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글을 시작하기 전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드립니다.
근래 내가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오전 한시에서 두시 사이였다.
프로젝트에 떠밀려 한참을 사무실에서 시달리다가 결국 간신히 집에 도착하면 열두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었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방에 앉아 웹서핑을 하는게 삶의 낙이었다.
물론 프로젝트 중간중간 스마트폰과 테블릿을 가지고 웹서핑을 안하느냐? 그건 또 아니지만, 아직도 활용성과 퍼모먼스에 있어 모바일 기기들은 거치형 컴퓨터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었고. 실제로도 렙탑에 비해서도 거치형 컴퓨터를 좋아했다. 때문에 집에서 오래 컴퓨터를 할 수도 없지만, 컴퓨터는 늘 최신형 사양으로 맞춰놓는 편이었다.
그날도 뭔가 다를 건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눈치를 보며 사무실에 있다가. 어차피 이 시간까지 남아있어봐야 아무 아이디어도 짜내지 못하는데 괜히 앉아서 사람들 눈치나 주는 부장과 옆에서 그 새끼 빨고 앉아있는 차장새끼를 까고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낄낄 거렸다.
그리고, 차장새끼가 부장에게 손바닥 열심히 비비며 술 한잔 하러 가자고 까부는 통에 평소보다는 삼십분 정도 일찍 집에 갈 수 있었다는게 평소와는 좀 달랐다.
"우리 과는 참~ 프로젝트 하나 떨어지면. 이건 뭐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건가?"
"에이~ 뭘 그런걸 가지고 그래요. 다른 회사들도 똑같지."
"으이구! 하긴, 뭐 그런거지. 그래도 넌 좋겠다. 아직 결혼 안했지? 결혼 하지마라. 그거 좆같은거다."
"풉! 언제는 죽고 못산다더니? 축의금 돌려줘요."
"이새끼! 그거 마누라가 다 디비 처먹고 지금 몸무게가 55킬로그람이란다!"
김계장과 실없는 소리를 떠들고는 평소처럼 차에 올라타 도로를 달렸다. 아침에는 꽉 막혀서 움직일 줄 모르는 서울의 거리가 이 시간만 되면 한산하다. 물론, 그래도 다른 지방들에 비해서는 차가 잔뜩 있지만.
서울을 지나 서부간선 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짬짬히 내가 흔히 들어가는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이것저것 읽는다. 물론, 매우 위험한 일인것은 알지만. 평소 짬이 없는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두개의 테블릿 피시 중 하나는 네비게이션으로 쓰고 하나는 검색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치 운전석이 우주선이라도 된 것 처럼 내 우측을 테블릿 피시의 거치대와 기기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 차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가끔 이렇게 기기를 만지작 거리는 것에 만족감이 들었다.
유머 커뮤니티에서 가장 유명한 게시판인 웃긴 게시판에 들어가 자료를 하나하나 읽는데. 그날따라 매우 섬뜩한 느낌이 드는 사진을 하나 보게 되었다.
별것 아닌 사진이었다.
그냥 숲이 우거진 가운데에 오두막 하나가 있는 사진이었는데.
귀신이 나오는 사진인데.
추천을 하지 않으면 내 뒤를 쫒아다닌 다는식의 글이었다.
"하여간 추천 유도하는 개새끼들 다 죽여버려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혹시하는 생각에 추천을 누를까 싶었지만. 갑자기 테블릿의 전파 송수신 상태가 나빠지며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다.
난 추천 유도글에는 도리어 반대를 남기는데. 이번에는 꼭 추천을 달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성이 불안감을 억눌렀고 난 그냥 집에 가는 것에 집중했다.
집에 도착하자 역시나 부모님은 모두 잠자리에 드셨고. 집은 썰렁했다.
대충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켰다.
아까 추천하지 못한 것이 못 내 맘에 걸리다보니 유머 커뮤니티에 들어가 그 게시글을 찾았지만 게시글은 추천유도로 인해 삭제 된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매우 불안했다.
"아... 여튼 추천유도는 이래서 짜증나."
