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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2526
    작성자 : 글곰
    추천 : 16
    조회수 : 1186
    IP : 203.142.***.241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4/01/06 09:09:40
    http://todayhumor.com/?panic_62526 모바일
    [연재] 奇談 - 다섯번째 기이한 이야기 (3)
      언덕을 한참 오르자 마침내 이장의 집이 나타났다. 그 여자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차에, 집 옆의 골목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잘 보니 다름 아닌 해원이었다. 그가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저도 계속 나가 있다가 지금 돌아오는 참입니다.”

      하지만 깜짝 놀란 탓에 짜증이 난 그녀는 해원의 인사를 받을 생각도 않은 채 그를 쏘아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해원은 들고 있던 손을 멋쩍게 내렸다. 그녀는 집으로 휙 들어가려다 다시 마음을 바꿨다. 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해원을 쳐다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주변 상황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여자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그녀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정한 후 해원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저어,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이야기예요.”

      해원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럼 어디 조용한 곳을 좀 찾아볼까요?”

      그녀는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가, 그 와중에도 방의 이불조차 개어 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해원의 방을 가리켰다.

      “안에 아무도 없지요?”

      그녀는 해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앞장서서 해원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원이 의아해하면서도 그녀를 따라 들어오며 불을 켰다.

      해원의 방은 그녀의 방과 다를 바 없이 황량했지만, 적어도 이불은 제대로 개어져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해원이 그녀에게 앉기를 권한 후 자신도 앉았다. 그녀는 해원이 앉자마자 해원에게 바짝 다가갔다. 해원이 당황해하는 듯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단숨에 늘어놓았다. 해원은 그녀가 말을 끝낼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마침내 말을 끝내자 그녀는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해원이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물병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감사한 마음으로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잡혀왔다고 했단 말씀이지요.”

      해원이 뭔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와달라고 했어요. 어떡하면 좋죠?”

      해원은 대답 없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희정이 초조함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간신히 머리를 들었다.

      “어쩌면 이 일이 제 일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쪽의 일이요?”

      무슨 난데없는 이야기인가 싶어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해원은 진지해 보였다.

      “아직 자세한 걸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그런 것 같습니다.”

      신중하게 말하던 해원이 갑자기 희정을 쳐다보았다.  

      “일단 희정씨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가장 먼저일 것 같네요.”

      희정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해원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전화로 신고하거나 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별 일이 없으면 내일 육지로 나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내일 육지에 닿는 대로 신고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그녀는 마뜩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심하게 폭행당했는걸요. 그런데 그렇게 늦게 신고한단 말이에요? 그 사이에 또 저렇게 맞다가 혹시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어차피 이곳은 신고하더라도 경찰이 바로 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경찰 쪽에 아는 친구도 하나 있어요. 희정 씨의 신고가 묻혀버리지 않도록 제가 신경을 쓰겠습니다.”

      하지만 희정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그렇게 기다리면 안 돼요.”

      그녀의 뇌리 속에는 그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갑작스레 좋은 생각이 나서 그녀는 튕기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맞아. 이 섬에 치안센터가 있었어요. 올라오면서 봤거든요. 거기 가서 신고해야겠어요!”

      해원이 말릴 틈도 없이, 그녀는 재빨리 밖으로 나오더니 신발을 발에 꿰고 급히 아래로 달음박질쳤다. 뒤늦게 그녀를 따라 나온 해원이 희정을 쫓아가려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아무래도 걱정되는데......”

      “어떡할 거예요?”

      해원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당장 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일단은 우리 일을 먼저 해결하자. 조금 전에 희정 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나는 게 있어. 어쩌면 말이야......”



      희정은 한달음에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 무월도 치안센터에 도착했다. 대체 이 길을 몇 번째 왕복하는 것인지 셀 수도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뭔가를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져 왔다. 치안센터 안에는 정복을 입은 경찰이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아하. 어제 밖에서 오셨다는 분이군요”

      젊은 경찰관이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접수대에 양 손을 짚고 서서 경찰관에게 말했다.

      “신고할 게 있어서 왔어요.”

      “신고......라고요?”

      경찰관은 마치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예. 신고요. 여기 폭행을 당하는 아가씨가 있어요. 제가 봤어요.”

      “폭행이요?”

      경찰관은 다시금 그녀의 말을 되풀이하더니, 곧 알았다는 듯 가볍게 소리를 냈다.

      “아하. 오늘 점심때인가 말씀이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왜라뇨?”

