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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6시경, 평점 알바들의 활약으로 9.00점까지 갔었음. 평점 적게 주는 사람들 이유를 보면 '드라마를 왜 아이맥스로 봐 ㅋㅋ' 이라 말한 사람은 평점 4점. '전작에 비해 아쉽다' 가 7점. '7점을 주고 싶으나 평점 인플레가 심하니' 가 1점. 모두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본다. 평점을 낮게 주는 사람들은 '알바' 이거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주는 '메세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리뷰가 여기 있다.
출처 - 네이버 리뷰(lan***님)
★★★★★
다크나이트 라이즈. '희망'은 '절망'을 뚫고 '일어선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나는 단순히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비긴즈. 다크나이트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엔딩'이라는 가치를 두고 생각했다. 놀란도 말했듯이 멋진 이야기에는 멋진 엔딩이 필요하니까. 철학적 대사의 비중이 다크나이트 때보다 훨씬 적어 단순한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할 사람은 어쩌면 전작인 다크나이트보다도 많을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 중점을 둬야하는 것은 그 스케일이나 배우들. 그리고 유명세를 떨쳤던 다크나이트의 후속작이라는 점이 아니다. 바로 배트맨의 패배와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제목에서도 그렸듯, 그리고 영화에서도 항상 강조하듯. 'Rise'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담시의 상징이자, 죄를 뒤집어쓰고 고담시의 악당으로 전락한 배트맨은 이미 시작부터 그 이미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브루스 웨인이 상처를 받은 모습은 그가 새로운 국민들의 희망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을 보여준 것과 동시에, 배트맨이라는 8년 전의 희망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배트맨은 베인이라는 강적에 맞서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그 배트맨이야말로 베인이 말한 '진정한 절망에 동반되는 헛된 희망'이었다. 베인과 맞서는 당시의 배트맨은 고담 시민들의 희망이 아닌 하비 덴트와 경찰들을 살해한 범죄자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그는 모든 경찰들의 추적을 받으며 쫓긴다. 이 단순한 씬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희망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그 때의 배트맨. 아니, 브루스 웨인은 '헛된 희망'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리고 베인의 의미가 바로 절망이다. 베인과 배트맨. 이 두 사람의 대결은 단순히 도시를 지키려는 가면의 영웅과 정신나간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의 싸움이 아닌, 거짓으로 물든 희망의 상징과 압도적인 절망의 상징이 맞부딪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배트맨의 뼈저리고 처참한 패배는 절망이 희망을 압도하는 순간이자, 고담의 수호자였던 배트맨이 패함으로써 베인이 고담을 자신의 절망으로 물들이는 것을 암시한다. 아니, 암시할 것도 없었다. 배트맨이 패배한 그 순간 아마도 스크린을 보던 모든 관객들도 절망이라는 것을 느꼈으리라. 전작 다크나이트의 조커에 대해 말하자면, 쉽게 말해 조커의 행동 원칙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것에 있다. 그가 일으킨 모든 행동들을 잘 보면 알 수 있듯, 시민들이 스스로 자멸하며 물어 뜯기를 원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아이덴티티였다. 그럼 베인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일까? 내가 라스 알굴을 빼먹을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작에서 이어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사실 그것은 비긴즈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라스 알굴의 의지를 이어 받은 이들이 벌이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베인의 아이덴티티는 본인도 말했듯 절망에 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원칙답게 온 사방에 '헛된 희망'의 씨앗을 뿌려놓고 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저항하게 하는 것. 그리고 끝에 완전히 파괴하는 것. 그가 브루스 웨인을 가둔 구덩이 또한 완전히 똑같은 의미다. 그도 말하지 않았나? 빛이 보이기에 사람들은 계속 도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절망케 하는 것이라고. 베인이 왜 그런 복잡한 방법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범죄를 일으키게 만들고 혼란을 가증시키는가는 사실 영화를 그저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라스 알굴의 유지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그의 목적은 범죄자의 말살에 있다. 그리고 라스 알굴도 주장했듯, 범죄가 끊이질 않는 고담 시티는 타락의 전적인 상징이다. 베인은 고담을 한층 더 완벽한 '악'에 물들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싶다.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주고 계속 저항하게 하면서 절망에 빠진 이들부터가 먼저 배신을 한다. 그가 애초부터 이러나 저러나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설정해둔 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싶다. 베인의 목적은 혁명이 아니라 애초에 그 사람들을 타락과 절망으로 몰아넣고 그것을 처단하는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폭탄이 폭발하기까지 남았던 5개월이란 시간동안 사람들을 자신의 처벌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성이 사라지고 법과 규제가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고, 이윽고 절망에 손을 들며 포기하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시민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에 거역하지 않고 숨어 사는 그 행위는. 자기만 안전하면 괜찮다는 이기심에 기반된다는 것을, 고든을 버리고 가족과 몸을 사리겠다고 말한 그 경찰관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목적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서서히 스스로를 배신하고 심판이라는 이름 하에, 그리고 베인이라는 절망 앞에 죄를 끊임없이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인은 헛된 희망을 품고 움직이는 이들을 차례차례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넣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얼음 위를 걷게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죽일거라면 왜 그 얼음 위를 걷게 만드는 것인가. 그리고 왜 사람들로 하여금 추방과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얼음 위를 걷는 이들은 어차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여기에서도 그의 철학인 '헛된 희망'이 수반되는 것이다. 