하여간 뭐 대단치 않은 일이니, 난 아까의 불안감을 억지로 접어두고 웹서핑을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우리 빌라 앞에서 중고딩이 새벽에 낄낄거리며 돌아다니다보니 이번에도 그런갑다 싶었다. 너무 지나치면 나가서 쫒든지 아니면 그냥 신경 끄고 자든지 해야지. 하지만 내일도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 그냥 신경을 끄는편이 낫겠다. 전에는 나에게 혼난 중학생들이 빌라 주차장 자동차 사이드 미러를 전부 발로 차서 부숴버린 일도 있으니.
금방 갈 거라 생각하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방 창문 앞은 2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다른 빌라가 있어서 마치 벽이 서있는 듯 하여 시야확보가 되지 않았다. 밖을 보기위해서는 거실로 나가든가 밖에 나가든가 해야 했는데. 그런 귀찮음 때문이라도 컴퓨터에 집중하기로 했다.
-낄낄낄 키키킥 히히히히-
매우 짜증나는 소리였지만, 아까 애써 접어두었던 불안감이 공포가 되어 엄습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탓이리라.
그러던 도중 갑자기 창문 쪽에서 강한 한기가 들어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던 눈을 천천히 돌려 처다보자 창문의 아래즈음 작게 솟은 머리가 보였다.
잔뜩 풀이 죽어보이는 머리는 머리의 삼할 정도만 올라와 있어 이마가 보일락 말락한 정도였는데. 그 정도로도 충분히 몸이 얼어붙기에 충분했다.
우리 빌라는 1층은 없다.
그러나 반지하와 지하주차장. 그리고 그 위에 위치한 2층 우리집이라는 형식이었다. 때문에 절대 내 방 창문에 저렇게 머리의 끄트머리가 보일 수는 없었다. 만약 보인다면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다는 소리겠지.
침이 꼴깍 넘어갔다.
창문을 닫고 싶은데 닫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냥 모니터만 뚫어지게 처다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야각 범위에 들어와 있는 머리통은 흐릿하게나마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난 그것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컴퓨터를 끄고는 마치 별 일 없었다는 것 처럼 하품을 하며 침대위에 누웠다. 그리고 창문을 외면하고는 뒤돌아서 자버렸다.
아무일도 없던 것 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바쁘다.
모든 회사원들이 그렇겠지만. 조금만 더 와의 싸움은 매우 고통스럽다.
때문에 이를 악 물고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한다.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창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언제 자랐는지 푸른 담쟁이가 창문의 모기장을 바람따라 톡톡 건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저걸 잘못본건가?
난 피식 웃으며 창문을 닫고 출근을 해버렸다.
밖에 나와 바라본 내 창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별것 아닌 일이 분명했다.
퇴근 후 돌아오니 어머니가 환기를 시키려는 듯 창문을 열어두셨다.
창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내가 잘못 본 것이리라.
컴퓨터를 켜고 그 앞에 앉자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머리통. 이번에는 그 높이가 어제보다 높아져 눈섭이 보일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 일이 있고 삼일이 지났다.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퇴근한 회사에서 혼자 앉아있으면 오히려 더욱 불안감이 심하게 엄습했다.
하지만 집에 가면 그게 있다.
그 셋노랗게 번쩍거리며 빛나는 눈이 천천히 내 쪽으로 움직인다.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사무실에서도 녀석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이었고. 한기가 엄습하는 사무실의 유리벽 밖의 어두운 복도 저편을 보면 희미한 실루엣이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천천히 기어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보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이 돌아가서 바라보는 모든곳에 그것이 있었다.
심지어 차를타고 가면
도로의 어두운 구석에 그것의 번쩍거리는 눈이 나를 주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나를 말려죽이려는 것 만 같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여 내 방에 들어섰을 때는. 녀석의 비쩍 말라버린 나뭇가지 같은 팔이 방충망을 뚫고 아주 느린 속도로 창문 안 쪽으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난 화들짝 놀라 옷도 벗지 못한 체 방 문을 거칠게 닫고 거실로 도망쳤다.
그리고 쇼파의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내 방 쪽을 처다 보았다.
부엌과 안방에 작은 통로가 되어버린데다가 우측으로 꺾인 곳에 내 방이 있어서 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놈이 내 방에 기어들어왔을 것 같았다.
그때, 추천유도글에 추천을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거야!
