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에서 퍼온 글입니다. 보신분도 있겠지만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60년이 다된 지금도
일제가 왜곡한 국사에 따라 우리 어릴적 배운 바대로 우리가 곰과 호랑이가 결혼해서 낳은 선조 단군의 자손이라 여기고 사는 교육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이런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도 매국노의 자손은 강제환수된 재산반환청구소송을 버젓이 낼 수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이 또 안타까워
그리고 너무 서글퍼 다 알고계시리라 믿으면서도 푹 퍼서 올립니다.
단군, 이제 신화굴레 벗겨야/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부산일보 2004/05/31 008면 10:36:59
근대 일본인 사학자 나가통세(那珂通世)가 단군을 부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1894년 '조선고사(朝鮮古史)'란 논문에서 '단군신화는 불교도들의 말설이요 날조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인 학자들의 이와 같은 단군 부정론은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 설치와 함께 본격화되었다.
단군신화는 한마디로 일제식민사학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일제가 단군을 신화로 끌어내려 말살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보이는 '일웅일호(一熊一虎)''동혈이거(同穴而居)''신웅(神雄)''웅녀(熊女)' 등과 같은 이야기가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일웅일호'는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범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한 웅부족과 한 호부족을 가리킨 것이다.
요순시대의 기록인 '서경' 순전(舜典)에는 '순임금의 어진 신하로서 주(朱)·호(虎)·웅(熊)·비() 네 신하가 있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황제(黃帝)의 용맹한 전사 중에 웅·호 등의 이름이 들어 있다. 이런 자료들은 이 시기에 호나 웅이 범이나 곰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부족 또는 사람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동혈이거'는 곰과 범이 같은 동굴에서 살았다는 것이 아니고 웅부족과 호부족이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았던 사실을 말한다.
상고시대 사람들은 '혈거이소처(穴居而巢處)' 즉 높은 지대에서는 땅에 굴을 파고 살고 낮은 지대에서는 서 있는 나무를 얽어매어 그 위에 올라가 살았으므로 웅족과 호족이 당시 함께 혈거생활을 했던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환웅(桓雄)에 대해 신웅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인간이 아닌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신성한 인간이란 뜻이다. 예컨대 맹자는 인간을 선인(善人)·신인(信人)·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여섯 단계로 분류하여 말하였다.
환인·환웅의 환은 송나라 환퇴(桓)의 경우에서 보듯이 춘추시대까지도 환족(桓族)이 존재했다. 따라서 우리말로는 '한''하늘'과 통하고 '태양'을 지칭하기도 하는 환은 태양 또는 하늘을 숭배하던 부족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웅녀와 환웅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은 환웅이 곰이 여자로 변한 '곰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아니고 웅족가문에서 자란 웅녀와 환족의 추장인 웅의 결합에 의하여 단군이 탄생한 것을 말한 것이다.
웅녀가 '곰녀'가 아닌 웅씨가문의 따님을 지칭한다는 것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부인 강씨(姜氏)를 강씨부인이라 하지 않고 여자(女字) 앞에 강자를 붙여 강녀(姜女)라고 한 '시경'과 '맹자'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웅녀의 가문은 당시 어디에 있던 어느 집안이었을까? 초(楚)나라 육웅(熊)의 집안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동남쪽에 있던,춘추시대까지도 공자에 의해 동이족으로 폄하된 초나라의 시조가 바로 육웅이고 그 후예들은 모두 웅씨성을 사용하여 왕위는 웅려(熊麗)·웅광(熊狂)·웅역(熊繹) 등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고조선시대에 환족과 웅족은 다 같은 동이족으로 하나는 동북,하나는 동남지역에 서로 이웃해 살았으며 이들 두 종족이 서로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단군이었다.
단군은 곰의 아들이 아니라 웅려·웅광의 가문에서 환인·환웅의 가문으로 시집온 여인 웅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었던 것이다.
개국 이래 조선조 말엽까지 단군은 우리의 국조였고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단군의 역사는 신화로 변조되었다. 하루속히 일제가 우리 국조 단군에게 씌운 신화의 굴레를 벗기고 단군실화·단군사화(史話)로서의 역사적 실체를 복원하는 데 우리 모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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