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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2059
    작성자 : 글곰
    추천 : 20
    조회수 : 1536
    IP : 203.142.***.241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3/12/23 08:58:24
    http://todayhumor.com/?panic_62059 모바일
    [연재] 奇談 - 네번째 기이한 이야기 (3)
      그는 구두를 신은 채로 성큼 거실에 들어섰다. 거실이라고는 해도 주방을 겸하고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살림살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TV와 라디오가 놓여 있었고 접이식 탁자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싱크대 한쪽에 접시와 그릇, 수저가 뒤섞여 얼기설기 쌓였고 개수대는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은 그릇들로 반쯤 차 있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는 방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여자들이 사는 집치고는 별로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원은 생각했다.

      현관 반대쪽에 문이 열려 있는 화장실이 보였고, 그 왼쪽 옆으로 방문 둘이 나란히 있었다. 그는 우선 왼쪽 문을 열어 보았다. 작은 방은 침대와 책상에다 옷장까지 들어차 있어서 몹시도 좁아 보였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네모반듯하게 접힌 채 놓여 있고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아이돌 가수의 큼지막한 브로마이드가 두 개나 붙여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 박힌 못에는 염주가 걸려 있어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해원은 염주를 살짝 들어 보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걸어 두었다.

      “특별한 건 아니네. 영기(靈氣)는 느껴지지 않아.”

      “불교 신자인가 보죠?”

      “신자라고는 해도 독실한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그나저나 깔끔하게 방을 정리해 놓은 걸 보니 이쪽이 그 여행을 갔다는 룸메이트의 방인가 보군. 이름이 수희라고 했던가?”

      “한수희라는 이름이었어요. 이왕이면 거실도 이렇게 정리를 해 놓을 일이지.”

      해원은 픽 웃었다.

      “뭐,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니까. 옆방으로 가 보자.”

      오른쪽 방은 해원의 말대로 왼쪽 방보다 훨씬 지저분했다. 하기야 경찰 수사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을 테니 깨끗한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방의 크기는 옆방과 비슷했지만 침대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넓어 보였다. 대신 이불이 대강 개켜진 채 한쪽 구석에 박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책이나 필기구 따위가 널려 있는 채였다. 벽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었다. 창문으로 불그레한 햇살이 들어와 반대쪽 벽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몸이 살짝 으슬으슬해지는 것을 느낀 해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계절은 초여름이었고 춥기는커녕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영(靈)이 여기 남아 있는 건가...... 이 정도면 보지 않아도 알겠군. 어때?”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맞아요. 목둘레에 상처가 남아 있어요. 저런......”

      목소리는 말끝을 흐렸다. 해원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항상 신경이 쓰이는 바였지만, 기껏해야 고등학생밖에 안 된 소녀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다는 죄책감이 새삼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이 없으면 사건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는 재차 물었다.

      “우릴 알아보는 것 같아?”

      “아니요. 아직은 그냥 멍한 것 같아요.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모양이에요.”

      역시 단순한 일은 아니었군. 해원은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로 자살한 영이라면 스스로의 죽음조차 깨닫지 못할 리 없었다. 다른 영이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영들이 초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만일 이대로 놓아둔다면 십중팔구 지박령(地縛靈)이 되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다니게 될 터였다. 그런 일은 막아야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고 그 원인을 이 집으로부터 완전히 걷어내는 일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이 귀신들린 집이라고 수군대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오.’ 그것이 그가 받은 의뢰였다.

      목소리가 물었다.  

      “한번 불러 볼까요?”

      “아니. 일단은 그냥 놔 둬. 이따 밤에 내가 직접 이야기할게. 그보다, 다른 영은 보이지 않아?”

      “안 보여요. 뭔가 느껴지긴 하지만요.”

      잠들어 있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숨은 걸까? 해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입주자들도 다들 도망치듯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해원은 이곳이 소위 ‘귀신 들린’ 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는 영의 존재를 확신했다. 어둡고 습한 기운이 공기 틈새를 비집고 스믈스믈 새어나오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원한령(怨恨靈)이었다. 강한 원한을 지닌 영이 승천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문점이 있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귀신이 나온다고 소문이 파다했지만 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사망자가 생긴 것일까? 그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과,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아니다. 해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원한령이 학생을 죽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단순한 자살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원한령에게 살인의 책임을 묻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성급한 일이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방의 주인이 친구를 살해하고는 경찰에 자살이라고 신고했을 가능성조차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가능성은 너무나도 많은데 추론할 근거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역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이따 다시 오자.”

      해원은 결정했다. 음기가 강해지는 밤이 되면 원한령이든 아니든 간에 여하튼 뭔가가 나타날 터였고, 방 안을 떠돌고 있는 자살한 학생의 영과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질 때마다 몸을 감싸고 있던 음습한 기운이 점차 사라져 갔다. 현관 밖으로 나온 해원은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자정 가까울 무렵이 되어서야 해원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낮에 비해서 한층 강해진 영기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맞이했다. 현관문을 잠근 후 해원은 슈트 안주머니에 있는 펜을 톡톡 두드렸다.

