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친구들도 도망치지 못한 채 아저씨를 따라 신사의 뒤편건물로 들어깟다.
"어디...."
아저씨는 무릎 꿇고 앉아있는 내 앞에 슥 앉더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얼굴이 무서워서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아저씨를 똑바로 보았다.
"잘 생겼네."
"??? 네..?"
"애인 있어?"
"예....아....네...있어요...."
"사랑하냐?"
".....예..그거야..."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되물었다.
"저기...여자친구...뭐가 안좋거나 그런가요?"
"음...어쩌면 ..몸이 아파질 수도 있어."
"네?!...왜요??"
"너 상자를 뜯어서까지 볼 정도면 그 에마가 뭔지는 알고 있는 거겠네?"
"....예..소문 정도로...."
"그 에마가 그 자리에 걸려있는 동안은 별 문제가 없어. 그것도 안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런데 그걸 떼어내면 그 여자의 원혼이 붙는단 말이다.
자살한 놈도 있어..."
".........."
난 할말을 읽었다.
"저..저희도 위험한 건가요?"
뒤에 앉아있던 두 녀석이 묻자
"살짝 떨어진 정도라면 너희들은 괜찮아. 하지만 너는 좀 영향이 있을지도 몰라. 너 제법 생긴 편이니까 여자(친구)를 노릴 수도 있어."
"그..그럼 어떻해 해야 되나요?"
유령이나 오컬트는 믿지 않던 나였지만 완전히 혼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너한테는 지금 그림자가 안보여. 어쩌면 여자한테 갔는지도 모르지. 운이 좋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만약 애인이 몸이
아파지면 병원에 가기 전에 이리로 와."
아저씨는 선반에서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한번 더 장난질하다가 걸리면 경찰서에 처넣어버릴 거야 . 알았어?!"
"예!"
군기가 바짝 들은 대답을 하고서 뒤돌아 나오려는데 아저씨가 공구세트를 가져와 우리 앞에 두며
"고쳐놓고가"
우린 부서트린 게시판을 수리했다. 당연한 거지만.
떨어진 판자를 본드로 다시 붙이는데 눈앞에서 흔들리는 에마가 무서워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만 싶었다.
에마에 상자뚜껑을 조심스럽게 덮고 못을 박았다.
'무슨 수를 쓰던가 해야지...원"
아저씨가 뒤편에서 중얼 거렸다.
그날은 '뭔가 저지르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히야~,OO 장난 아니야 역시...겁이 없어."
"손끝으로 그냥 잡아채다니. 완전 남자야."
"아니 진짜 무서웠다니까...솔직히 그 아저씨가 더 무서웠지만."
"맞아 진짜!뭐냐 그 사람, 완전 야쿠자야."
긴장감이나 반성의 기미라곤 없이, 풀려났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들떠있었다.
"호시(내 여자친구)한테도 별 일 없을 거야. 겁 주려고 한 소리겠지."
나 또한'그렇겟지?'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도중에 편의점에 다시 들러서 점원에게 에마를 떠엇다고 이야기했다. 뭔가 일이 있엇냐는 물음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더니
"에~이"하는 느낌으로 웃었다.
다음날.
역시 살짝 걱정이 되었던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몸 상태를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이 이상했는지 여자친구는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딱히 별 이상은 없는 느낌이었기에 내일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여자친구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OO.미안 내일 못 나갈 것 같아."
"어? 왜 무슨 일 인데."
느낌이 안 좋았다.
"감기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 열도 나고 추워. 나으면 다행인데 아무래도 심해질 것 같아서 . 나가기 힘들 것 같아. 미안."
난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그래?...춥지 않게 이불 잘 덮고 푹 자 ."
전화를 끊고, 아저씨한테 받은 메모가 잘 있는지 바로 확인했다.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고 메모지도 지갑에 넣었다.
"만약 내일 호시의 상태가 악화되면 연락해야겠다." 하고
다음 날 , 점심 때쯤 일어나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걸고 또 더 기다렸다가 다시 걸었다.
전혀 연락이 되질 않자 불안해져서 오토바이로 여자친구의 집까지 갔다.
여자친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 전화번호는 알지 못했다.
여자친구의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려고 하는데 대문이 열리면서 여자친구의 아빠가 여자친구를 업고 나왔다.
"호시!!"
여자친구의 아빠는 나를 보고
"호시 친구니? 호시가 몸이 좀 안좋아서 , 다음에 올래?"
업혀있는 여자친구는 의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겨우 입을 움직이며 헉헉 거리고 있었다.
"안되겠다!"
핸드폰을 꺼내 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울상이 된 호시 어머니도 문 밖으로 나왔고
"여보 구급차 불러요."
"차로 가는게 빨라."
하는 말이 오고 갔다. 나는 다급해졌다.
"여보세요T신사입니다."
"네,여보세요OO라고 합니다. J상,J상 부탁드려요!!"
"아 네....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기음이 잠깐 울리고 바로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괜찮아?"
"여...여자친구가..호시가!...."
"진정해!지금 올 수 있어?"
"예! 갈게요!...바로 갈게요!! 도와주세요!"
"그래. 빨리 와 . 차로 오냐? 조심하고. 그리고 이거 핸드폰이야?"
"아 네.맞아요."
"그럼 전화 끊지마. 여자친구 귀에 대고 내 말이 들리게 해."
"아 알겠어요!"
