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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흔히들 하늘과 땅 차이에 비견되고는 한다. 업무의 차이도 별로 없는데 실제 급여수준이나 복지혜택에서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내활동에서도 확연히 눈에 보이는 차별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까닭으로 비정규직의 설움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당하기도 하고, 언제나 고용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속에서 온갖 차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명절선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규직은 과일, 곶감, 굴비, 홍삼 엑기스 세트 등을 명절선물로 받는데 반해 비정규직은 보통 식용류 세트, 치약 비누 세트 등을 지급 받는다고 한다. 또한 정규직은 선물을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데 비해 비정규직은 선택의 여지마저 없는 실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명절선물에서조차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약 839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약 44.6%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가 산출하는 통계와 실제 노동계에서 산출하는 통계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가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 중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들은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분류하는가 하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하는 등 부정확한 통계를 기준으로 수치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실제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 고용불안과 저임금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통계청의 2015년 3월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47만원으로 정규직의 299만원에 비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보험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보험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의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이 84~99%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3~39%에 그치고 있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보험지원에서조차 제대로 된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경우는 어떨까?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의 경우 80년 대 중반만 해도 4.5%에 불과하던 비정규직 비율이 2009년 13.5%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고, 독일의 경우 역시 2009~2010년 신규 일자리의 75%가량이 비정규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 비정규직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모습은 유럽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사회보험, 상여금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럴까?
이것은 유럽의 경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사회 전반에 걸쳐 명확하게 정착되어 있고, 이를 법으로 강력하게 제도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에 임금과 사회보험지원에 차별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부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비정규직이 느끼고 있는 비애와 설움은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와 대기업 때문 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명절선물조차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직의 기막힌 현실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명절선물을 받았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와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패배자'로 규정하며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규직은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이고, 비정규직은 별다른 노력없이 취업한 사람들이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비정규직인 것도 서러운데 이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마저 매몰차기 그지없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있다. 개천에서 용이 된 그들의 이야기는 성공을 꿈꾸고 신분 상승과 계층 상승을 꿈꾸었던 소시민들에게는 영웅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영웅담은 판타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사회 명망가 집안의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각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이제는 부모의 배경에 따라, 집안의 환경에 따라 직업의 질도 달라지는 시대다. 자본주의가 극단에 이른 신자유주의의 체제 속에서 그들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하고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청년실업이 판을 치고 취업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88만원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오포세대의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희망을 품고 꿈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비정규직 가장의 어깨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를 과연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노동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노동의 본질은 사라지고 노동자가 한낯 부품으로 인식되는 노동구조를 가진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희망의 씨앗을 볼 수 있을까?
명절선물조차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직의 현실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 양극화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고, 이런 가운데 사회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은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문제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개편을 통해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양산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편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청년을 볼모삼아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 비정규직 확대 등을 통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노동개악'에 불과할 뿐이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악한 비정규직의 현실이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이 저들의 처절한 외침과 절규를 외면한다면, 다음에는 당신의 차례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처참한 현실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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