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가평)의 남이섬은 민웅기씨의 소유이며(주식회사 남이섬 대주주), 그는 친일거두 민족반역자 민영휘의 증손이다. 민영휘는 고종때 평안감사를 하면서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한 탐관오리였으며 한일합병에 협력한 공으로 일제조선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받아 일제강점기하 조선최고의 갑부로 귀족생활한 친일 권력형 부정축재자이다.
또한 민영휘는 바로 휘문학교를 설립했는데, '휘문'이라는 학교 이름은 고종황제가 친히 지어주셨다. 현재에는 민영휘의 직계 자손인 민인기 씨가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형제 민덕기는 풍문학원을 설립, 풍문여고등을 소유하고 있다: 딸 민경현 현 이사장) 그들은 북한강 남이섬과 삼성동 일대 알자배기 땅을 대량 소유하고 있다.
민영휘 자손들은 현재 미국 LA에 대거 살고 있다. 산타모니카, 팰러스버디스 등 부유한 지역에 대 저택과 농장을 소유하며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자손들 대부분 이중국적자들로 일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고 국내에서는 세금 한푼 내지 않는다.
민영휘는 1884년에는 김옥균의 갑신정변을 진압했고, 1894년에는 동학농민항쟁을 진압했다. 임오군란 때 탐관오리로 단죄되어 유배되었다가 국권피탈 후 일본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대표적 식민은행인 천일은행(상업은행 이후 우리은행의 전신)과 휘문학교를 설립하였다.
일제의 토지강탈에 앞장서 수많은 동포들이 토지를 잃고 먹고 살기위해 만주와 연해주로 방랑하게 만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해 고려인이 되었다.
민영휘는 명성황후의 친척으로 명성황후의 비밀회계장부를 관리했었다.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시해를 당한 후 명성황후의 재산이 민영휘의 손으로 굴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민영휘의 손자인 민병도가 한국은행장에서 퇴직한 후 남이섬을 구입해 유원지로 만들었다. 민병도는 직접 일제로부터 재산을 받지는 않았으나 국방헌금을 내는등의 친일 활동을 했다.
민병도의 재산 또한 상당수가 민영휘 일가가 일제로부터 받은 재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남이섬도 친일재산으로 보아 회수하려고 한 적도 있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 민병도가 1970년에 이미 법인을 설립했기 때문에 회수가 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081196)
남이섬의 이름이 '남이섬'인 이유는 그곳에 남이장군의 묘가 있기 때문인데 남이장군의 실제 묘는 경기도 화성에 있다 (이곳은 가짜 허묘) 남이장군의 묘라고 사칭하여 관광객을 끌어 당기는 셈이다.
우리는 오늘도 '겨울연가'의 준상을 상상하며 남이섬에 가서 돈을 쓰고온다. (매년 약 260만명이 만원씩을 입장료로 내면서) 개인소유이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입장료와 바가지 물가를 덮어씌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해에 260만명이 내는 그 대부분의 수입(약260억)이 친일파의 후손에게 가는 꼴이다. '남이'라는 이름을 도용당한 남이장군이 통곡할 노릇이다!
나에게도 한 때 아련한 추억이 있는 이 아름다운 섬에 이런 더러운(?) 사연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아시라고,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몇마디 주접을 떤다.. (민족문제연구소 발췌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