여기서 브루스 웨인을 살펴보자. 베인이 브루스 웨인을 가둔 그 구덩이는 절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베인에게 패배해 그 안에 갇힌 브루스 웨인은 아까도 말했듯 '헛된 희망'의 상징이다. 브루스 웨인은 그 구덩이를 오르려고 몇 번이고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베인에 의해 부러진 뼈를 고치고, 몸을 다시 단련해도 그 절망 속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강한 육체와 민첩함,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은 웨인이라도 그 구덩이를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베인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브루스 웨인은 불가능한 도전을 계속하며 구덩이 위로 보이는 헛된 희망이라는 '빛'을 향해 계속해서 도전한다. 그 우직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행위. 쉽게 말해 구덩이 속에서 보이는 빛이란 정말로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이 그 허황된 빛을 향해 끊임 없이 손을 뻗는 것은 진정한 희망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표현한다. 비긴즈에서도 나왔듯,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더 큰 것.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라스 알굴의 말. 전설. 바로 전설. 브루스 웨인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시작됬던 '배트맨'은 베인이라는 절망 앞에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한계에 부딪혀, 베인이 선사한 극한 속에서 울고 허덕이며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가 지키기로 결심했던 고담 시티가 베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극한을 뛰어넘어 개인의 구원이 아닌, '사명'을 위해 절망을 뜯어헤치고 일어선다. 그 순간부터 배트맨은 더 이상 브루스 웨인이 아닌, 거대한 '희망'으로 태동하는 것이다. 바로 전설이 되는 것. 후반 20분의 액션이 아닌, 모두가 헛된 희망이라 여겼던 그 빛을 끝까지 믿으며 손을 뻗는 바로 그 장면이야 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라고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도와줄 것이리라 했던 그 믿음대로. 절망을 찢어가르고, 베인을 제외하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험한 도약. 즉 '비상(Rise)'을 위해. 그런 그를 향해 죄수들은 '일어서라!'고 끊임없이 소리친다.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진정한 배트맨을 향해. 베인이 절망을 깨닫으며 빠져나온 그 구덩이를, 브루스 웨인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빠져나온다.(물론 나중에 그것이 미란다였음이 알려지지만...) 그것은 베인 그 본인조차도 절망에 굴복했음을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배트맨은 베인조차 이기지 못했던 절망 속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가 포기 했던 헛된 믿음이라는 빛을 향해 끊임 없이 손을 뻗은 끝에, 브루스 웨인은 그 누구도 희망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 빛에 몸을 쐬며 구덩이 속에서 일어선다. 모두가 헛된 희망이라 믿던 그 빛은 '일어나라!'는 외침 속에서 진정한 빛으로 거듭난다. 바로 배트맨 그 자신이 진정한 희망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이 비장하고 감동적인 씬이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베인이 웨인을 빠뜨린 '절망'이라는 구렁텅이에서 웨인이 도약한 그 순간, 브루스 웨인은 헛된 희망이 아닌 진정한 희망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그 행위는 단순히 배트맨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베인의 절망을 배트맨이라는 희망이 다시 압도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강대한 절망조차도 굴복시키지 못한 진정한 희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배트맨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의 의미나, 그가 고담 시티에서 무엇을 상징하게 되는지는 이제 누구나 알 것이다. 베인이 하비 덴트에 대한 진실을 말하게 됨으로써, 시민들은 그간 자신을 지켜주고 있던 하비 덴트의 존재를 타락의 온상이자 '헛된 희망'으로 다시 탈바꿈시켜버리지만 그 이면에는 시민들로 하여금 그 마음 속에 있던 배트맨이라는 '희망'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것과 더불어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비로소.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처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완성이 무엇인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브루스 웨인으로 하여금 연인을 포기하고 하비 덴트를 구하게 함으로써 웨인을 '배트맨'으로 완성시켰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브루스 웨인 자신이 배트맨을 '영웅'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상징으로써 악에 대항하길 원했던 배트맨의 목적. 그가 말하는 영웅의 완성이란, 한 사내가 위대한 업적을 뽐내며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이라는 등불을 들고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트맨의 완성이었다. 얼음 위를 걷던 고든에게 '불을 지피시오'라고 했던 것 또한 평범한 대사는 아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 베인은 자신을 '어둠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라고 칭한다. 박쥐라는 상징으로써 어둠을 밝히는 그 행위는, 고담 시티의 모든 시민들에게 '희망'을 선포한 봉화 같은 것이었다. 그 후에 이어지는 액션도 정말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구덩이에서 희망의 상징으로써 빠져나온 배트맨은 베인의 절망을 이겨낸 것이었다. 그 후의 액션은 그것을 육체적으로써 증명했을 뿐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고담 시티가 배트맨이라는 희망에 의해 구원받은 후에 나오는 일렬의 엔딩들이 모두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배트맨을 부르던 조명을 그리운 눈길로 쓰다듬던 고든. 브루스 웨인이 아내를 가지고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식당에 앉아 바라보는 환상을 꿈꿨다던 알버트. 그리고 배트맨이라는 희망을 믿고, 동경으로 삼던 로빈. 그 엔딩은 단순한 행복의 상징이 아니라, 그들이 믿던 '희망'이 이루어지던 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로빈이 배트맨의 동굴에 들어가 새로운 배트맨으로써 일어나는 그 순간이 나는 놀란 식의 '희망은 계속 된다'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멋진 이야기는 멋진 엔딩을 필요로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이름 높았던 대서사시의 '엔딩'에 합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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