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7일 오후 3시30분 광장에서 열린 2차 추모집회 모습.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7신: 19일 오후 3시]
크레인 밑 빈소, 조문 행렬 줄이어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째인 19일, 휴일을 맞아 전국에서 노동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 발생 뒤 매일 낮 12시와 저녁 7시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열고 있는 추모집회에 매번 1000여명이 모여들고 있다.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이하 김주익열사대책위)는 18일 첫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와 한진자본을 강력히 규탄한 가운데, 여러 각도로 투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투쟁광장에 설치된 무대에는 고 김주익 지회장의 대형 영정이 내걸렸으며, 85호 크레인 바로 밑에 빈소를 마련해 놓고 있다. 시신을 18일 오후 관에 넣을 예정이었으나 마련한 관의 크기가 작아 하루를 미루어 19일 오전 입관을 마쳤다.
한진중 공장이 위치한 부산 영도 일대에는 여러 사회단체에서 내건 추모 펼침막(현수막)이 내걸려 추모 물결을 이루고 있다. 공무원노조 영도지부 등이 참여한 영도구민주시민단체협의회(준)는 영도다리 등에 10여개의 펼침막을 내걸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중앙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파견, 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1월 두산중 고 배달호씨 분신사망 때도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덕우·김정진 변호사를 비롯해 당 인권위원회 소속 공지윤, 강한규씨와 노창규 부산시지부 부지부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은 유족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회사, 고인의 친구를 면담하고, 고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황조사, 관련자료를 수집한 뒤 보고서 작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한진중지회가 소속되어 있는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연맹은 20일 낮 12시 전국 160여개 사업에서 지회별로 중식시간을 이용해 추모집회를 갖기로 했다. 또 21일 오후 2시 금속노조 3차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향후 투쟁일정을 잡기로 했으며, 22일 김주익열사대책위 차원으로 대규모 집회를 부산역 광장에서 열기로 했다.
또 금속산업연맹은 22일과 23일 부산에서 단위노조 대표자와 금속노조 지회장이 참석하는 수련회를 부산에서 열기로 했으며, 23일 오후 2시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 | "유구무언...민주노총은 정치적 이용 말아야" | | | [인터뷰] 한진중 김동진 상무 | | | | 한진중 회사측은 홍순익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가동에 들어갔다. 다음은 한진중 김동진 상무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지회장 자살 사건에 대한 회사 입장은? "돌아가신 분 앞에서 무슨 변명을 하겠나. 유구무언이다. 명복을 빈다. 유가족과 노조와 협상을 통해서 모든 걸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지역 조선산업에서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 유족과 노조와 협상을 계획하고 있나? "그 쪽도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분향과 장례는 채널을 통해 전폭 지원을 하고 있다. 아직 대화 단계가 아니다. 회사는 공식 조직을 가동시켰다.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기다리고 있다. 대화의 창은 열려 있다."
- 2002년 임단협 등 한진중 노-사 갈등의 현안에 대한 회사측 입장은? "임금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태다. 손배가압류는 법적으로는 해지는 안했지만, 개인 급여나 상여금은 공제를 하지 않고 있고, 법적으로도 협의가 되면 즉시 처리하려고 한다. 조합비 문제는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두산중공업이 50%를 공제하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40%를 공제하려고 하고, 이같은 입장을 이미 밝혀놓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 해고자 1명이 복직이 되지 않았다고 하던데? "복직은 명료하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판결이 났고, 중앙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중노위에서 판결이 나면 따르겠다. 그 해고자는 상관한테 시너를 뿌리고 라이트를 댄 사람으로 이미 사법부로부터 처벌을 받아 복역까지 했다. 그렇지만 행정처분이 있으면 따르겠다. 회사도 명분이 있어야 하기에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 민주노총 등에서는 김 지회장의 자살 사건이 한진중 회사측 책임이라 비난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점은 또 다른 측면을 봐야 한다. 고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은 저희들도 안타깝다. 진정한 심정이다. 고인은 조합원을 위한 분이다.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을 위한 게 아니라 본다. 유서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고인은 조합원을 위해 일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현 집행부는 무엇을 했나. 그 사람을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
회사보고 교섭을 안했다고 하는데, 저희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밑 접촉을 셀 수 없을 정도 많이 했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이 사장과 면담도 했다. 사장도 추석 전에도 가서 전화도 하고 떡도 갖다 놓았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도 든다. 조합원들은 이용을 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손배가압류와 임금문제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을 돌아가신 분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회사는 협상창구를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진정으로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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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주익열사대책위는 18일 오전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투쟁방향을 밝혔다.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 | ▲ 분향하고 있는 노동자들.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6신-18일 오전 11시30분]
대책위 "노무현 정권 규탄"
노동계가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한진재벌과 노무현 정부 노동탄압이 부른 참극'이라고 규정하고 정부와 자본에 대한 투쟁을 천명하고 나섰다.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 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이하 김주익열사대책위)는 자살사건 이튿날인 18일 오전 10시 부산 영도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공동대표인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 홍근수 자통협 상임대표, 한상열 통일연대 상임의장, 서상권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과 유족인 고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 박성희씨와 형 김주현씨가 참석했다.
