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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참고로 전 변태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아마도 대외적으로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수많은 조건들이 우연이란 양념으로 비벼져 발생한 슬픈 젊은 날의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다 불쾌감이 드실 수도 있으니 먼저 양해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그 때 미처 사과치 못했던 그녀들에게 심심한 사죄의 뜻을 전하고자 용기를 내어 키보드를 다닥거려 봅니다.
때는 2010년의 어느 날,
저는 당시 성동구 어느 한 대학의 4학년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참이슬(진로)의 냉담한 현실이 저의 목 뒤를 섬뜩섬뜩 어루만지던
온몸을 근심과 걱정으로 도배하던 그런 나이었죠.
저는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만,
막상 학교를 들어가보니 경영학과는 저의 취향이 아니였던지라
마지못해 전공 과목은 졸업에 필요한 학점만 딱 맞추고
주로 교양과목으로 시간표를 가득 메꾸며 뿌듯해 하는 그런 철없는 20대였습니다.
아무튼, 그 날은
자연과학대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물리학의 이해였던가요? 분명 수강 신청 할때만 하더라도
듣는 순간 아인슈타인이 내게 강림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그제서야 저의 지적능력에 경탄을 금치 못할 뿐이여서
잠을 자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하던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어쨌든
경영대에서의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는 전공과목을 들으며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심정으로 공책에 낙서나 하던 저는,
수업이 끝나자 서둘러 학교 언덕의 정상에 있는 자연과학대로 등산을 해야만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학교를 다닌 대부분의 시간동안 온통 등산을 해야만 했던지라
고맙게도 저의 심패력과 체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고맙긴. 왜 그딴데다가 학교를 지어서 매일 숨을 헐떡거리고! 응?
그래서 제가 힘들어 하는 허파 속 꽈리를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게다가 경영관은 정문에서 언덕을 통째로 넘어거야 하는 탓에
저는 학교 입할할때 언덕을 넘다드는 철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들은 바가 없소 이렇게 합의 없는 일방적 처사는 반댈세. 터널을 뚫어주시오. 외쳐댔지만, 외침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아 언제나 숨이차게 발을 놀려야 했죠.
자꾸 이야기가 산으로 흐르지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힘들게 정상을 정복한 저는, 자연과학대 앞 공터에서 맑고 깨끗한 고산지 공기를 마시며 신나게 족구놀이를 하는 아마도 자연대생과 인문대생의 모습을 보며 교수님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교실속의 성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대단위 수업인지라 강의실이 큰 편이었어서 몇몇 자리는 그야말로 딴짓거리를 하기엔 최적의 요충지였죠.
다행히 일찍 서두른 탓에 목표한 목표를 달성한 저는 흐뭇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눈치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요새 트렌드,
점심에 먹었던 것이 뭔가 잘못된 것인지 대장이 움찔거리며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었죠.
하지만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엔 무척이나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라
저는 당황하지 않고 이까짓 것쯤 단숨에 해결하리라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자연과학대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죠.
그 전 학기때에는 이 건물의 2층에서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는 분명히 남자화장실이 왼쪽, 여자 화장실이 오른쪽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1층도 왼쪽 남자, 오른쪽 여자라는 생각을 하며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왼쪽 화장실로 들어갔죠.
마침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알아차려야 했건만
변기가 가까워진 저는 점차 다급해진 나머지
위화감으로 가득찬 공간의 부조리성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채 빈 칸막이 안으로 후다닥 빨려들어갔고
시원하게 저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출 후의 아득함을 만끽하며 복부의 힘을 주느라 잠시 멈추었던 숨을 몰아 쉬고 있는데
들리는 소리
또각또각
그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 저의 귀에 들려서는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또각또각이라니.
남자화장실에 왠 또각또각이란 말입니까!
남자의 굽은 절대로 뚜벅뚜벅이지 또각또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저에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야구동영상에서나 보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현실에 강림했다는걸 인지한 순간
저는 앉은자세 그대로 뱉어낸 똥이 다시 항문안으로 회귀하는 듯, 온몸의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이 뻣뻣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아까 들어올때 남자 화장실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소변기가 없었던 것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이윽코 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점차 절망과 좌절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아아악!!!
머리속에 소음 측정기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70데시벨에 가까울 듯한 비명이 마음속에서 경보를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입술이 말라붙고 손발이 떨려오는 감각에 저는 그저 어쩔줄을 몰라하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또각거리는 발걸음은 이말의 주저함도 없이, 저의 식은땀이 공중으로 비산하는지는 알지 못한채 옆칸으로 향했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뭔가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마지막엔 결국 제가 들어서는 안되는 소리가... 소리가...
변태가 아니라면서 어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신경이 곤두서니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져서 개미가 걸어가는 소리마져 두두두두하고 들릴 정도였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탈출을 해야해,
탈출을.
저는 정말 숨이 막히는 기분이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안에 들어가 있으니 후딱 튀어나가면 아무도 모를거야. 라는 생각으로 걸쇠의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저를 용서치 않았습니다.
