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후 당시 미군 전차병들의 증언에 따라 그려진 삽화 대충봐도 이미 3명은 몇분후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애당초 너무나도 빈약한 장갑과 빈약한 관통력의 포을 가진 주력전차 치하가
미군의 셔면 탱크를 상대할수 없어 나온 고육지책이지만 방법이 너무나도 괴랄스럽다
삽화에는 급조 폭발물을 가진 병사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그건 형편이 나은 편이고
실제로는 일본도나 착검한 아리사카 소총을 들고 돌격 하여 수류탄과 함께 자폭하는게 전부였다
문제는 이것을 기본교리로 삼아 신병훈련소부터 교육했다 역시나 전사자는 숫자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적국의 전차가 강력하다면 우리도 그에 걸맞거나 능가하는 전차를 배치하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상식을 져버린 군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3위 야기 우다 안테나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동내마다 하나씩 있던 그 방송 수신용 안테나다
하지만 이게 태평양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명 우다 라는 안테나로 일본의 우다 신타로(宇田新太郎:うだしんたろう,1896~1976)가 1926년에 개발했다
이름은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야기의 이름을 함께 넣었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즉시 그 놀라운 성능을 알아보고 육상기지 함선 항공기 까지 가리지 않고 사용 했다
그리고 우리 일본군은 역시 기대와 같이 도입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이유는 적을 앞에두고 전파를 쏘는 것은 적에게 위치를 알리는 것이다....그리고 야예 레이더를 안쓴다
아마 무전기는 전파대신 텔레파시를 쓴다고 생각 한것 같다
1943년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영국군 문서를 뒤지던중 YAGI 라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영국군 포로를 조지는데
그 포로가 하는 말이 "야 이 병신 시키들아 일본인이라며 야기라는 사람을 몰라?"
그리고 이사건 이후 레이더 개발에 착수한다 역시 우다레이더는 병맛들 답게 안쓴다
하지만 이미 일본 함대를 우다안테나로 빤히 내려다보던 미해군에게 전세는 기울었다
그리고 야기와 우다는 패전후에도 역적취급을 받는다
2위 육군 소속 전함
전세계 어디서도 찾을수 없는 육군소속 수송 잠수함 마루유 인천 조선기계제작소에서 건조되었다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다른나라군대다 20년대 서로가 서로 장성을 암살했고 36년에 도쿄에서 총격전까지 할뻔 했다
둘은 제대로된 통합지휘체계도 없었고 별개의 지휘체계를 가졌다 사실상 별개의 전쟁을 수행한샘 말그대로 콩가루집안....
믿기 힘들겠지만 육군은 해군의 진주만 침공사실을 해군에 심어둔 스파이를 통해 알았다
이게 실제로 가능한 시점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로 별도의 수송전단을 꾸렸고 서로 상대의 수송전단을 호위하던 육군 전투기가 격추되거나 해군 수송선이 침몰하면
멍청한 네녀석들 때문에 불필요한 전력손실이 생긴다며 서로를 까기만 바빴다
그래서 생겨난게 이 녀석이다 하지만 애당초 크기가 너무 작아 수송임무가 불가능 했고 느린속도로 잠항가능거리도 너무 짧았다
즉 거의 잠항이 불가능한 잠수함
1위 자살특공대
미군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부르는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기동부대가 괴멸당한 이후
일본군 일선 지휘관들은 알아서 부하들에게 자살공격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1944년 7월 21일, 일본의 군령부는 '대해지 제431호' 에 의거하여 특공작전을 정식으로 채용하였으며
급기야 1944년 10월 5일 군령부는 지시하지는 않겠지만 현장의 자발적 공격은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자살공격을 정식으로 허가한게 이 미친짓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