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가 지원받는 실험기자재나 교사진은 일반고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웬만한 대학 학부 실험 강의 이상의 내용들을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있고, 각 시도교육청에서 최고로 꼽히는 교사들만 모여있습니다. 에어컨이나 난방, 책걸상이나 급식같은 기초적인 지원도 일반고에 비교하면 일반고 학생들에게 미안할 수준입니다.
또한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여러 사업이나 대회에서 과학고학생은 예선 자동 통과 또는 자동 참가신청 등의 다양한 이익이 있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 과고생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는 대회들도 많습니다. 뿐만아니라 해외탐방 등 돈이 많이 드는 해외활동비 또한 학교 예산으로 제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약하자면 과학고생은 세금으로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대도 아니고 의대를 진학하는 것은 - 매우 드물게 의공학이나 의학연구에 꿈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 ▲과학고에서 배우는 자연과학 교육과정을 활용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혜택에 대해 자각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다만 과학고를 입시경쟁에서 상대우위를 점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스펙으로 삼겠다는 것인데 이는 교육부의 사업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도를 당연히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그렇다고 과학고 다니는 의대지망생을 압박하면 어떡하느냐.
자연과학 연구의 길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고생들이 실제로 밟게 되는 자연과학 연구자로서의 길은 힘들어서 누구도 가지 않으려하는 가시밭길인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의대라는 조금 더 쉬운 옵션이 있을 뿐이지요. 수도권 과고생은 평균만 했더라도 카이스트를 바라보며, 최하위권도 서강대, 중앙대 최소한 시립대에는 진학합니다. 서포카에서, 연대 고대 성대에서 자연과학 연구하는게 정말 힘들어서 피해 가는 길인가요? 더 좋은 인프라가 제공되어 마땅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저기서 의대로 진학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빤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의대는 가장 진학하기 힘든 단과대중 하나입니다. 그건 과고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서연성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과학고에서도 항상 수위를 다투는 아이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의대를 가는 아이들은 사실 서울대 자연대나 공대는 너끈하다는 말이죠. 서울대 자연대를 마다하고 성대 의대를 오는 사람의 의도가 과학고 사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교육부는 기꺼이 그런 사람들을 차단해야만 합니다.
3. 자연대를 지원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 아니냐.
네. 맞습니다. 원칙적인 해결책은 자연대가 의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옛날엔 전국 이과 1등이 서울대 물리천문학과를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대 의대를 가죠. 버는 돈이, 진로의 결과물이 확인되었기에 학생들의 희망사항이 변한것 맞습니다. 다만 모든 일이 늘 그렇듯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자연대에서 국내 박사를 따면 시험을 통과하는데 따라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과학고생이 진학하는 최상위 자연대는 BK21등의 정부지원사업도 꽤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랩노예가 되는 동안 의대생은 전문의가 되고, 공대생은 취업해서 훨씬 많은 돈을 버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철학과, 예술학과는 당장 학부가 사라지게 생겼고, 교육학과와 각 과목 교육과는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어문계열과 인문계열의 학과들이 통째로 존페를 위협받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자연대는 조금 더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원칙적인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결국 추구해나가야겠지만, 실제 사회에서 실현이 힘든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고치거나, 단기적인 해결책들도 모색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맺는말.
다시 소개하지만, 저는 수도권 과고를 나와서 자연대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에 꿈이 있었고, 과고와 자연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은 제게는 당연한 선택인 동시에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의학연구자를 꿈꾸지만 수준높은 생명과학교육을 제공하는 공교육시설이 없어 과고를 택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겁니다. 그런 사람에겐 이 제도처럼 불합리한 일이 또 없겠죠.
단 하나의 정의로운 결말 따위는 없다는 말에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동의하신다면, 제가 이 글을 단지 제 생각이 옳다고 여겨 그를 웅변하기 위해서 적은 것이 아님을 이해하실거라고 믿습니다. 제 글이 자연과학을 꿈꾸는, 과학고를 나온 자연대생, 곧 자연대 대학원생이 될 학생 한 명의 작은 의견으로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이 조금 더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