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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민연금이 난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기다.
국민연금의 8가지의 비밀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급속하게 퍼지면서 잠재되어 있던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또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타고 안티 운동으로 조직화되고 있으며 국민연금 폐지 주장으로 번지고 있으며 급기야는 촛불시위를 제안하는 글까지 돌고 있다.
심지어는 본지에도 국민연금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글이 실렸다. 원래 국민연금 민영화는 공공부분의 최소화와 시장의 확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할 법한 주장이다. 솔직히 말해 신자유주의자들 중에서조차 전면 민영화를 주장하는 넘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민영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2008년에야 처음 본격적인 국민연금 수급자가 나오고 아직까지는 돈을 내는 사람만 있지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국민연금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이를 노리는 민간 시장세력이 합세할 경우, 국민연금 제도 자체의 붕괴로 발전할 위험이 실존한다. 여기에 이번 국민연금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본 우원, 국민연금 폐지는 신자유주의자들이나 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단순하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단,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폐지운동으로 까지 확대되는 상황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고나 주장을 해도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 보자는 거다. 그런 다음 지금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푸는 방법이 과연 폐지가 맞는 방향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이어야 하는 건지 정말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뽕빨 스피릿의 정신으로 차근차근 디벼보자.
국민연금은 사회보험? 그게 뭔데?
사회보험제도는 국민들이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소득 중단 사태 즉, 사고, 질병, 실업, 노령 등을 사회적으로 연대해서 위험을 나누어 감당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가장이 질병이 걸려서 돈도 못 벌고, 치료도 못 받을 경우 한 순간에 가난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건 시간문제이고, 이런 위험은 돈을 무지하게 쌓아놓은 재벌이 아니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돈을 벌 때 일정 금액을 납부하고 그 중 질병이 발생하는 사람에게 그 돈을 주어 그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책임져 주자는 시스템이다. 근데, 그걸 개인적으로 자동차 보험을 드는 것처럼 알아서 하게 해주지 왜 국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난리를 치는가.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보험은 전혀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을 생각해보자. 사고가 나면 당근 보험료가 올라간다. 그리고 애초부터 나이 어리면 또 더 비싸고, 다른 가족까지 포함 할라면 그만큼 또 사고 위험이 올라가니 또 비싸지고, 반면에 무사고 운전 오래하거나 군대에서 운전병을 했다는 둥 좀 사고가 덜 날 것 같으면 보험료가 싸진다. 당연히 기업의 입장에서는 돈 나갈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 돈을 더 받고, 돈 나가게 한 사람한테 돈 더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야 보험사가 돈도 벌 수 있다. 말하자면 위험이 높아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위험이 낮아 도움이 덜 필요한 사람에게는 덜 받는 게 사적 보험의 기본 원리이다.
만약 의료보험을 자동차 보험처럼 시장에 맡긴다면? 원래 없는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더 많다. 그러니까 돈 더 받는다. 병 걸리면 안그래도 돈 더 나가고 더 살기 어려워진다. 근데 보험료는 더 올라간다. 형편 좋아서 평소에 좋은 것도 많이 먹고 잘 사는 사람들, 상대적으로 병 잘 안 걸린다. 그럼 보험료 더 싸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돈 적게 내면서 혜택은 더 받을 수 있고, 잘 못 먹고 잘 못 사는 사람은 돈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내면서 필요한 보호를 충분히 받을 수가 없다. 그게 사적보험의 기본논리니까. 산재보험도 마찬가지로 3D 업종이 언제나 사고날 확률이 높아 내는 돈은 많고 혜택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돈도 많이 받는 사무직 노동자는 돈도 적게 내고 혜택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은? 아마 기업들이 고용보험을 운영했으면 IMF 사태 때 다 부도 났을 것이다. 일시적인 경기 변동에도 실업이 대폭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국민연금은? 사람에 따라서는 교통사고도 안 나고 암도 안 걸려야 보험회사가 돈을 버는데, 그게 사적보험의 기본적인 운영논리인데, 국민연금의 경우 사람은 누구나 늙고 평균수명까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사기업으로선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러면 그럼 개인연금 상품은 뭐냐? 요건 그 다음 질문에서 얘기해보자.
그럼 왜 이렇게 못 받는 조건이 많은 건데?
작금의 사태의 시발이 되었던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에 나와 있는 각종 수급권 제한 규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질 생각은 없다. 기실 그걸 어떻게 하는가는 그 사회의 합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유념해야 할 부분은 국민연금이 사회보험인 이상 수급권 제한 자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민연금과 사적보험인 개인연금 상품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연금은 국민연금을 대체하기는커녕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뭔말이냐? 이건 좀 중요한 얘기니 본 우원, 숫자를 혐오하긴 하지만 실례를 대입해보자.