단병호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동탄압 정책 중단 △손배가압류 구속수배 해제 △부당노동행위 근절 등을 요구하면서 강력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또 김주익열사대책위는 "악랄한 노동탄압으로 김주익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한진재벌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단 위원장은 또 "노 대통령은 대기업노조의 집단이기주의와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문제라면서 노사관계를 개혁하겠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적인 이념공세를 계속 펴왔다"면서, "지난 6월 철도파업을 공권력으로 폭력 진압한 후 급속하게 반노동자적인 정책으로 돌아선 노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진재벌을 비롯한 사용주들이 노조에 대해 전면적이고 공세적인 탄압을 벌이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밝혔다.
김주익열사대책위는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정부와 한진재벌의 노동탄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85호기 크레인에 안치되어 있을 것"이라며, "유족도 이후 교섭·장례투쟁과 관련한 일체의 대책을 전국투쟁대책위원회에 위임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노 정부와 한진재벌이 김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노동탄압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손배가압류 금지법 제정, 노동자 구속·수배 등 노동탄압 중단,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특단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진중 회사측에 대해 "2002년과 2003년 임단협 체결, 손배가압류 해제, 징계 철회 등 고인이 크레인에 올라가면서 밝힌 현안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시신을 크레인에서 내릴 수 없다"면서, "회사측에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 말했다.
김주익열사대책위는 22일 부산역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고, 25일과 29일에는 부산시내에서 집회를 열어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8시30분과 저녁 7시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추모와 보고대회 집회를 열기로 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사건 발생 뒤 18일 오전까지 회사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협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책위 안에 별도로 교섭팀을 구성해 사측과 교섭을 벌여나갈 것"이라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노조가 시신을 담보로 한 투쟁을 벌인다'는 지적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는 "시신투쟁이 아니며, 고인의 뜻에 따른 규탄투쟁으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 말했다.
시신은 35미터 높이 85호 크레인에 그대로 있으며,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부패방지처리를 해놓았다.
한편 한진중 회사측도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일 오전 한진중 홍보팀 관계자는 "오늘도 회사 차원의 대책회의를 했는데, 그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면서, "노조나 유족측과 어떻게 협상을 벌일지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 | ▲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는 단병호 위원장.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 | "13년 전에도 노조 위원장이 사망했던 공장" | | | 박창수 열사 부친 황지익씨, 사건 나자마자 현장 도착 | | | |
| | ▲ 박창수 열사의 양부모인 황지익 심정자씨가 고 김주익 지회장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
고 김주익 지회장이 자살한 한진중공업은 13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박창수 열사가 사망한 것이다. 박창수 열사의 부친 황지익(67)씨와 모친 심정자(67)씨는 17일 오전 소식을 듣고 곧바로 부산 현장에 도착해 하루밤을 지새기도 했다. 이들은 박 열사의 양부모로 알려져 있다.
황지익씨는 올해 1월 두산중 배달호 분신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사건현장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경기도 성남에 살고 있다.
"어제 오전 10시경 소식을 들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내내 울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자식을 이 공장에서 죽었는데, 13년이 지나 같은 일이 또 터졌다. 노조 위원장이 노동탄압에 못 이겨 죽는 일이 13년만에 또 발생했다. 가슴이 정말 아프다."
황지익씨는 또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80년대 노동자 앞에 서서 투쟁하고, 지난 해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취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어처구니 없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심정자씨는 "창수에 대한 진상규명도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한나라당사 앞에서 천막농성도 해보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 같은 공장에서 같은 사건이 발생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창수 열사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있다가 1990년 노조 위원장에 당선되었으며, 부산노련 부의장 등을 지냈다. 이듬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긴 뒤 이틀만에 죽었다. 나이는 33살이었고, 현재 그의 무덤은 양산 솥발산에 있다. / 윤성효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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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일 낮 12시 1차 보고대회 때 유서를 낭독하자 조합원들이 고개를 숙여 흐느끼고 있는 모습.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5신 - 오후 8시] 전국 규모 대책위 구성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 투쟁 대책위원회'(이하 김주익열사 전국대책위)가 결성됐다.
