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있었군...."
확실히, 카인에게 있어선 독한 술을 마실만한 이유로서는 충분했다. 지난 전쟁때부터 말 그대로 백발 백중의 명중률을 보여주던 특등사수였으니. 하지만 그런 것은 가끔씩 저지르는 실수에 불과했다. 보통때였다면 독한 술을 마시긴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자괴감에 빠질 이유가 없었다.
"흐흐흐... 드라그노프를 쐈는데, 마치 우지라도 된다는 듯이 탄환이 바깥쪽을 향해 날아가더군. 언제나 쭉쭉 뻗어나가던 탄환이 말일세."
"흠... 손을 잘못본게 아닌가?"
"내가 자네와 같은 숙소에서 생활한 다음부턴 총을 손질한 다음엔 항상 자네에게 총을 맡겨서 상태를 점검받는걸 잊었나? 자네는 멀쩡하다고 했네. 그럼 뭐겠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총이 오늘 갑자기 이상현상을 보인다면, 그건 내 손이 잘못된게 아니면 무엇이겠나."
뭔가가 조금 이상했다. 어제 멀쩡했던 손이 오늘 망가지는 것은 더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의 손은 완전히 박살이 나지 않는 이상에야 그 기능을 한번에 잃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분노로 이성을 잃어야 할 순간에 오히려 침착해지는, 웨슬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분노를 심판의 방아쇠로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인 카인이 이토록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다니, 아무래도 심각한 자괴감 때문에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끔찍한 일이 있었음에 분명했다.
"크크... 이 친구들은, 내가 잘못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 이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테지."
"...카인. 그렇게까지 자괴감에 빠질 이유는 없네. 혹 자네와 내가 둘 다 실수를 했는지 누가 아는가?"
"...그냥 날 내버려두게.... 애써 날 감싸주지 않아도 된다네.... 그냥... 이 빌어먹을 늙은 군인이 술에 찌들어 비참한 모습으로 남아있도록 내버려두게...."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자신의 실수로 엘리와 토마스를 구하지 못한 것 이외에도 무언가가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 더 있었군."
"..."
"대답해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카인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힘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비웃듯이 말했다.
"...내가 쐈어...."
"뭐라고?"
"내가... 레나를 쐈다고...."
-
레나. 카인이 사랑하는 여인이며, 과거 안타리우스에 의해 개조를 당한 구 안타리우스 소속의 강화인간이다. 카인은 과거 우드시티에서 술집에서 근무하던 그녀를 지키지 못하였음을 후회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군으로 그녀를 만날 때면 언제나 그녀를 살리고자 노력하였다.
"크크... 이 정도면 말 다했군.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총으로 쏴죽이는 덜떨어진 늙은 군인이라니...."
...그의 자괴감의 원인을 알아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웨슬리는 카인의 자괴감을 해소시켜주고 싶었다. 자신의 벗이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카인에게도 좋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네 카인. 모두 다 사고 아니었는가. 자네의 연인을 쐈다는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사실이네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학대하듯이 행동하는건 옳지 못한..."
"레나가 공성전이 끝나고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실망했습니다.」라는군. 크흐흐흐... 흐흐흑...."
그의 자기 자신을 비웃는 듯한 기괴한 웃음소리는 어느새 조금씩 흐느낌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런 카인의 모습을 본 웨슬리는, 그저 말 없이 그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우드시티에서 그녀를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사랑했고,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였음을 후회해왔던 그였기에 그런 그녀의 말 한마디는 과거 그 어떠한 전장에서의 탄환보다도 비참하게 그의 가슴을 관통하였을 것이다. 결국 웨슬리가 한 행동은... 카인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의 끔찍한 기억을 되새겼을 뿐이었다.
"...미안하네."
웨슬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
"...고맙네. 늙은 군인의 푸념을 들어줘서."
한참의 시간이 흘러 카인과 웨슬리가 술집에서 나오고 나서야 카인은 조금 진정된 듯, 평소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살짝 웃는 듯한 느낌으로 -카인을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평소의 표정과 지금 이 순간의 표정을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원체 무뚝뚝하고 자기 감정표현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래도 기분좋게 웃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모습을 보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웨슬리를 바라봤다. 그런 카인을 본 웨슬리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다행히 옆에서 말을 들어준 것 만으로도 카인은 자괴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된 듯 하였다.
카인과 웨슬리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웨슬리.... 내가 이젠 늙은 걸까?"
"내 생각엔... 자넨 아무래도 컨디션이 나빴었던 것 같네. 왜, 가끔씩 있는 일 아닌가. 슬럼프라고."
"...그런가."
카인은 구름이 잔뜩 껴서 달빛이 세어들어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맙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해방의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웨슬리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때, 웨슬리는 무언가 잊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 숙소와 정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곤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좀 갔다오겠네. 먼저 들어가게나."
"알겠네. 천천히 오게나. 급할 일은 없으니. 오늘 일은 고마웠네."
숙소 반대방향으로 멀어져가는 웨슬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카인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난 이젠 너무 늙은 것 같네.... 웨슬리."
to be continued....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