 하나만 들고 가겠습니다.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믿지 않습니다.
믿기에는 워낙 많은 배신을 당해서요.
그러니 꼭 나오시라는 말도 하지 않겠고, 나오겠다는 말도 믿지 않겠습니다.
이 말만 하겠습니다.
12월 5일 그 날이 오면,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