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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의 기사에 대해
("판사님 자식이 당해도 그렇게 판결할래요?" 판사의 대답은.. https://news.v.daum.net/v/20201004054503794)
“판사님 자식이 당해도 그렇게 판결할래요?”
이 말은 대중의 판사들에 대한 불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판사들이 대중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이나 일부 어설픈 지식인들은 동시에 이 말을 대중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 태도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판사들은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판결을 내리는데 대중들은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며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네 자식 운운이라는 것이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가 쓴 기사는 바로 이런 판사들과 어설픈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알고 보면 참으로 유치한 편견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의 정의감과 동떨어진 판사의 관대한 판결이 딱히 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아무런 이성적 근거도 없다. 그것은 유치한 편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들이 이러한 편견에 빠져서 판결을 내린다면 그들은 더 이성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유치한 허영심과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된다.
관대한 판결이 이성적이라는 생각이 유치한 편견일 뿐이라는 점은 그것을 옹호하려는 김종훈 기자의 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설득력 있는 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비논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그는 일부 판사들에 의하면 그러한 질문은 출발점부터가 틀렸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녀가 피해자인 사건을 맡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나는 이 대목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기자님이 보시기엔 그렇게 말하는 판사님이 존경스러웠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참으로 멍청한 판사님으로 보인다.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실제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냐는 뜻이 아니다. 판사가 피해 유족의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처벌에 찬성하거나 납득할 수 있겠냐는 것이 질문의 의미인 것이다.
기자는, 어떤 판사님은 참으로 쿨하게도 자신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므로 “아니오”라고 답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자는 판사도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전한다.
기자가 전한 판사의 대답은 내가 그 입장이 되면 나 역시 감정적으로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으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김종훈 기자나 판사님들은 본인들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유치하고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시는 것 같다. 부디 조금만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적이라는 건 어려운 게 아니라 그저 의심하고 자신에게 질문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옳고 그름의 궁극적 근거는 이성이 아닌 감정
우리는 살인죄가 절도죄보다 더 중하고 살인죄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종신형이나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대중의 법감정보다는 확실히 더 관대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대단히 이성적인 판사들조차도 살인죄가 절도죄보다 더 중한 범죄이며 중형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판사님들의 그러한 판단에는 도대체 어떤 이성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묻는다면 그 분들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사실 애초에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 이유, 그리고 어떤 범죄는 중범죄로 다뤄져야하며 따라서 중형이 내려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게 되면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궁극적 근거는 우리가 그에 대해 더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우리의 법감정, 다른 말로 정의감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닌 것 같은가? 혹시 중범죄는 그것이 어떤 더 큰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고 방치하면 더 큰 사회적 해악을 낳는다는 식으로 뭔가 더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는(?) 답변이 가능할 것 같은가? 범죄 행위나 그 결과에 관한 어떠한 사실들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것을 범죄로 만들지 않는다.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나쁜 짓이어야 하고 더 중한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더 나쁜 짓이어야만 한다. 사실들에 대해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우리의 감정에 의한 판단이 개입됨으로써 비로소 어떤 행위가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처벌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사태가 “문제”라는 판단 역시 가치판단이므로 일종의 감정에 의한 판단이다. 그러므로 죄질을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하는 문제에 관해 소위 법 감정 이외에 달리 무슨 이성적 근거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진실로부터 영리한 판사들이라면 깨우쳐야 하는 사실은, 만약 내가 (김종훈 기자가 인터뷰했다는 그 판사처럼)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이 된다면 나 역시 그처럼 중한 형벌에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서 그것이 이성적으로 합당한 처벌임이 입증된 것이며 달리 그것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실에 무지한 판사의 심리 상태란 결국 유치한 허영심일 수밖에 없다.
“대중의 법감정에 따른다면 내가 저들 무지한 대중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 같은 엘리트가 무지한 대중의 법감정에 따른 판결을 내릴 수는 없지. 범죄자의 인권을 고려하는 판결을 통해 내가 대중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줘야해”
이런 지극히 천박한 허영심 말이다. 여기에 무슨 지성이 있고 이성이 있단 말인가?
사회적 책임론이 비논리적인 이유
물론 어떤 판사도(?) 저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자기 합리화를 시도할 텐데, 김종훈 기자가 기사에서도 언급한 사회적 책임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허영심 가득한 비이성적 심리 상태에서 비롯된 사고가 논리적일 수는 없다. 사회적 책임론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범죄자에 대해 법이 정한 형량이나 대중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형량은 비이성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형량은 그의 범죄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범죄자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 즉 법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처벌이 범죄자 자신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물론 입법을 하거나 대중이 중형을 요구할 때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사실들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적은 없다는 점을 들어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근거 없는 전제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대중이나 입법자가 어떤 범죄에 대해 일정한 정도 이상의 중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그렇게 판단하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했어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보면, 범죄냐 아니냐는 것은 결국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안다. 불우한 환경에서의 범죄라고 해도 범죄란 결국에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의 어떤 다른 불만족이나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저지른 범죄라면 법은 이미 그러한 사정을 고려해서 감경하거나 처벌을 면제하도록 정해져 있다. 더군다나 어떤 궁박한 상황을 면하기 위한 범죄라면 몰라도 인명을 살상하는 것과 같은 흉악한 범죄에 대해 도대체 무슨 사회적 책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흉악 범죄는 다른 어떠한 환경적 요인보다(그런 면이 설사 있다고 해도) 타인의 인격적 가치를 부인하는 심리상태가 주된 원인임이 명백하므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는 한 사람이 범죄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 그 책임이 그에게 전적으로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인정함에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여전히 그와 같은 형벌이 합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고려했음에도 여전히 그러한 형벌이 타당하다고 판단할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아야 할 사실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내가 짚어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대중의 법감정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고 판사들은 그와 달리 이성적으로 형량을 정한다는 생각은 실은 전혀 이성적 근거가 없다. 그러한 착각은 무지와 허영심의 발로일 뿐이다. 왜냐하면 죄의 경중과 합당한 형벌을 정하는 문제에 관한 한 인간의 보편적 법감정 이외에 다른 어떤 이성적 근거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대중들과 달리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판사로서 한 범죄자의 인생을 고찰한 결과 범죄의 책임이 오직 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소 관대한 처벌을 내린다”는 판사는 본인의 생각과 달리 실제로는 자기 입장에 딱히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면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환경을 고려해도 여전히 극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보다 본인의 판단이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죄와 죗값의 경중에 관한 판단에는 궁극적으로는 정의감 이외의 다른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종훈 기자는 기사의 마지막 단락을 다음과 같이 썼다.
범죄자를 동정하자는 게 아니다. 동정도 감정이고 판결을 오염시킬 수 있다. 그저 판사가 법률과 이성에 따라 잘못한 만큼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릴 수 있게끔 배려하자는 이야기다. 판결을 비판하고 싶다면 논리와 이성으로 먼저 무장하자. 감정만 앞세운 비난은 분풀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감정이 판결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의 궁극적 근거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물론 이 때의 감정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떤 형벌이 잘못한 만큼인지에 관해 (그런 문제에 관한 한) 판사의 판단이 더 이성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대중의 법감정을 한사코 거역하려는 판사의 태도는 허영심,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과 같은 어떤 비합리적 동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 | https://blog.naver.com/novushomo/222106673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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