김주익 열사 전국대책위는 17일 저녁 고 김주익씨 자살현장에서 회의를 갖고 공동 대표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부대표,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 부대표로 백순환 금속산업연맹 위원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정의헌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 집행위원장에 김창환 금속노조위원장으로 구성했다.
김주익열사 전국대책위는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매일 저녁 7시 한진중공업 투쟁광장에서 추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오늘 22일 오후 2시 부산역광장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그리고 김주익열사 전국대책위는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전 사업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고 추모 리본달기와 모금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4신- 오후 6시]금속노조,"사태 해결까지 시신 옮길 수 없다"
금속노조는 김주익 지회장의 시신을 한진중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크레인에서 옮길 수 없다고 밝혔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고인은 손배가압류와 해고자 복직, 2002년과 2003년 임단협 타결 등 현안이 해결될 때까지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17일 저녁 대책위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겠지만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시신을 옮기지 않을 방침"이라 밝혔다.
김주익 지회장의 사체를 검식한 관계자들은 목에 끈 자국이 1cm 정도 나있는 것으로 볼 때, 16일 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장현 금속산업연맹 부산경남지부 사무국장은 "아침에 옷을 벗겨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했고, 평소 지병도 없었다"면서, "목에 난 자국으로 볼 때 어제 밤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유 사무국장은 "고인은 6월 11일 크레인에 올라간 뒤, 입구 문을 잠궈버려 누구와도 얼굴 대면을 한 적이 없고, 단지 전화통화만 이루어져 왔다"면서, "고인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한진중공업은 사과와 함께 임단협 타결, 가압류 해지, 복직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3시30분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열린 2차 추모집회에는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억장이 무너진다"면서, "자본의 비호 아래 노동탄압이 자행되었고, 그것이 김 지회장을 죽였다"고 말했다.
유덕상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울지 맙시다. 가슴 속에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나갑시다"면서, "동지를 죽이게 한 자본에 반드시 본때를 보입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인은 한진자본에 의해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용서할 수 없고,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면서, "노무현 정권은 입만 열만 악선전을 해왔는데, 민주노총 차원에서 투쟁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 금속노조 등 지역과 전국 단위의 노동단체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7시부터 대책위원회 회의를 할 예정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17일 저녁 대책회의를 하고 난 뒤 향후 투쟁 일정이 나올 것"이라 말했다.
| | 부인 박성희씨 "내려오면 아이들과 놀러가자고 했는데..." | | | |
| | ▲ 고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 박성희씨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울먹이고 있다. | |
고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 박성희(36)씨는 "남편의 죽음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아이들과 놀러가기로 했는데, 이제는 영원히 놀러 갈수 없게 되어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박씨는 17일 저녁, 지역 노동자 500여명이 참석해 저녁집회를 막 시작할 무렵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낮 동안 정신이 없다보니 일절 언론과 인터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씨는 하루 전날인 16일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
"제가 먼저 전화를 했지요. 평소와 같은 대화만 나누었고,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지요. 평소에도 혹시나 무슨 일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박씨는 남편이 129일 전 35미터 높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뒤 얼굴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단지 아래에 아이들과 함께 와서 먼 거리를 두고 얼굴을 보면서 큰 고함을 지르며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고 김주익 지회장은 크레인에 올라간 뒤 가족도 외면할 정도로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투쟁의지를 높였던 것이다.
고인의 부인은 남편의 뜻을 받들겠다는 입장이다.
"고인이 원했던 대로 돼야 한다. 어차피 자신의 몸을 던질 거라 각오를 했다. 유서대로 해야 한다. 85호기가 자기 무덤이라고 했으니까 시신을 옮길 수는 없다."
그녀는 시신 부검은 물론, 시신을 병원 영안실로 옮기는 것도 반대한다. 이날 저녁 검찰에서 시신 부검을 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유족들에게 전달한 상태다.
