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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1813
    작성자 : 글곰
    추천 : 24
    조회수 : 1638
    IP : 203.142.***.241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3/12/17 10:20:11
    http://todayhumor.com/?panic_61813 모바일
    [연재] 奇談 - 두번째 기이한 이야기 (7) - 完
      검은 그림자와 여학생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이었고, 그렇기에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여학생은 흰색 블라우스에 회색 치마의 교복 차림이었고 하얀 양말에 검은 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반투명해서 반대쪽 벽이 비쳐 보인다는 점만 빼면 그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반면 검은 그림자는 다시 연기가 뭉쳐진 것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여학생은 주저 없이 검은 그림자에게 성큼 다가갔다. 검은 그림자는 흠칫하더니 약간 뒤로 물러났다.

      “이제 한을 풀고 저승으로 가시는 게 어때요?”

      왜 나를 막지

      “더 이상 누가 다치는 건 싫어요.”

      저 자가 자초한 일이야

      “하지만 저 분만 다치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검은 그림자가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었다. 여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 분을 해치면 어머니께서 기뻐하실까요?”  

      여학생의 당돌한 질문이 지나간 자리에 침묵만이 흘렀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다시 말했다. 거의 허탈하게조차 들리는 어투였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원한을 갚아야 해

      “가엾게도.”

      여학생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 해원이 천천히 다가가 여학생의 옆에 섰다.

      “당신도 느끼고 있지요? 죽은 정명훈 일병의 영이 당신에게 들러붙어 당신의 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을.”

      그림자가 점점 더 움츠러들더니 갑작스레 다시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옆구리에 축구공만한 물체가 매달려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게 생긴 그 ‘무언가’는 머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입으로 그림자의 옆구리를 말 그대로 갉아먹고 있었다. 이빨 자국이 틀림없는 그 흔적은 넓고 깊어 반투명한 뼈와 내장이 보일 지경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슬픈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지 사람을 해치자 내 힘이 더욱 강해졌지만 이런 게 생기더군

      “당신이 해친 사람이 당신의 혼을 먹어치우는 아귀(餓鬼)가 된 겁니다. 이것도 업보의 일부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당신이 원한 때문에 사람을 해친다고 하지만, 정명훈 일병은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친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원한은 또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두시지요.”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리고 당신의 원한이라면 이미 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그림자는 확연히 놀란 모습이었다.

      “오기 전에 행정반에 들려 좀 찾아봤습니다. 한 달 전에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퍽치기 전문 3인조 일당이 검거되었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해원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저녁시간에 행정반에 앉아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기에 뭐하는 일인가 했더니, 그세 그 기사를 찾아본 모양이었다.

      “범행 장소는 OO시의 OO대학교 인근의 골목길. 날짜는 지난 달 16일. 범행시간은 새벽 2시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곳이 맞지요?”

      맞아 그러면

      “인과의 실은 길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처벌을 받겠지요.”

      처벌받는다라

      “다만 이승의 법도에 따라서입니다.”

      해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림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김성현 병장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펴보았다. 정신을 잃은 채였지만 적어도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해원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심약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괘씸한 짓을 했지만 이제 용서해 주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억울했어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림자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적어도 옳은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하는군

      보기 드물게도 해원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림자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내게는 마치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 너무 늦은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도덕 교과서 같다는 거야

      해원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림자는 자신의 옆구리에 들러붙은 아귀를 살짝 어루만졌다.

      이제는 알 것 같아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건 오히려 나일 테지

      “그렇습니다.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은 짊어지고, 털어야 할 것은 털고 가십시오.”

      그래야겠지

      해원은 한 발짝 물러서더니 여학생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때껏 가만히 있던 여학생이 검은 그림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한 손을 잡고 맑은 목소리로 오래된 민요 비슷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서서 노랫소리를 들었다.

      “신아, 불쌍한 망자씨. 가련한 망자씨. 오구굿 받으시고 일직사자 월직사자 삼사자 여우시고 왕생극락을 가신다네. 오구의 천근이야, 천근이야, 천근이야. 야아어이요 천근이야......”

      노랫가락이 사방을 휘감아 도는 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나는 흡사 연극의 피날레를 보는 기분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노래 소리가 지속되더니 어느 순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학생도 검은 그림자도 사라진 채 해원만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놓인 반지를 주워들고 있었다.

      “끝난 거야?”

      말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내일 어르신이 오셔서 천도제를 치르고 나면 모든 게 끝나겠지.”

      “하지만 아까 귀신은 그 뭐냐...... 극락왕생? 뭐 그렇게 된 거 아니야?”