일단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A씨가 월 200만원 번다고 가정할 때 국민연금 월 납부금액은 임금의 9% 즉 18만원 되겠다. 그럼 A씨가 30년 국민연금을 가입했다고 했을 때 60세 이상이 되어서 받는 금액은? 여기에 복잡한 계산식들이 있으나 임금대체율 대략 40%를 적용 시켰을 때 80만원이 되겠다. A씨가 한국 평균수명인 75세정도 까지 산다고 했을 때 A씨가 낸 돈과 받는 돈을 비교해보자.
낸 돈: 18만원 * 360개월(30년) = 6천4백8십만원
받는 돈: 80만원 * 180개월(15년) = 1억4천4백만원
감이 오냐?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낸 돈 보다 받는 돈이 두 배가 넘는다. 이건 개인연금이 제 아무리 운영을 잘해 고수익을 올린다 해도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뿐인가? 직장 가입자인 A씨가 실제 내는 것은 그 절반인 4.5% 즉 9만원이다. 나머지는 회사에서 대신 내준다. 개인연금 가입했다고 회사에서 일부 보험료 내주는 거 봤는가? 이건 국민연금이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직장과 지역이 다르다. 여기에도 여러가지 논란이 있으나 이것 저것 한 번에 다 다루면 논점이 흐려지므로 이번 기사에선 이 부분은 건너뛰자).
내는 돈은 더 올리고 받는 돈은 줄인다는 데 지금 무슨 소리하는거냐, 너 알바지 새꺄.. 라고 의심하는 소리 본 우원에게 다 들린다. 다 얘기해 줄 테니 일단 진정하고 있으시라. 일단 여기서 확실하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납부금액과 지급금액이 조금 조절 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금융상품과도 비교대상이 안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연금 못 받는거 아니냐는 걱정도 붙들어 매시라.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은 지급된다. 연금 지급을 중단할 정도로 간뎅이 부은 정부는 세상에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된다면 그 피해 범위가 워낙 크고 방대해서 국가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윗대가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국민연금도 좋긴 하겠지만 개인연금을 보니까 거기도 많이 주긴 하던데? 그렇다. 지금 보기엔 많이 주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연금은 미안하지만 임금대체율과 같이 물가 변동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낸 만큼 줄 수 있는 절대액만을 제시한다 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가입 후 보통 20년 후에나 연금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지금 짜장면 값과 20년 전의 짜장면 값을 비교해 봐라 그때 값으로 짜장면 반 그릇이나 사먹을 수 있겠나.
그럼 개인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끌어올릴 순 없을까? 없다. 그러다간 보험사 가랭이 찢어진다. 생각해보시라. 세상에 어떤 보험사가 국민연금 수준으로 개인연금을 운영해서 수익을 얻겠나. 게다가 개인연금은 국민연금에는 필요없는 비용인 각종 마케팅, 모집 비용과 또 기업으로서 남겨야 할 수익 부분도 얻어내야 한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일단 개인연금으로 국민연금을 대체하자는 주장일랑은 잊어버리시라.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럼 국민연금은 왜 이렇게 내는 돈에 비해서 많이 주며, 또 그 재원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거냐는 질문이 나온다. 뒤의 질문은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니 기금 고갈문제와 더불어서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앞의 질문에 대해서 일단 답해보자. 앞에서 말한대로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다. 즉, 노령에 따른 소득 중단 사태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위험을 분산시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란 말이다. 따라서 부담의 수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급의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가 노후의 보장에 적절한 수준인가' 요 두 가지 질문이 서로 비교 분석되어 결정되는 것이 기본 원리다. 그 결과, 물론 어느 정도가 적당한 부담과 지급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담하게 하고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급을 하게 되는 것이 기본 원리되겠다.