두 사람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고인은 유서에서 부인보고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 표현해 놓았다. 그녀는 이 말이 더 서운하다고 말할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 윤성효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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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일 오후 3시30분 경 1000여명이 모여 보고대회 겸 추모집회를 갖고 있다.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 | ▲ 집회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도 흐느끼고 있는 모습.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3신 - 오후 3시30분] 시신 검안 끝나... 부인 "어제 마지막 통화"
오후 2시30분 시신을 검안한 부산지방검찰청 담당 검사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이며 시신처리 여부에 대해 아직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검사가 유족들을 만나 사체를 병원으로 옮겼으면 한다고 말하자, 형 김주현씨는 "유서가 명확하고 자살로 보이기에 사체를 옮기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검사는 부인 박성희씨에게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한 게 언제냐"고 물었으며 박씨는 "어제"라고 말했다.
"고인의 죽음에 의문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형 김씨는 "크레인에 올라지 129일째였고 자살로 보이기에 의문이 없다"고 말했다.
검사는 17일 아침 현장을 처음 목격한 최홍규씨등을 만나 당시 정황을 들어본 뒤 사체처리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 | ▲ 부산지검 담당 검사가 시신을 검안한 뒤, 유족들을 만나 설명을 듣고 있다.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2신 - 오후 2시30분] 김 지회장 자살 오래전부터 예견됐었다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은 조합 및 조합원에 대한 회사측의 무리한 가압류 등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진중지회는 지난해와 올해 파업 등과 관련해 해고 1명, 조합가압류 7억4000만원, 퇴직금과 주택 등에 대한 개인 가압류, 체포영장 6명 등이 내려진 상태다.
해고자인 노용준 부지회장은 "지난해 7월 해고되었다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 올해 4월 복직되었다가 다시 해고되었는데,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정이 내려졌지만 회사는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 부지회장은 "회사는 개인 가압류는 다 풀었다고 하지만 월급에 관해서만 풀었지 퇴직금과 주택 가압류를 그대로 남아 있고, 조합 가압류도 풀겠다고 말만 하고 있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낮 12시경 85호 크레인 앞에서 열린 첫 보고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의 조합원들은 모든 책임을 회사에 돌렸다. 조합원들은 배 진수 뿐만 아니라 지난 13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회사는 "불법파업 참가자 법적절차 착수 통보"라는 통신문을 발송했는데, "10월 15일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청구, 가압류, 사규위반 징계조치, 무노동무임금 적용으로 인한 급여 미지급과 10월 상여금 지급 불가 등을 조치하겠다"고 밝혔던 것.
또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한 간부는 "14일 배 진수 때 회사는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고공 크레인에 사람이 있는 한 공권력 투입은 불가하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회사가 밧줄을 끊고 끝내 진수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정통신문에서 고소고발 등을 운운하면서 조합원들에 대해 협박을 했고, 상여금 미지급 등을 통보한 것은 단협 위반으로 부당노동행위였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정혜금 조직부장은 "회사는 2년간 노조 길들이기를 했고, 가정통신문을 보내 조합원의 이탈 의도를 드러내려고 했다"면서,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은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가압류 문제와 관련해 "개인 가압류는 이미 풀었으며, 조합 가압류는 총 7억4000만원중 40%만 남기고 나머지는 풀려고 이미 지회측에 제안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자 처리와 관련해서 "노용준 부지회장은 폭행 때문에 해고된 것으로 현재까지는 해고를 철회할 방침이 아니다"고 말했다.
| | ▲ 한진중지회 김인수 사무장이 유서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한진중 회사측 "유족, 노조와 협의해 원만한 해결 노력"
한진중 회사측은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사건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는 "이같은 사태가 발생한 점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회사는 유족과 노조와 협의하여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회사측은 "그동안 현장을 점거하고 농성 중인 조합의 간부들과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지속해 오면서,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와 협상의 대표로 참석해 주기를 누차에 걸쳐 적극 권유해 왔다"면서, "지회장이 점거 중인 크레인 주변은 조합원들이 완전히 점거하여 회사측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었고,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 왔다"고 밝혔다.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가정통신문 발송과 관련해 "직원 가족들에게 보내는 통상적인 내용이었다"면서, "회사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을 호소하고, 파업을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회사가 경영이 어렵다면서 주식배당을 많이 한 것 등을 지적한데 대해 회사 관계자는 "2003년 임금협상은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한 상태였고, 2002년 임금까지 함께 적용해 달라고 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라며, "주주배당은 회사 규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국 노동단체 대표들 속속 현장 도착... 고인 유서 낭독하자 울음바다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부산과 전국 규모의 노동단체 대표자들이 한진중공업 현장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정의헌 본부장과 경남본부 이흥석 수석부본부장을 비롯해 금속노조 지도부도 현장에 상황실을 마련하는 등 대책에 나섰다. 현장에는 이날 낮부터 전국 노동지도자들이 보낸 조화가 도착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오후 3시 한진중 광장에서 2차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매일 저녁 7시에는 전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악질재벌 한진중 규탄과 김주익 지회장 추모대회"를 열기로 했다. 정의헌 본부장은 "김 지회장의 갑작스런 운명 소식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노무현 정권의 노동탄압과 악질 한진 자본에 의해 고 김 지회장은 스스로 자신을 던져 투쟁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광장에서 열린 1차 보고대회에는 3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인수 사무장이 고인이 남긴 유서를 낭독하자, 조합원들은 고개를 숙여 흐느끼기도 했다. 김 사무장과 조합원들은 "살려내라 살려내라 김주익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시신은 17일 오후 2시30분경 검사가 지휘를 받아 검안이 이루어졌다. 부인과 형 등 고인의 유족들은 이날 오전 현장에 도착해 울음바다를 짓기도 했다. 대책위원회는 전국 단위로 꾸려질 예정이다.