전생에 분명 제가 큰 죄를 지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막 문을 잡고 뛰쳐나가려던 그 순간,
이번에는 정말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여자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사람도 아니고 여자사람'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아, 한명이 아닌 것이었습니다. 마침 어디선가 수업이 끝났거나 휴식시간이 된 것인지
처음에 들렸던 목소리를 필두로 대략 아득해지는 숫자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메우는 듯 했습니다.
왁자지껄한 여자들의 목소리,
분명 여자사람들은 남자와는 다르게 화장실에 가면 변기의 수가 한정적이라 줄을 서서 기다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제가 숨죽이며 다리를 후들거리던 그 문 앞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성분들이 줄을 서 계셨겠죠.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친저는 저의 모든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해결방안을 찾았습니다.
한편으론 여기서 계속 있다가 여자사람 다 나간 다음에 나가면 되겠구나 싶다가도,
제가 나가지 않은 한 줄은 쉽사리 사리지지 않을테고
그녀들은 장시간 칸막이를 차지하고 있는 몹쓸 여자, 애석하게도 남자인, 저에게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문을 두드릴 것이고, 하지만 난 대답할 수가 없고, 아무도 없는데 화장실에 문이 잠긴걸로 착각한 그녀들은 경비실로 달려갈테고,
경비아저씨가 나타나 문을 열면 나는 그야말로
현!
장!
검!
거!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또한 고의가 아니였음을 증명 할 증거 또한 없었던지라 저는 얄짤없이 난생처음 경찰서의 철장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치소로 송치되고 재판에 회부되고, 변호사 조차도 외면한채 이 파렴치한 범죄자를 어서 감옥에 가둬라. 판사님의 말씀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외쳐본들 난 어느새 닭장차에 타있고, 구치소를 뛰어넘은 교도소에 이감되고, 어서와 이런덴 처음이지? 감방 동료들은 샤워중에 비누를 바닥에 떨어트릴꺼고.. 나는 결국...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저는 게이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게이가 되는 것보다는 그냥 쪽팔리는게 낫지.
마침 화장실에는 CCTV가 없을 것이었습니다.
내가 뛰쳐나간들, 이곳에 시커먼 남정네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그녀들이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을리도 없고
그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치워야해.
문을 열고, 쏟아지는 그녀들의 눈빛들은 단호하게 거절한 채
최대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눈 앞을 보이게,
뛰다가 넘어지면 정말 대책 없으니까.
그럼 분명 넘어진 나를 그녀들은 용납하지 않을테지.
날카로운 힐의 구둣발로 짖이겨 놓을지도 몰라. 내가 변태를 잡았도다. 하며 경찰에 신고하고 나는 감옥에가고 그렇게 게이가...
안돼!
저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단력, 그리고
얼굴을 가린채 혹시나 미끄러울지 모를 화장실의 타일 바닥을 헤져나갈 수 있는 운동능력 이었습니다.
그렇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에게 닥친 이 시련을 저주하면서 저는
마침내
문을
열었습니다.
아뿔사 맨 앞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와 정답게
인사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인채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저는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갔고
여자들의 으악하는 비명소리, 마치 스믈거리는 바퀴벌레를 보았을때 내가 질러댔던 비명과 일맥상통하는 소리가 저의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정말,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그런 속도로 달릴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마도
빛의 속도로,
저에게 순간 우사인 볼트라도 강림한 것인지 귀를 따라 바람이 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혹시나
여자분들이 달여와 이놈! 하며 응징을 할지 몰라 저는 힐끝 뒤를 바라보았으나
다행히 쫓아 나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그제서야 터저나왔습니다. 자리에 앉자
우사인 볼트의 성능을 발휘한 저의 심장이 쿵쿵 뛰어대는데, 어깻죽지를 타고 울림이 귓방망이까지 솓구쳐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이 시작되었고
대단위 강의실의 이점이 이런 곳에서도 발휘될 줄은 몰랐지만
저는 대중속으로 LoL의 샤코마냥 사라져갔습니다.
그녀들이 오라클이 있지 않은 한 저를 찾아내진 못하겠지요.
그렇게
결국 저는 살아남았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에 경찰이 와있는 건 아닌지 떨리긴 했지만
경찰은 보이질 않았으며,
밖으로 나와보니 아직도 족구를 하고 있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아! 살았구나.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고의가 아니었으니 그녀들도 용서해 주겠지.
나에겐 녹음기나 카메라 그런거 따윈 없었는걸,
그저 순수하게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 놓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긴장이 풀리자 헛헛한 웃음이 터저나왔습니다.
난 변태가 아닌데도 그녀들의 기억속에 저는 미친 변태새끼로 기억되겠죠.
하지만
고의였던 실수였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이 자리를 빌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제가 여자라도 갑자기 화장실에서 뿔쑥 튀어 나오는 남자는 용서가 안되는 것이지요.
감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여자가 갑자기 남자 화장실에 들이닥친다면 그 민망함과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테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2010년 성동구 소재 자연과학대 1층 여자 화장실에서 몹쓸짓을 당했던
여자사람분들...
이제는 화장실 들어갈때는 항상 남자, 여자 확인하고 들어가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그래도 저와는 다르게 정말 변태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시고, 만사 평안 하시기를...
그럼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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