      “깊은 한은 그만큼 쉽게 풀리지 않지. 그리고 정명훈 일병도 있으니까.”

      “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해원이 선수를 쳤다.

      “바리 일은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다.”

      “응? 아......”

      왠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린 그의 말투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게는 그 여학생의 이름만이 남았다.

      해원이 CCTV 카메라에 대고 신호한 후 우리는 계속 기절해 있던 김성현 병장을 깨웠다. 나는 부러 발길질을 세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해원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병장은 귀신이 해원의 설득으로 물러갔다는 내 설명을 들은 후에야 해원에게 허리를 굽실굽실 굽혀 가며 고마워했다.

      남은 근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다시 당직실로 돌아가자 간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해원은 간단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물론 바리의 이야기는 빼놓은 채였다. 내일 천도제를 지내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대대장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침내 내무반으로 돌아온 나는 간신히 장구와 군화를 벗은 후 거의 기절하듯이 잠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음날 점심 무렵에 해원이 말한 사람이 도착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흰색 한복을 입고 장식 없는 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린 그 중년 여성은 마치 TV 속 사극에서 바로 현실로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당답다고 해야 할지, 눈매가 워낙 무서워 감히 얼굴을 쳐다보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우리 대대장조차 은근히 기에 눌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해원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의 모습은 약간쯤 온화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초소로 향했다. 대대장 이하 간부들과 김성현 병장도 함께였다. 초소에 도착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짧게 말했다.

      “자네 어제 애썼구먼. 고생했네.”

      “아닙니다. 바리 덕분이죠.”

      해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야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어제 만난 그 여학생과 지금의 중년 여성이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을.

      짐을 잔뜩 싸들고 그녀를 따라온 조수 두 명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잽싸게 굿판을 차리기 시작했다. 상에는 여러 제물들과 함께 반지와 시계가 하나씩 올라갔다. 시계는 죽은 정명훈 일병의 유품이었다. 중년 여성의 지시에 따라 대대장 이하 우리들은 상당히 어색한 모습으로 절을 했다. 물론 해원만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절이 끝나고 나자 굿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굿과는 상당히 달랐다. 화려한 색색가지 옷을 입고 펄쩍펄쩍 뛰는 무당도 없었고, 큰 칼이나 작두 따위도 없었다. 대신 중년 여성은 입고 온 하얀 한복 그대로 서서 천천히 춤을 추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읊었고 때로는 노래를 불렀다. 귀를 기울이니 어제 바리라는 여학생이 부른 노래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마도 슬픈 가락 때문일 것이다.



      굿이 끝나자 어느덧 해질녘이었다. 해원과 나는 중년 여성을 배웅하기 위해 부대 밖 터미널까지 동행했다. 대대장의 말 한 마디에 없던 외박증이 갑자기 생겨나는 기적 같은 모습은 내 군대 생활 동안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터미널은 늦은 시간 때문인지 무척이나 한산했다. 조수들은 짐을 버스 짐칸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후 바람처럼 버스 안으로 사라졌고 버스 홈에는 우리 셋만이 남았다. 해원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품속에 손을 넣으며 무어라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순간, 옅은 푸른색을 띈 반투명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조심해서 가요, 엄마.”

      그녀의 얼굴을 보며 중년 여성은 해맑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니 좋구나. 항상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여학생의 그림자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원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손한 태도로 버스에 올라타는 중년 여성을 배웅했다. 버스가 플랫폼을 뒷걸음질로 빠져나가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떠나자, 해원은 한숨을 쉬더니 내게 말을 건넸다.

      “간만에 나왔으니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네가 쏴.”

      “왜 내가 쏘는 거냐?”

      “넌 상병이고 난 이등병 나부랭이잖아. 뻔뻔하긴.”

      나는 혀를 찼다. 이럴 떄만 고참 대접이냐?

      “알았어. 내가 쏜다! 대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응?”

      “그 때 행보관한테 요청한 것 중 네 번째 말이야.”

      “아. 그거?”

      해원은 왠지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알아봐야 할 게 있으니까 며칠 휴가를 달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모든 게 해결된 거 아냐? 여기서 뭘 또 알아봐야 하는 거야?”

      내 질문에 해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내 등을 툭툭 두들겼다.

      “주원순 상병님, 군대에 오래 있다 보니 머리가 굳어 버렸구나?”

      “무슨 소리야?”

      “그야 당연하잖아?”

      해원이 고개를 가까이 가져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알아봐야 할 게 뭐가 있겠냐? 핑계 삼아 휴가나 한 번 갔다 오려고 그런 거지.”
     
    -끝-
    글곰의 꼬릿말입니다
    不榮通不醜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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