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멀쩡히 주차돼 있던 차가 아침에 보니 찌그러지거나 긁혀있어서 울화가 치밀었던 경험, 차가 있으신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실 겁니다.
지난달 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올린 글(▶사연 바로보기(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best&No=46045&vdate=))이 화제가 됐습니다. 요약하자면, "차가 긁혀 있어서 관리사무소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해 가해 차량을 찾아냈다. 경찰에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경찰은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글쓴이는 "주차장에서 남의 차 박으면 무조건 도망가면 되겠네? 뭐 이런 법이 다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피해 차량 사진(위)와 피해자가 올린 사고 당시 상황도(아래). 보배드림
물피(물적피해) 도주범, 정말 처벌할 방법이 없을까요? 이 사연의 경우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물론 형법상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피 도주는 형법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형법상 재물손괴는 '일부러' 남의 물건을 파손한 경우에 한정되며, '실수로' 망가뜨린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한 도로교통법 151조 "차의 운전자가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의 건조물이나 그 밖의 재물을 손괴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금고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 역시 도로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사연과는 무관합니다.
그렇다고 이른바 '주차 테러'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를 처리하지 않고 도주함으로써 다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첫 번째 예로, 주차된 차에 사람이 타고 있어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쫓아가는데도 가해차량이 도망가는 경우입니다. 한문철 변호사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면 운전자는 급하게 도주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사고로 단순히 차가 찌그러진 정도가 아니고 뭔가가 깨져 뾰족한 파편이 생겼다면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다른 차량이 파편 때문에 타이어에 펑크가 나거나, 파편을 피하려다 다른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가해차량이 도망간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물피사고 후 가해자가 취해야 할 조치의무 규정이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찰에 신고해서 수사를 진행할 순 있습니다. 증거를 확보해 가해자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순 없습니다. 합의를 하거나 보험처리를 하는 게 전부죠. 가해자가 계속 발뺌을 한다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비용을 따져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 현실적인 제재 방법이 되긴 힘들어 보입니다.
2011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 유머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뺑소니범의 편지'. 현행 물피도주 교통사고의 법적 허술함을 풍자한 내용이다.
물피도주 사고는 한 해 평균 40만 건이 발생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2013년 1,418억원이 가해자불명 교통사고 보험금으로 지급되는 등 보험금 누수도 심각하기 때문에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물피 도주에 대한 전자공공토론을 열었습니다. 토론의 설문결과 응답자의 81.2%가 물피 도주 교통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는 16.5%에 불과했습니다. 또 설문 참여자의 78.9%는 가해자 처벌을 현행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이찬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0명은, 물피 교통사고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으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발의했습니다. 이찬열 의원실은 "물피사고 후 도주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경준기자
[email protected]조한울 인턴기자(한양대 영어영문 3)
물피 교통사고를 많이 당해 본 당사자로서 꼭 법안이 통과되길 바랍니다.
2012년에 차를 구입했고 지금까지 3년 동안 물피 사고를 당한 것만 7번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는지 그 중에 6번은 가해차량을 찾아서 보험 처리를 받았습니다.
그럼 6번 사고 중에 가해자가 직접 연락을 해서 보험 처리를 해준 경우는 몇 번 일까요?
단 한 번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병원 주차장에서 사고를 낸 터라 옆에 주차요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걸로 예상합니다.
나머진... 그냥 긁고 다들 도망갔더군요 ㅡㅡ;;
전 첨에 이렇게 긁고 가서 신고하면 처벌을 당연히 받는 줄 알았어요.
첫번째 사고는 골목 주택가 주차장(흰선 그어진)에 주차를 했는데 지나가던 차량이 긁었고
마침 마주오던 차량 운전자가 사고 순간을 목격하고 사고 처리를 어떻게 하나 지켜보다가
그냥 도주하니까 휴대폰 카메라로 차량을 찍어서 제 번호로 보내주셨더라구요.
경찰서 연락해서 차주 알아내고 경찰서로 소환해서 보험처리하는 걸로 마무리했는데
형사님이 그러시더군요. 뺑소니가 아니라 처벌 못 한다고.
두 번째는 학교 공터(동네 주민들을 위해 개방)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새벽 시간에 어떤 아저씨가
전화가 와서 집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피고 있다가 운동장에서 쾅쾅 큰 소리가 나서 봤더니 어떤
차량이 사고를 내더라. 그래서 내려와서 연락한거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 때 시간이 새벽 3시경이었는데
암튼 전 운이 좋았던 듯 합니다. 웃긴건 그 차량이 사고를 내고는 도주하지는 않고 안쪽 다른 자리에
주차를 하고 가더랍니다. 확인해 보니 긁은 자국 다 나 있고... 신고하신 분이 운전자가 술 취한 거
같더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파출소 신고하고 경찰관 분들 오셔서 사진 찍고 했는데 차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해도 안 받더라고요. 그래서 사건 접수만 해 놓고 일단 들어왔고 그 다음날 다시
경찰서로 가서 운전자 소환하고 보험 처리했죠.
나머지 3건은 블랙박스로 잡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사건을 당하면서 느낀 건, 피해자된 입장에서 정말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겁니다.
신고하고 경찰서 직접 가서 조서 쓰고 가해자 찾아내서 보험처리하고... 이런 과정이 시간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로 작용하더군요. 차량 맡기고 찾는 것도 번거롭고... 문짝, 휀다 갈아서 차값 떨어져도 그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고...
그렇다보니 이젠 내가 만약 다른 차량을 긁는다면? 그냥 도망가도 별 일 없겠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겁니다.
정말 이 법안이 꼭 통과되어서 주차테러해 놓고 후조치 안 하고 도주하는 운전자들 꼭 처벌받도록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