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청와대와 여당은 우리가 학교 앞에 관광호텔을 짓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두고 경제살리기를 발목 잡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관광진흥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앞에 짓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청와대 말대로) 관광호텔이 지어지면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것이 서울시일 텐데요. 시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원순 서울시장) "과거에는 호텔이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과도해지지 않을까 (너무 많이 짓는 게 아닌가) 모니터링 하는 상황입니다. 구태여 학교 옆이 아니어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관광진흥법에 학교 환경을 나쁘게 하면서까지 꼭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14일 아침. 여의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실에서는 민주정책연구원 초청을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형 창조경제와 복지성장론'이라는 주제로 경제 관련 강의를 한 뒤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40분 가까운 박 시장의 강연과 이어진 몇몇 의원들의 질문을 집중해서 듣던 문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 대표는 먼저 박 시장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는 "서울시 정책에 대해서 중앙정부로부터 정책적 예산 지원이 부족하고 심지어 (정책이) 엇박자 나는 게 많다고 하셨는데 안타까운 일"이라며 "당에 알려주시면 우리가 국회 각 상임위원회 통해 지적을 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서 문 대표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문 대표의 첫 번째 질문="수도권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규제의 완화는 필요하겠지요. 반면에 지방의 관점에서 보면 수도권의 흡입력이나 확장력은 대단하니깐 수도권은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상반된 요구가 있습니다. 저도 정치하는 사람이라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데 수도권에서 답변할 때랑 지방에서 답변할 때랑 갈등을 느낍니다. 적절한 조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 조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학교 주변에 관광호텔을 짓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한 박 시장의 입장이었습니다.
박 시장은 오렌지색 작은 노트에 문 대표의 질문을 꼼꼼히 적더니 잠시 후 숨을 고르고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박 시장의 첫 번째 답= "수도권 규제 완화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입니다. 투 트랙(two track)으로 가야 합니다. 서울이란 도시가 상하이, 베이징, 싱가포르, 뉴욕 같은 도시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도시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방 균형 발전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지방에서는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사업을 찾아 서울과 서로 역할을 판단하고 분산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걸 규제해서도, 그렇다고 규제를 다 풀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서울시에 제조업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대신 서울이 갖고 있는 역사성, 정체성을 살리고 대학이 많으니 대학의 인력을 활용한 연구개발(R&D)로 가야 합니다. (서울과 지방이) 각자의 위치, 특성, 아이덴티티에 따라서 할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요즈음 문재인-박원순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합니다. 경쟁자인 것 같으면서도 경쟁자 아닌 듯 합니다. 둘은 '아직까지' 2017년 대통령 선거의 가장 유력한 야권 후보입니다. 둘은 잠재적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에서 새정치연합과 서울시가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등 경쟁적 협력관계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박 시장이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메르스 환자 관련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사태 대응이 국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문 대표가 줄곧 여론조사에서 차지해온 야권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은 이날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각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서울시가 모든 산업을 다 육성하려고 할 게 아니라 지방과 공존해야 한다"라는 박혜자 의원(광주시당 위원장)의 제안에 "그건 국회와 중앙정부가 해줄 일이며 제가 생각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당장 언론에서 저를 보고 문재인 대표님의 위상을 위협한다고 나온다"고 답했습니다. 박 시장은 이어 "제가 지방에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면서 "저도 광주에 자주 가고 싶은 데 그러지 못하는 거 아시죠. 형을 형이라고 못 부르고요"라고 했고, 문 대표를 포함해 참석자들은 모두 한참을 웃었습니다.
지지율을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관계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입니다. 문 대표는 박 시장과 안철수 전 공동대표에 당내 차기 대선주자들의 협의체인 '희망스크럼'을 제안하는 등 박 시장에 러브콜을 보내왔습니다. 문 대표가 당 대표 경선 전후로 줄곧 외쳐온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개념도 박 시장이 이날 강연에서 소개한 서울시의 복지성장론과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이날 서울시의 주요 경제정책을 설명하면서 "복지를 제대로 안 한 나라가 창조적 경제로 나아간 경우가 없을 정도로 복지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와 박 시장 모두와 일을 했다는 한 당내 인사는 "문 대표가 큰 형님 스타일이라면 박 시장은 큰 누님 스타일"이라고 빗대었습니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면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문 대표는 좀 더 선이 굵은 모습을 자주 보이는 반면, 박 시장은 '친절한 원순씨'라는 별명답게 살갑고 꼼꼼한 성향을 지녔다는 것인데요. 이날 박 시장은 강연을 들으러 온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이름을 정확히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인사는 "큰 형님, 큰 누님 두 분은 물론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등 많은 스타들이 서로 경쟁을 펼치며 당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면 한다"면서 "국민들에게 다투고 미워하는 야당이 아닌 뭉치려 애쓰고 잘하는 경쟁자를 향해 박수치고 응원할 수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