즉, 소비자들이 내는 보험료를 운영해 얻는 수익에서, 보험회사의 이익과 마케팅 비용과 운영 경비 등을 다 제외한 후, 그것이 물가인상으로 인해 노후를 보장할 수준이 되던 말던, 계약조건에 따라 약속한 금액의 돈만 주면 땡인 개인연금과 근본적으로 원리가 다르단 말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국민연금은 내는 돈에 비해 받는 돈이 훨씬 많을 수 있는 것이며, 그 대신 필요에 따라 준다는 점에서 필요가 발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져야 하기에 수급권 제한 규정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부가 맞벌이 해서 국민연금에 가입했는데 한 사람이 죽으면 나머지 한 사람은 두 가지 중 자신에게 유리한 연금 하나만 받을 수 있다는 수급권 제한 규정을 볼 때, 사적보험인 개인연금의 원리로 이해하자면 씨바...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이 낸 돈은 도대체 어디로 갔어 하고 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보험의 논리로 이해하면 한 사람이 죽었다고 나머지 한 사람의 필요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연금만 선택해서 받는다는 것은 대체로 무리가 없는 규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수급권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정리 하자면,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으로서 사적보험인 개인연금과 달리 노후에 따른 소득중단 위험의 사회적 위험분산 효과를 위해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지급하기 때문에 통상 내는 돈 보다 받는 돈이 훨씬 많아진다. 대신에 필요에 따라 주는 만큼 그 필요를 따져 가리기 위해 여러 수급권 제한규정이 존재하게 된다. 물론 이 규정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의가 가능하고 분명 개혁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수급권 제한 자체를 없애버리자 하는 것은 결국 그만큼 보험료의 인상을 불러오거나 정작 필요한 사람이 받는 지급 수준을 낮추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됐다면 수급권 제한 규정 때문에 받았던 열이 좀 진정이 됐을 줄로 믿는다. 그렇다고 지금의 국민적 분노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하는 것처럼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분노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시 얘기하겠다.
그럼 국민연금은 왜 다 강제로 가입하게 하는 거야?
그럼 왜 강제로 가입하게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이 팽배한데, 답은 그렇게 해야만 사회보험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자유롭게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게 했다 치자. 돈이 많아 자기 나름대로 충분히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굳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필요가 있나. 그럼 개인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는 없고 사회적 분담이 불가피한 사람만 국민연금에 가입한다면 그 수준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고, 개인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담한다는 목적은 달성이 불가능 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강제로 가입시키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노후 걱정은 시간낭비일 만큼 돈이 튀는 사람이 아니면 강제가입제도 자체는 당신에게 유리하지 결코 불리한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에 보면, 이 부분에서 대해 재분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불리하지 않다는 건, 재분배 얘기를 떼어놓고도 그렇다는 얘기다. 즉, 돈이 튀어서 노후가 전혀 걱정이 안되는 놈들까지 연금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는 사람들의 위험을 강제로 분담시키는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 때문이다. 그리고 재분배 부분은 끝에 얘기하도록 하겠다.
지금 국민연금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그럼 돈 튀는 사람들이란 말이냐, 먹고 살기 힘들고 기댈 데 없는 서민들이다.. 이렇게 말할 사람 있는 것 안다. 물론 위 논리는 경제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제인, '개인이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할 경우'를 전제로 삼았을 때 얘기다. 이 전제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데 그 중 하나가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이다. 그런데 지금 요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첫째, 정부는 말해봐야 사람들이 못 믿으니 그렇다 쳐도 언론이 정작 연금으로 국민들이 손해보는지 이익을 보는지 정확히 얘기해 준 적이 없다. 이건 사회적 공기로서 임무 태만 되겠다. 둘째, 아직까진 돈 나가는 사람들만 있지 실제 본격적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이 없다. 즉, 국민연금이 어떤 이익을 얼만큼 돌려주는 지를 실제로 주변에서 보거나 들을 기회가 아직 전혀 없다는 얘기다. 지금 국민의 분노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합리적 판단'에 근거 했다기 보다는 '감정적 반감'에 기초하고 있다는 거다.
본 우원,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그렇다고 지금의 국민적 분노의 의미를 무조건 깎아 내리자는 거 아니다. 분명 그 분노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세상 일이 오로지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유일한 판단 기준은 아니다. 비록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국민적 분노가 당면 현실인 만큼 그 배경과 의미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야 합당한 판단이 가능한 것 아니겠나. 요 얘기 이어서 나가겠다.
근데 나는 왜 열 받고 있는 거지?
자, 그럼 본격적으로 지금 사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연금 문제에 분노하고 있는가. 수급권 제한에 대한 문제는 사회보험의 원리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이것이 분노를 촉발 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지언정 근본 원인은 아니다. 그럼 도대체 원인은 어디 있는가. 원인인 즉슨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를 덜컥 도입한 데에 원죄가 있다. 국민연금의 도입배경으로 돌아가 보자.
국민연금법이 처음으로 국회에 상정되었던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바로 빡통 아래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경제의 구조변화가 일어나던 때 였다. 그래서 시설투자를 위한 상당한 수준의 내자자본이 필요했다. 요걸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던 인간들이 머리를 탁 친 게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국민연금이었다. 세금을 올려 조달하자니 그 수준이 상당해 저항이 있을 수 있으니 나중에 돈 돌려준다고 하고 연금을 도입해서 그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뒤이은 오일쇼크로 무기한 연기된다.