핸드폰을 얼굴에서 떼자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바로 다가왔다.
"뭐야.무슨 전화야 지금"
"가면서 설명 할게요! 차 좀 빌려주세요! 지금 가야 돼요"
말을 하는 내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었고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야 될 거 아냐! 이유를 말해!"
"신사로 가야 돼요! 제가...원령을 건드렸어요..!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호시가 아파진 거에요...제령 해야 돼요! 빨리 가야 돼요!"
난 울부짖었다. 절실하게 울면서 울면서 소리치는 내 모습에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하기야 갑자기 나타나서 유령이 어쩌구 하는데 당황스럽겠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빨리 병원으로 가요. 여보!"
"........"
아빠는 말없이 서 있는데 등에 업혀있던 호시가 힘겹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Y상...."
에마에 적혀있던 이름....사랑하는Y상...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아빠를 밀치고 차를 빼앗아서라도 가고 싶었다.
".....출발해!"
아빠가 호시를 뒷자석에 태웠다.
"자네가 운전 해!"
난 바로 차에 탔다. 여자친구의 엄마는
"당신 미쳤어?! 어쩌려고 그래?!"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조수석으로 들어와서 내 멱살이며 어깨를 움켜쥐었지만 난 주저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차 안은 소란스러워졌고
난 소란스러움을 쓸어내듯 소리를 질렀다.
"이 전화를 호시의 귀에 대주세요!!"
여전히 흥분상태인 엄마를 제지하며 아빠가 전화를 호시의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호시는 괴로운듯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엄마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그만해!!그만해!!" 하며 소릴 질렀다.
"이거 왜 이렇게 하는 건데??"
"신사의 승려아저씨가 그렇게 하라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뒤로도 차 안에서 고성이 오고 갔지만 잠시 뒤 엄마도 진정되었고 아니. 지친 것이겠지...아빠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내게 경위를 물었다.
난 신사에 대해서, 여자와 에마에 대해서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부모님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겠지만 딱히 반론도 없었고 그 뒤로는 그저 딸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해주었다.
신사에 도착하고 난 여자친구에게서 전화를 가져와 귀에 댔다.
전화 속에서는 아저씨가 경 같은 무언가를 외우고 있었다.
"도착했어요!"
"~~~~...오,그래! 지난 번 그 방으로 데려와!"
아빠와 둘이서 호시를 산사 뒤편 건물로 옮겼다.
아저씨는 엄숙한 느낌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믿음직해 보였다.
"이리로 데려와."
아저씨의 말에 따라 호시를 아저씨 앞에 깔린 천 위에 눕혔다.
아저씨는 무슨 주문인지 경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여자친구의 몸에 손을 올려놓았다. 중간중간 평범한 일본어 같은 말도 들렸다.
그러자 여자친구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으으...크윽...으어어..."
신음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여자친구는 눈을 부릅뜨고
"또..또너냐!? ...또.,...이놈...이놈!!..."
하며 무서운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젖혀지듯 몸이 튀고 바닥에 퉁 하고 떨어지더니 격하게 뒤집히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읽고 쓰러졌다.
나 또한 몸이 힘들 정도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야!!아니라구!!이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Y!!...Y!!....."
아저씨는 졸도 직전의 나를 붙잡더니 여자친구의 앞에 들이밀었다.
"잘 봐!!니가 사랑했던 남자가 이 남자야?! 아니잖아!!"
여자친구의 무시무시한 표정...아니,이건 그 여자의 얼굴인가?"
"죄송해요!...죄송해요!....일부러 그런게 아니었어요..죄송해요!...."
난 에마를 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크으......으으으.....으어으으윽!...."
목소리 아닌 목소리로 신음하는 여자친구.
그것은 이윽고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어있었다.
아저씨는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친구의 옆에 쭈그려 앉아서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여자친구를 향해 무언가를 읆었다.
난 거의 탈진상태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옆에 있던 아빠도 나와 같은 상태였다.
잠시 뒤 여자친구는 점점 차분해지는 것 같았고 아저씨는 의식의 마무리 단계인 듯 일어서서 경을 외우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정좌를 하고 앉았다.
"이제 ....괞찬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눌물이 쏟아져 나왔다. 소리 높여 펑펑 울고 말았다.
아저씨와 여자친구의 아빠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기절한 채로 있었고, 의식이 돌아온 뒤에는 병원에 데려가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되돌아가려는 길에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사실..이 정도로 힘이 들 줄은 몰랐어..니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일단 쫒아냈으니까 걱정은 없는데 ...너 이제 저 애랑 만나지마라.
미련은 무서운 거거든, 너랑 같이 있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이런 일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헤어져, 서로를 위해서야.
힘든 건 아는데...그렇게 해."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이사해.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아...그게 제일 안전해. 따지고 보면...실수라고는 해도 니 그 생각 없는
장난이 원인이야...반성해."
이사는 너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인 거겠지.
학교도 ...그만두어야겠지....
돌아올 때는 여자친구의 아빠가 운전을 하여 날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자네 때문이지만 구해준 것도 자네니까 . 일단은 고맙다는 말을하겠어."
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난 부모님께 호시와 헤어질 것과 다른 지역으로 떠나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헤어지는 인사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그 후 난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와서 직장을 구했다.
신사에 같이 갔던 친구들이나 다른 친구들도 가끔씩 놀러 와 주었지만
호시에 대해서도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아무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