아무리 후회하고 후회해 보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내 방문에서 날 수 없는 녹이 잔뜩 끼어버린 경첩에서 날법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주 천천히 열리는 듯 -끼이이이이익- 하고 거실을 조용히 울려대는 소리에 내 심장이 잔뜩 움츠러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지독한 한기. 아니! 추위.
여름에 느낄 수 있을 법한게 절대 아니었다. 아니! 겨울에 조차 느낄 수 없는 지독한 추위였다.
그리고 거실 끝 내 방 쪽에서 기어나오는 것 같은 미라같은 팔이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 다음 다른 쪽 팔도 바닥을 기듯 앞으로 뻗어 나왔다.
톡 치면 부러질 것 처럼 약한 손가락들이 바닥을 긁으며 몸을 끌어당겼다.
공포에 사로잡혀 움직이지조차 못하고 그 쪽을 바라보던 내 눈과 녀석의 번쩍거리는 형광색 눈이 마주쳤다.
-키키키키키.-
녀석은 슬금슬금 몸을 돌려 내 쪽으로 오려고 했다. 긴 머리카락 사이에 숨겨진 녀석의 그늘진 얼굴에서. 눈만이 번쩍거리며 날 응시한다.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
몸을 벌떡 일으켜 뒤도 안돌아보고 집 밖으로 나섰다.
엉거주춤 세워놓은 차에 올라타 바로 시동을 걸고 미친듯이 집에서 빠져나갔다.
차라리 차를 타고있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같이 이 상황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게 낫다 싶었다.
누가 좋을까?
그래, 요즘 김계장이 프로젝트 핑계로 회사의 독신자 기숙사에 살고 있다는 소릴 들었다.
부랴부랴 회사 기숙사로 차를 몰았다.
중간중간 어두침침한 부분을 지날때면 녀석의 번쩍거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미친듯이 차를 몰아 기숙사 근처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점원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였지만. 난 그가 누구보다도 반가웠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을 수도 없는 법이니 난 맥주 몇캔과 씹을거리 몇개를 구입해서 김계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금방 받는다.
"어? 니가 이 시간에 무슨일이냐?"
"형! 수, 술한잔 할까?"
"이새끼 숨넘어가겠네. 술? 뭐, 좋겠다만. 너 집에 간거 아냐?"
"아냐아냐! 형 보고 싶어서 회사에서 바로 돌아왔어. 형 기숙사야?"
"응. 올거면 빨리와라. 네가 말하니까 나도 한잔 빨고싶네. 야! 그리고 올 때 담배한갑 사와."
"알았어."
그때 휴대전화에서 작은 비음이 들려왔다. 섬뜩한 목소리였다.
휴대전화를 보자 뭔가 익숙해 보이는 사진이 떠 있는게 보였다.
망할!
난 서둘러 핸드폰을 꺼버리고 담배를 산 후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차 안에는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를 몰아 기숙사에 도착하자 기숙사 정문을 열어주기 위해 김계장이 경비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김계장이 눈에 보이니 다행이었다.
결국 차가오자 경비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었고. 차를 주차장에 댄 후 형의 기숙사로 올라갔다.
"야. 너 왜 그렇게 땀이 범벅이냐? 차에 에어컨 안켰어?"
"응? 아, 아까 편의점 갔다오느라."
몸은 추워 죽을 것 같은데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김계장과 기숙사를 오르는 도중에도 작은 미등과 비상구 표시등만 간간히 빛나는 복도 끝에 녀석이 보였다. 나를 향해 힘겹게 기어오는 모습이 말이다.
김계장 방에 들어서자마자 씹을거리를 대충 세팅하고 앉아 맥주를 땄다. 그리고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것 같은 목을 단숨에 채웠다.
김계장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처다보며 자신도 캔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무슨 일이야?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은데?"
"응? 아냐아냐. 아! 형 혹이 이 사진 알아?"
"뭔데?"
"한번 봐봐."
난 김계장에게 아까 휴대전화에 떠오른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눈은 김계장 뒷편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 밖에서 번쩍거리는 눈이 나에게서 김계장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야. 이 집 생긴게 왜 이렇게 으스스 하냐? 어? 야! 형중아! 어디가! 야! 인마! 이새끼야. 핸드폰은 가져가야지! 이새끼 왜 갑자기 저렇게 뛰쳐나가?"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전 형중이랑 다르게 가족이 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