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진 나중에 부모님이 죽고나서는 형제 뿐이라며 형제를 소중히하란 말을 들었을때 솔직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어요. 저랑 누나는 서로 위해주는 적도 있었지만 자주 다투고 시비에 휘말리고 그랬었었거든요. 근데 오늘에서야 그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네요..
저는 재수를 결정한 학생입니다. 이번 수능 때 목표치보다 워낙 낮은 등급을 받아 멘붕을 당했었지요. 한줄기 희망이었던 수시가 날아가고 정시도 아득한 예비번호를 받아 재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근데 재수를 하려면 웬만한 정신력이 아닌 이상 독학보다는 학원을 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 달 전 쯤에 무시험으로 가능한 집 근처의 학원과 시험을 봐야하는 대표적인 학원을 등록했어요. 등록한 이후 제일 부족한 수학을 공부하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왔는데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재수는 체력 싸움이니 집 근처의 학원으로 가는게 좋다고들 하더라구요. 시험을 봐야하는 학원은 하는 애들은 하고 안하는 애들은 놔버리는 등 관리를 안 한다고 하구요. 그래서인지 저도 집 근처의 학원으로 마음이 굳어졌어요.
어느새 내일이 시험 날이 되었어요. 전 어머니께 제 생각을 말씀드렸죠. 집 근처의 학원으로 가고 싶으니 내일 시험은 보지 않는게 좋겠다구요. 그런데 어머니는 무조건 시험을 보라시네요. 저는 무의미한 시험일 것 같아서 거부하려고 했으나 큰소리를 치시니 저도 모르게 오기가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버텼죠. 그러니 아버지가 저건 안될 놈이라며 저를 비난하시네요.
솔직히 저도 실력을 점검해본다는 의미에서는 시험을 보는게 맞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화가 나는 건 왜 부모님들은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려드시는 걸까요. 차분하게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해주셨으면 어땠을까요. 또 저를 안될 놈이라고 비난하시기 전에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말을 해주셨음 어땠을까요.
요즘들어 부모님 보시기엔 제가 놀기만하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제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시기가 시기인만큼 한창때보다 하지는 않았지는 말이에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말이 조금 엇나갔는데 여튼 저는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맘 속으로 결정한 곳도 다음가는 학원이거든요. 또 재수는 어차피 제가 마음먹기에 달린거구요.
그래서 전 부모님과 다툰 상태로 대화를 끝냈어요. 근데 몇분 뒤에 제 핸드폰이 울리더라구요. 보니까 웬걸? 누나였어요. 저하고는 필요할 때만 카톡하는 사이라 의아했지요. 그래서 의아한 감정을 가지고 확인해보니 제 마음이 풀리는 것이 느껴지네요.
내용은 대락 나도 어른들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시험을 보고나서 생각해보자.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네 결정이 어떻던 나는 네 의견을 지지해주겠다. 부모님에게는 자기가 잘 말해보겠으니 일단 주어진 기회는 잡자. 원래는 면대면으로 말하려 했으나 갑자기 그러는것이 부담스러울까봐 카톡으로 한다. 답장은 하지 말고 잘 생각해봐라..
장문의 카톡을 읽고 나니 마음이 약간 찡해지더군요. 제 의견을 지지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삼자의 생각을 말해주고 제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맘이 느껴졌어요. 또 주변 친구들에게 재수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나니 누나가 제 생각을 많이 해줬던 걸 알겠더라구요. 갑자기 누나가 커보였어요.
너무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 이만 줄일게요. 형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자기 생각을 많이 해준다는 것을 아셨으면 하네요. 새벽이라 읽으시는 분들은 별로 없으시겠지만 형제분들 소중히 여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