      이번에는 희정이 반문할 차례였다. 경찰관은 별 거 아니란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신고라든가 그럴 정도로 큰일은 아니에요. 그냥 사소한 문제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사소한 문제라고요?”

      일방적으로 폭행당하던 그 여자의 모습과,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서서 그 장면을 멍하니 보고만 있던 자신의 모습이 희정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시 사라졌다. 그러자 경찰관의 시큰둥한 태도에 화가 났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에요. 정말 심하게 때려서 저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러나 경찰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그랬던 겁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러더니 경찰관은 TV쪽을 흘긋 보았다.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화가 희정의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허리에 양 손을 얹고 도전하듯 턱을 내밀었다.

      “사람이 그렇게 맞았는데 그럴 만한 일이 뭐가 있겠어요? 게다가 그 아가씨는 저한테 여기 잡혀왔다고 했단 말이에요! 잡혀왔다면 인신매매 아니에요?”

      경찰관이 찌푸린 얼굴로 다시 희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잡혀왔다고 했다고요? 원 참.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나.”

      희정은 경찰관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의의 사도처럼 당장 그 여자를 구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찰이라면 희정의 신고를 듣고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경찰관은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그 일을 넘겨버리려는 태도였다. 단지 귀찮아서 그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경찰관은 정말로 ‘그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왠지 희정은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며 위로 솟는 것 같았다.

      경찰관은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으로 희정에게 말했다. 어느새 말투도 위협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봐요 아가씨. 외지에서 와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에는 여기의 규칙이 있어요. 외지인이 함부로 끼어들 일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요. 예?”

      희정은 주춤거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다 휙 돌아 치안센터의 유리문을 열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바깥공기를 쐬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뒤를 슬쩍 돌아보자 경찰관이 여전히 짜증 어린 표정으로 희정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희정은 급히 그곳을 떠났다.

      ‘뭐, 뭐야. 왜 저러는 거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급히 민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원을 찾았지만 그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희정은 발을 굴렀다.  

      ‘뭐가 이래! 완전 엉망이잖아!’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홧김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읽을 기분도 아니었다. 억지로 눈을 감으며 그녀는 내일 육지에 도착하면 당장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할 것이라고, 그리고 다시는 이 섬 쪽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희정의 눈이 문득 떠졌다. 무언가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느낌에 얼굴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다지 오래 잔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달아난 잠은 어디로 간 건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누워 있다 곧 포기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더워서 그런지 바깥바람을 좀 쐬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하늘은 더없이 맑아 별들이 밤하늘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희정은 넋을 놓고 목이 아플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녀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반달이 하늘 한쪽에 떠 있는 가운데 수백 수천 개의 별빛이 은은하게 쏟아지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언덕에서 바람이 불어 내려와 그녀의 머리를 흩날렸다.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그 바람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소리는 이장의 집 본채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혹시 해원이 돌아왔나 싶어서 그녀는 뒤쪽으로 돌아가 건물 모서리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부지불식간에 입을 막았다. 본채 대청마루의 백열등이 켜져 있어 대화중인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장이었고 상대방은 다름 아닌 아까의 경찰관이었다.

      경찰관이 말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인신매매니 뭐니 하는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는 것이, 그냥 놔뒀다가는 큰일을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찾아뵌 겁니다.”

      이장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튼 성한이 그 사람은 왜 백주대낮에 길 한가운데서 그 난리를 친 거야? 한 마디 따끔해야 해야겠어.”

      “성한이 아저씨도 아저씨지만, 지금 문제는 외지에서 온 그 아가씹니다. 어떻게 하죠?”

      경찰관은 심각한 목소리였다. 희정은 지금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건물 모서리에 바짝 붙어 귀만 기울였다.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다 멋대로 떠들게 놓아둘 수는 없지.”

      “혹시 벌써 신고하거나 한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야.”

      이장은 단언했다.

      “집사람에게 들으니 휴대전화 충전기를 찾았는데 결국 충전을 못했다는구먼. 그럼 전화를 못 썼으니 신고도 못 했겠지.”

      “그럼......?”

      경찰이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끌자 이장이 말했다.

      “못 나가게 해야지.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성한이 그 사람에게 맡겨 버리세.”

      그 소리를 들은 희정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성한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그 여자를 폭행하던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틀림없었다. 경찰관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잘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짐은 제대로 받아야지. 대체 그게 뭔가? 이렇게 사고나 치고, 그보다 애당초 여자를 잘 관리했으면 지난번처럼 목을 매다는 일도 없었을 게 아닌가. 그것 때문에 외부에서 사람도 불러와야 했으니 에잉. 한 번만 더 사고를 치면 그 장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겠어.”

