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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잊지못할 추억이 서린 곳, 군대.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전역2달 전 갑작스레 입원하게 된 군병원에서의 추억이 가장 선명히 남아있다.
1.외진
때는 바야흐로 추운 겨울의 초입이었던 10월 말, 당시 우리 분대 전원과 함께 검문소 파견을 나갔던 나는 근무는 고되지만 같이 파견 나간 간부2명이 다 착했고, 나 또한 부분대장 위치에 짬도 가득 차서 본부에 있을 때 보다 심적으로는 편안함을 느끼며 검문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근무취침을 하고 있는데 왼쪽 다리가 미친듯이 아파오는게 아닌가?
나는 필시 다리에 쥐가 났으리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다리에 쥐를 풀기 위해 스트레칭 부터 주무르기 까지 셀프 처방의 종합선물셋트를 왼쪽 다리에 선사하였지만 오히려 다리는 더욱 더 쿡쿡 쑤시며 아파왔다.
누워서 쥐를 풀던 나는 문득 느낌이 쎄하여 벌떡 앉아 왼쪽다리를 쳐다보니, 세상에 시발 오른쪽 다리의 세 배 가까이 부풀어 올라 있는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내 왼쪽 다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 칼로 쿡쿡 쑤시는 듯한 고통을 간헐적으로 선사해주는 내 왼쪽다리를 멍하니 쳐다보며 잠이 덜 깬 대뇌 전두엽을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 길로 난 닷지에 몸을 싣고 근처 군병원으로 외진을 가게 되었고, 정형외과 군의관은 땡땡부은 내 왼쪽다리에 얼굴만한 주사기를 꽂더니 피고름을 쭉쭉 빼내기 시작했다.
내 몸속의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기타 등등 내 몸을 구성하고 있던 것들이 주사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게 긴급처방을 하고 반 깁스를 한 채 약을 받아 검문소로 복귀하였지만, 여전히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야 심심하면 왼쪽다리를 꾹 누른 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을 구경하기 까지 이르렀는데, 그 모습은 마치 고어텍스 베개의 신축성을 떠올릴만 하였다.
외진 후에도 차도는 없고 왼쪽다리는 하루종일 쿡쿡 쑤시메 잠도 제대로 못자던 나는, 결국 1주일 뒤 간부에게 강력히 어필하여 또다시 외진을 갔고, 첫번째 외진과는 다른 군의관이 진료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당장 입실을 하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2. 입실
얼떨결에 입원 수속을 밟고 병동으로 올라온 나는 군생활 만 2년만에 여자 사람이 그토록 많은 군시설은 처음이었기에 상당한 컬쳐쇼크를 받았더랬다.
알다시피 군병원의 꽃은 간호장교, 간호장교는 군인들의 나이팅게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환상 속의 간호장교들과는 조금 이질적이게도 하얀 간호사제복을 입은 '남자'간호장교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었다.
살면서 직업에는 귀천도 없고 성별도 없다고 굳게 믿어왔던 나지만, 왜인지 그 때 만큼은 간호사는 무조건 여자가 해야될 것 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입실하자마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겔을 꽂아주는게 아닌가? 태어나서 처음 링겔이란걸 맞아본 나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억개의 포도당 원자들의 향연을 만끽하며 좋다고 병실 벽에 걸린 벽걸이 평면 티비를 쳐다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3. 대빵간호장교
지금은 명칭이 잘 기억이 안나지만, 각 병동 마다 간호장교가 3~4명씩 배정되어있고 그 간호장교들을 총괄 지휘하는 대장간호장교가 한 분 있었다.
계급은 대위였고 생김새는 어릴적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을 갖은 악행으로 괴롭히던 아줌마악당 처럼 생기셨으며, 성격 또한 그 악당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천사같은 소,중위 (여자)간호장교들과는 달리 짬밥과 연륜이 묻어나는 포스를 풍기며 대빵간호장교님은 병실을 휘저으며 건장한 남정네들을 휘어잡고 다니셨다.
허나 개인적인 진료나 회진 때에는 마지 우리 엄마 전화통화 받으실 때 처럼 급 간드러지는 콧소리를 무장하시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위협적인 친절을 베풀곤 하셨다.
그래도 지금까지 얼굴이 안 잊혀지고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참 좋은 분이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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