그러다가 87년 대선 때까지 세월은 흘러간다. 이때는 베이비붐 세대가 산업전선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시기, 즉, 노동인구 규모가 피크를 앞둔 시기였다. 더 이상 국민연금을 미루었다가는 이후 노동인구는 계속 줄어들게 되므로 가능한 수입은 계속 줄어 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국민연금을 결국 제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때는 여전히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시절, 무슨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기나 했냐. 따라서 제도를 도입하기는 하되, 국민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제도인 만큼 저항을 줄이기 위해 파격적으로 월 납부율을 3%에 가입기간 30년을 전제했을 때 연금 지급수준은 월급대체율 70%! 솔직히 좀 말이 안되는 파격적인, 뒤집어 말하면 아주 기형적인 조건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씨바... 말이 되냐 3% 넣고 나중엔 70% 받고... 당근 현실적으로 문제가 된다. 아무리 사회보험이라지만 부담과 지급 간에 차이가 너무 큰 것이다. 그래서 자꾸 부담은 올리고 지급은 낮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가만 생각해보자. 아무리 나를 좋게 해준다고 해도 적어도 내 허락은 제대로 받았어야지. 내 허락과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고 돈을 빼가는 데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돈 빼가는 놈, 국가가 도대체 믿을 수 없었던 놈이었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여기서 국민연금의 비극이 잉태된다. 즉, 매월 십만원 돈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빼가면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생략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것 자체도 열이 받아 있는데 이제 그걸 더 올리고 주는 돈은 되려 줄인다고 자꾸 그런다. 열이 점점 더 받는다. 그렇게 계속 열이 올라가고 있는데 이래도 못 받고 저래도 못 받는다고 입맛에 맞게 잘 설명해 주는 글을 접한다. 이 시점에서 쌓인 분노가 연쇄 폭발하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럼 사회적 합의도 없이 국민연금이 도입되었으니 사람들도 열 받아 하겠다 그냥 폐지해버리자? 지금까지 본 기사를 곰곰이 잘 읽어보았다면 요게 답은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당신이 나 혼자 노후 알아서 잘 준비하면 됐지 사회보험 같은 거 필요없어.. 하고 주장한다면 본 우원 거기 대해서는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정부의 한심한 작태에 열 받아서 스스로에게 이런 생각과 질문을 - 나는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로 겪게 되는 문제에 대해 다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쓸데없다 - 던져보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제대로 된 노령화 대책 하나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꼴이다. 지금 정작 필요한 것은 국민연금을 엎어버리자는 주장이 아니라,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자는 주장이다.
즉, 지금 이 사태를 두고 '조직적이니.. 선동하니.. 뭐니.. 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조차 덮어버리기 급급한 국민연금공단과 정부도 솔직히 까놓을 것은 까놓고, 그동안 국민연금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 시민단체들도 다 까놓고, 불만을 가진 국민들도 그 논의에 참여하여 무엇이 정말 우리에게 합당할 것인가를 다시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럼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논의하고 합의하라는 것인가. 뒤에서 다루자고 미뤄 두었던 질문 몇 가지을 풀기 시작하자. 그렇게 국민연금이 받는 돈에 비해서 주는 돈이 많다면, 그 돈은 그럼 다 어디서 나오냐. 그래서 부담을 높이고 지급은 줄인다는 거 아니냐. 결국 기금이 고갈되는 것 아니냐...
일단 부담을 높이고 지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이 되는 것은 워낙 처음부터 저부담 고지급으로, 기형적으로 설계되었었기 때문에 그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 방향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정작 문제는 그 종착역이다.
그 종착 역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연금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일정 적립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부담을 올리고 지급을 계속 깍아나가는 것이다. 그럼 기금이 고갈되지 않는다. 대신에 부담은 엄청 올라가고 지급은 또 엄청 깍인다. 결과적으로 앞서 얘기 했던 어떤 금융상품도 따라잡을 수 없는 국민연금의 엄청난 수익률은 더 이상 유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여러 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사적 개인연금보다야 나은 수준은 유지 하겠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연금기금 고갈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연금 부담과 지급 수준을 적당히 조정한 후 유지하는 것이다. 연금에는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이 있다. 적립방식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돈을 쌓아놓았다가 나중에 늙으면 주는 방식이고, 부과방식은 그 동시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돈을 걷어서 그 동시대에 늙은 사람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신 그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때 돈을 거두어서 늙은 이들에게 주었던 것과 같이 자신이 늙어서 또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부양'을 받게 된다.