      “어쨌거나 성한이 아저씨 가게에 아가씨가 둘로 늘어나겠군요. 그 아가씨도 얼굴이 괜찮던데 장사 잘되겠습니다.”

      희정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바보는 아니었다. 어젯밤 그 건물에서 들려왔던 성관계 소리, 돈을 주고 여자를 사왔다는 성한이라는 남자의 말, 아랫도리만 멀쩡하면 장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 희정의 얼굴이 괜찮으니 장사가 잘되겠다는 경찰의 느물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희정이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성한이라는 남자에게 맡겨 버리겠다는 이장의 말.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강제로 이곳에 팔려와 창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희정은 금방이라도 나오려는 비명소리를 막기 위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뒷걸음쳤다. 그러다 곧 뒤로 돌아 소리 없이 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이장이나 경찰관이 쫓아올 것 같았다.  섬에서 몸을 팔며 늙어가는 자신의 미래가 무섭도록 섬뜩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녀는 쏜살같이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사람이 없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그녀는 무작정 언덕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풀들이 가슴까지 올라와 앞으로 나아가기조차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녀를 가려줄 것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곧 언덕 아래쪽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없는데요. 혹시 도망친 건 아니겠죠?”

      “뭐? 당장 찾아! 사람들을 모아!”

      “하지만 어차피 갈 곳도 없지 않습니까?”

      경찰관은 그다지 급할 것 없다는 투였지만, 이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외지 사람이 또 들어와 있지 않나! 일이 커지면 안 돼!”

      외지 사람이라고? 몸을 낮추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 해원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그녀는 그를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 이 작은 섬에서 그녀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만난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은 해원뿐이었다.

      언덕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다 길옆의 나무 뒤쪽에 몸을 숨긴 후 그녀는 마을을 살펴보았다. 높은 지대에 올라와 그런지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밝은 별빛 아래로 드문드문 가로등이 보였고, 사람들 몇몇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를 잡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녀를 찾지 못하면 언덕 위까지 살펴보러 올 것이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더욱 험하고 풀이 우거져서 앞으로 가기가 힘들었지만, 뒤에서 다가오는 공포감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슴까지 올라오던 풀들이 갑자기 드문드문해지더니 시야가 트였다. 어느새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저쪽에 높은 나무가 서 있었다. 희정은 숨을 헐떡이며 숨을 곳이 있나 찾아 나무쪽으로 다가갔다. 상당히 높은 나무였는데 옆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 아래 뭔가 희뿌연 것이 흐느적거리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뭔가 싶어 희정은 눈에 힘을 주며 천천히 그 물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희뿌연 물체는 나뭇가지에 목을 매단 여자의 모습이었다. 허연 얼굴에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고, 눈은 감겼지만 혀가 턱 아래까지 죽 늘어져 있었다. 하얀 셔츠에 치마를 입은 몸 너머로 무성한 나뭇가지가 비쳐 보였다. 희정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물체는 바람도 없는데 좌우로 움직이면서 천천히 희정을 향했다. 감겨 있던 두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귀신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희정은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느 쪽으로 뛰고 있는지도 몰랐다. 길도 없는 언덕을 뛰어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그대로 넘어져 서너 바퀴나 굴러 버렸다. 희정은 일어나 다시 뛰려고 했지만 접질린 발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바람에 다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쓰러진 채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어둠에 잠긴 언덕 위에서 뭔가 희뿌연 형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목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비명을 간신히 억눌렀다. 간신히 남아 있는 이성이 여기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발목의 고통과, 그걸 초월하는 강렬한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때 앞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메마른 흙길 위로 터벅터벅 내려앉는 차분한 발소리. 조용한 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어두운 언덕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희정은 실신할 것만 같았다. 어디론가 숨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모퉁이의 나무 뒤쪽으로 달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더니, 이윽고 눈물범벅으로 흐려진 시야 저편으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자는 희정을 보고 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희정 씨? 어떻게 된 거예요?”

      너무나도 반가운 목소리, 요 이틀 사이에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다행이다, 희정은 생각했다. 갑자기 긴장이 풀렸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계속)
    글곰의 꼬릿말입니다
    不榮通不醜窮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4/01/06 10:23:38  58.72.***.250  마녀벨리♡  203284
    [2] 2014/01/06 11:02:39  117.111.***.139  뚫꾸당뇨  19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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