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 유연화를 근간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실패 이후 소득 주도 성장론이 재조명받는 분위기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기업의 이익을 올리는 것은 결국 단기적인 실적 상승만 일으킬 뿐, 장기적으로는 소비 부진을 야기해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옳다는 예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즉, 노동자의 임금이 대폭 오르니 자연히 소비가 활성화되고, 소비 증가 덕에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며, 매출이 성장한 기업이 더 열심히 투자하는, 호황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흔히 '암흑 시대'라고만 알려진 중세 유럽의 대호황이다.
◆흑사병 후 공전의 호황
중세는 흔히 '암흑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서유럽 사회의 양상은 절망적이었다. 농업 생산력은 급감하고, 물류의 유통은 끊기고, 소규모 영주들끼리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슬람 해적까지 날뛰면서 평민들의 삶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이 시기에 로마 제국 시대의 풍요로움과 활력, 그리고 지성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계승한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하기 전까지 중세가 전부 암흑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서기 1000년대로 넘어서면서 정치가 안정되고,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다.
특히 14세기의 공전의 호황은 어마어마했다.
서기 1350년대 서유럽은 온통 공포로 휩싸였다. 흑사병(페스트)이 유행하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모두가 공포에 떨어 길거리에 인적이 끊길 정도였다.
하지만 흑사병이 불행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우선 흑사병의 여파로 의술이 보다 발전했다. 또 십자군 원정 실패 후 흔들리던 로마 교회의 권위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자유로운 사상의 발전에 일조한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점은 흑사병이 가라앉은 뒤 서유럽에 경이로운 호황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흑사병 때문에 유럽 인구의 1/3이 사라졌으며,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인건비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대지주나 상인이나 다들 인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앞다퉈 임금을 올렸다.
임금이 6배 이상이나 뛰자 노동자들은 예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검은 빵과 밀가루죽뿐이던, 소금에 절인 고기라도 매우 드물게 먹을 수 있던 서민들의 식탁이 하얀 빵과 고기로 채워졌다. 이전에는 사치품이던 하얀 빵과 신선한 고기를 이제는 노동자들도 실컷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로자들이 이처럼 활발히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자 자연히 경제에 활력이 돌고, 이들에게 필요한 물산을 공급하는 상공업이 점점 더 발달했다. 경제의 미래가 밝아지자 자본가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이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더 올려 소비를 더 활성화시키는 선순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사방에 고기가 넘쳐난다. 기근에도 다들 고기를 먹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기록까지 등장한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도 먹을 것 걱정은 커녕 평민들까지 고기를 실컷 먹고 있었던 것이다.
길거리의 여관들도 매일 여러 마리의 소와 돼지를 도살했다. 식사 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가면, 마치 뷔페처럼 온갖 종류의 고기와 채소 등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손님들은 이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었다.
축제라도 벌어지면 더 호화판이다. 누구나 집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길 가는 아무나 붙잡아 햄, 새끼양, 거위 등 호화로운 음식들을 대접했다.
상업 발달 덕에 당시 유럽에서 제일 경제력이 강하던 네덜란드 지방에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천대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사슴고기와 자고개 고기 등을 찾아먹으면서 자신들의 부를 과시했다.
100년 가까이 계속된 호황 덕에 평민들이 생활이 몹시 부유해지자 그 시기의 지식인들은 "사회에 지나친 사치와 향락이 만연하고 있다"며 비판의 붓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런 경제 발전은 르네상스 시대를 개막하는 원동력이 된다.
비슷한 시기의 조선은 우수한 정치 시스템 덕에 '선진 사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평민들의 삶은 압도적으로 당시 유럽이 풍요로웠다.
◆임금 하락으로 불황 도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대호황은 흑사병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고, 유럽의 인구가 회복되면서 가라앉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연히 소비도 부진해졌다. 소비가 부진하니 자본가들은 투자를 꺼리게 되고, 그동안 고용하던 노동자들까지 해고한다. 그에 따라 소비는 더 하락하고, 경제의 활력이 뚝 떨어지게 됐다
어이없는 사실이지만, 중세 말기의 대호황이 르네상스 시대를 불러왔음에도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뒤 오히려 경제는 후퇴하기 시작한다. 학문과 예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평민들의 삶은 오히려 그 전보다 못해졌다.
1518년경 브루타뉴의 한 늙은 농민은 "옛날에는 축제 기간이면 마을의 누군가가 사람들을 불러 닭, 돼지, 소고기 등을 대접했었는데, 요새는 그런 풍토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불황의 기조는 점점 더 심화돼 서기 1550년이 지나자 평민들의 삶은 중세인들보다 훨씬 못한 수준으로 굴러 떨어진다. 기술과 문화는 계속 발전했지만, 경제 활력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불황은 결국 르네상스 시대를 끝맺음하게 만들었다. 대신 개인의 소득이 떨어진 만큼 많은 인구를 합치는, 영토형 대국과 절대왕정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불황의 수레바퀴가 멈추고 다시 호황이 찾아온 것은 다시 한 번 다수의 사람들이 죽은 뒤였다. 위그노 전쟁과 30년 전쟁으로 유럽이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사하거나 아사하자 다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오르고,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론을 앞세워 쓰러져 가던 경제를 상당 부분 일으켜 세웠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을 두고 논란이 큰 상태다.
노동지상 유연화와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상승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에 이로운지는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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