즉, 연금을 시작할 때야 당장 내는 사람만 있고 받는 사람이 없어 '적립방식'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기금이 고갈되면 그 시점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연금 부담과 지급 수준을 거의 유지할 수 있고 단지 필요한 것은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때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조정만 필요로 한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연금이 도입될 때는, 기금 고갈을 전제로 하고 도입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연금공단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니 기금 고갈은 안될 거란다. 이건 바로 첫번째 방식으로 조정을 해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종착점을 선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바로 요 부분이 새로운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지점 I 이 되겠다.
두번째, 소득 재분배. 국민연금이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다고들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득재분배 기능이 부분적으로 있긴 있다.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수입이 높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낸 돈에 비해 받는 돈의 비율이 낮다. 하지만 평균 임금보다 낮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내는 돈에 비해 받는 돈의 비율이 높다. 이점에서 소득재분배 효과가 부분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액에서 많이 낸 사람은, 적게 낸 사람보다 많이 받는다. 그래서 돈 많은 놈 돈 빼서 없는 넘한테 준다는 개념의 소득재분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소득재분배의 한계는 지금의 국민연금 설계가 잘못되어서는 아니다. 원래 사회보험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그렇다. 그럼 소득재분배 기능을 잘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사회보험이 아니라 세금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되겠다.
즉, 부담은 소득에 따라 일괄적으로 세금으로 거두어버리고, 나중에 연금은 낸 세금에 비례해서가 아니라 노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금액으로 동일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면 완전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일어난다. 이것은 복지제도 중 가장 평등지향적인 형태를 지니는 것이다(이게 기초연금제도라 불리는 것으로 요것이 도입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딴지 전 기사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1인 1연금 가입제도 같은 것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어마어마한 세금이 필요로 하다(기본적으로 약 15조의 세금이 더 걷혀야 한다). 그렇기에 이것 역시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요것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 II 가 되겠다.
자, 그럼 정리하자. 설명은 복잡하게 되었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결국 가져야 할 노후보장을 위한 복지제도는 어떤 형태가 되어야겠냐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완전히 새롭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수입이 중단된 자영업자에 대한 가압류 문제, 보험료 납입 업무의 국세청 일원화 등 세세한 쟁점까지 논의가 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냥 시원스럽게 대안 하나 내놓지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하겠지만 이 문제가 원래 좀 그렇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세계적으로 제 아무리 유명한 사회정책 학자나 전문가라 하더라도 연금문제만큼은 요거가 정답이다 할 수 없을 만큼 문제가 간단치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뭐가 젤 좋은 거다.. 가 아니라 그 사회가 합의하는 수준이 뭐냐는 것이다. 물론 이 합의에는 그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가 반영된다.
다시 강조하건데 열 받는데 국민연금 폐지하자.. 이거 답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이미 노령화 사회로 접어 들었다. 이 문제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국민연금을 폐지하면 이에 대한 사회적 대비책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넓게 쓰이고 있는 방법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결국 국민연금 폐지는 국민 대부분에게 손해를 가져오지, 이익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폐지에 따른 이익은 국민연금 시장을 노려온 사적보험을 다루는 기업에게나 돌아간다. 사적 보험은 결코 사회적 노령화의 포괄적 일반 대책이 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언론이나 정부나 시민단체나 나설 사람은 모두 나서서, 국민연금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진단과 어떤 대안이 좋을지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주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다 같이 끌어 가는 것이다. 유감인 것은 정부는 그렇다 치고, 언론 시민단체가 모두 이 사태에 대해 손 놓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만과 분노가 비등한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기 힘들다는 건 안다.
이 사태에 편승해 되려 사회보험 근간을 흔드는 개혁 주장이나 내깔아놓는 단체들말고 좀 이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논의를 담보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이 좀 나서란 말이다.
좃선이야 그렇다쳐도 다른 언론은 다 어디갔냐. 왜 이 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 하나 내놓는 기사를 찾기가 어렵단 말이냐. 시사 프로그램은 다 뭐하고 있냐. 정신차리자. 이 사태에는 우리의 미래의 모양새가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두지만 본 우원 공단직원도 알바도 아니다. 분노가 솟구친다고 적과 아군도 구분 못하는데 그럼 다 죽는다. 본 우원 당연히 국민 중 한 사람이고, 이 사태에 대해 분노한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분노하자. 이 문제처럼 우리들 미래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관되어 있는 거대한 문제가 없단 말이다.
긴 글 읽느라고 고생했다.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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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사람도 많겠지만 요즘 연금에 관해 말들이 많은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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