      “바리야.”

      불현듯 그의 옆에 소녀가 나타났다. 키는 백육십 가량에 평범한 십대 소녀의 체격이었다. 흰색 긴팔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치마를 입었는데 옷의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촌스러운 교복이었다. 게다가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머리카락, 흰 양말에 단화까지 합쳐지니 아무리 봐도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단 하나 평범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녀의 몸이 반투명하다는 점이리라. 그녀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흐음.”

      “어때?”

      “역시 밤에 오니 좀 더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이 집 안에는 영이 둘 있어요.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영 한 명, 그리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 영 한 명.”

      “위치는?”

      “둘 다 저쪽이에요.”

      바리는 사건이 일어났던 안쪽 방을 가리켰다.

      “그런데 하나는 숨어 있나 봐요. 기운이 지나치게 약하게 느껴지네요.”

      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 걸음을 걸어 방문 앞에 섰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머리가 저절로 쭈뼛해졌다. 해원은 손잡이에 손을 대고 바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 영이 흐릿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바리보다 훨씬 투명했지만 잘 살펴보면 간신히 얼굴을 분간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멘 채로 그 영은 시선을 고정시킨 채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감정이 없는 얼굴 아래로 목둘레에 흐릿한 줄 자국이 보였다. 무릎 아래는 공중에서 녹아버린 듯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해원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다른 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방의 벽에서 분명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역시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해원은 말없이 걸음을 옮겨 영의 앞에 섰다. 그러나 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가볍게 헛기침도 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리가 옆에서 조언했다.

      “무슨 취조하는 것처럼 허구한 날 딱딱하게 굴지 말고 이번엔 좀 부드럽게 말해 봐요.”

      “......어려운 거 시키네.”

      해원은 끄응 신음소리를 냈다.

      “젊은 언니잖아요. 좀.”

      “알았어. 노력해 볼게.”

      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음을 가다듬은 후 마침내 말을 걸었다.  

      “강은정 씨.”

      순간적으로 영의 얼굴에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영은 한두 차례 눈을 깜빡였다. 눈에 초점이 돌아오더니 이윽고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의 눈은 곧 해원의 얼굴을 향했다. 해원은 물었다.

      “이 집에 사는 이현경 씨의 친구인 강은정 씨, 맞지요?”

      영은 한참 동안이나 해원을 바라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은정 씨, 이현경 씨의 집에 놀러왔던 기억이 나나요?”

      기억나요

      “그게 언제였지요, 은정 씨?”

      오늘밤 아니 어젯밤인데

      영은 말을 흐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엿새 전 밤이었다. 은정의 영의 기억은 자신이 죽은 시점에서 멈춰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해원은 확신했다. 그녀는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정 씨,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요?”

      9일 아니 9일 밤에 잤으니까 10일 수요일이에요

      은정은 머뭇거리며 띄엄띄엄 대답했다. 해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톤이 낮아졌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골라 입 밖으로 꺼냈다.

      “은정 씨. 내 말 잘 들어요. 오늘은 10일이 아니고 15일이에요. 월요일이고요.”

      뭐라고요

      은정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해원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자꾸만 은정의 이름을 강조해 부르면서 그는 은정의 영을 조금씩 깨우고 있었다.

      “은정 씨. 자기 손을 봐요.”

      은정의 영은 오른손을 들어 손등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침묵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해원은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은정의 영이 속삭이듯 말했다.

      투명해요

      “맞아요, 은정 씨. 왜 투명한지 알겠어요?”

      또다시 은정의 영은 침묵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해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몸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 순간 영의 반응은 너무나도 다양하여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저승으로 떠나는 경우였다. 반대로 가장 나쁜 경우에는 영이 현실을 부정하고 폭주하기도 했다. 그 때 터져 나오는 기운이란 실로 대단하여 영적인 힘과 함께 왕왕 물리적인 힘까지 끌어냈고, 구두나 책 따위부터 형광등, 식칼, 심지어는 TV나 의자까지 공중을 날아다니곤 했다. 그럴 경우 해원으로서는 꼬리를 말고 도망친 후 뒤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은정의 영은 폭주하지 않았다.

      한참 후 은정은 갑자기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울음은 깊고 서러웠다.

      뭐야 이게 뭐야 뭐야

      바리가 소리 없이 은정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해원은 살짝 물러서서 시선을 돌렸다. 영에게 그 자신의 죽음을 인식시키는 것은 언제나 뒷맛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영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은정의 영을 다독이는 동안 해원은 아무것도 없는 천정 한쪽 귀퉁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입가심으로 마신 자판기 커피의 달짝지근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입속을 맴돌고 있었다.  

    (계속)
    글곰의 꼬릿말입니다
    不榮通不醜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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