| | 김주익 지회장 약력 | | | | 1981년 2월 : 태백기계공고 졸업 1982년 2월 : (주)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소 입소 1982년 8월 1일 : (주)대한조선공사(현)한진중공업 입사 1990년. 8월: 제28년차 대의원, 문체부장 1992년. 8월: 제30년차 수석부위원장 1993년 8월 25일 : 제 30대 부위원장 역임 1994년 제 31대 사무국장 역임 1994년 7월: LNG 선상 파업투쟁으로 구속, 강제휴직 1995년 8월: 원직복직, 산업안전보건위원 1996년 8월: 제34년차 대의원 1997년 8월: 제35년차 대의원 2000년 11월 5일 한진중공업 통합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당선 2002년 11월 한진중공업 지회장 재당선(임기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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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담요가 덮인 김주익 지회장의 시신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1신 - 기사 수정: 오전 11시30분]
| | | ▲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벌인 고공 크레인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129일째 35m 높이의 고공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여온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부산광역시 영도구) 김주익(41) 지회장이 17일 새벽 자살했다. 지회는 교섭 등과 관련해서 회사와 갈등을 빚어왔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8시30분 회사 안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김주익 지회장은 집회때마다 크레인에서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면서 집회에 동참해왔다.
그러나 17일 집회때에는 김 지회장이 크레인 밖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한진중공업 특수선지회 차해도 지회장은 "전화를 안받아 크레인에 올라가 확인한 결과 김 지회장이 목을 매달아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지회장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오전 9시부터 현장확인 작업에 들어갔으며, 조합원들은 시신 사수를 위한 집회를 갖고 있다. 오전 10시20분 현재 경찰과 조합원들 입회 하에 검안 작업을 하고 있다.
유서 내용을 본 손송주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회사가 흑자를 내면서 임금인상 등에 있어 2년 간이나 교섭을 끌어오면서 노조 탄압을 일삼았고, 손배 가압류,징계 해고 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주익 지회장 유서에는 자기 몸을 희생해서라도 악질적인 노무 탄압의 고리를 끊겠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자살 사고 현장은 검사가 도착한 뒤에 수습할 예정이다. 금속노조는 범 노동계 차원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7일 오후 3시 30분 한진중공업에서 금속노조 영남권 각 지회 간부들이 집결해 집회를 갖고, 18일과 19일에 전국 금속노조 14개 지부 임원들이 집결해 시신을 사수할 예정이다.
20일에는 금속노조 확대간부 한진중공업에서 집회를 갖고, 촛불집회 등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자녀 세명이 있다.
| | ▲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매달았던 현장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
| | "나의 죽음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 | | | [전문] 김주익 지부장이 남긴 두개의 유서 | | | |
| | ▲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였던 고공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한진중공업 공장의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이던 크레인 위에서 두 개의 유서가 나왔다. 하나에는 지난 추석 이틀 전인 9월 9월 쓴 것으로 되어있고, 다른 하나는 10월 4일 날짜가 적혀있다.
이에 따라 김 지회장은 오래 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현장에서 발견된 두개의 유서 전문이다.
(10월 4일자 유서) 조합원 동지 여러분. 회사의 경영진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대의원 이상 간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노동조합을 사수할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생존권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동지들. 나의 주검의 형태가 어떠하든간에 나의 죽음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9월 9일자 유서) 유서.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모래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한번 하지 않고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단기 순이익의 1.5배∼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당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500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0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 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가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 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이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지 며칠 안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아, ○○아, ○○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지 10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 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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