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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60111
    작성자 : 피식...Ω
    추천 : 2/12
    조회수 : 622
    IP : 118.130.***.220
    댓글 : 25개
    등록시간 : 2008/09/23 20:21:40
    http://todayhumor.com/?sisa_60111 모바일
    일왕 명치(明治), 왜 상제님의 양장(良將)인가?
    일왕 명치(明治), 왜 상제님의 양장(良將)인가?  
     
    http://www.jsd.or.kr/jsd.net/?sec=dojeon&act=view&bid=178&bclass=0&page=4&no=8&sid=6793 
     




    상제님께서 하루는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맡기려면 명치(明治)를 불러와야 하리니 이제 명치의 혼을 부르리라.” 하시고 명치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조선 일을 보겠느냐?” 하시니 명치가 아뢰기를 “아무 보답도 없이 인명만 상할 터인데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하며 완곡하게 사양하고 물러가니라.
    이튿날 상제님께서 명치를 다시 불러서 혼을 내신 뒤에 물으시매 역시 사양하므로 돌려보내시더니 사흘째 밤에는 크게 화를 내시며 “이놈! 이놈!” 하고 밤새도록 불호령을 내리시니라. 이에 명치가 마지못해 굴복하여 “조선 일을 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명치와 더불어 여러공사를 보시고 돌려보내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명치 그놈, 참 잘난 놈이다. 명치만큼 똑똑한 놈이 없다. 똑똑하고 무서운 놈이니 장차 서양 세력을 물리치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항우(項羽)는 한고조(漢高祖)의 양장(良將)이요, 명치는 나의 양장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51)
     
     
    올해는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 흔히들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과 일본은 악연의 고를 끊지 못한 채 역사의 줄다리기를 쉼없이 해왔다. 과연 근대 일본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로 다가오는가? 
     
    일본은 1854년 페리의 개항압력에 의해 서양 열강과의 문호를 개방한 후 약 50년만에 일약 전세계가 주목하는 열강의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50년은 한국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짓는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다. 임란 후 선진문화를 전수하던 조선이, 19세기와 20세기의 불과 수십 년만에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당시의 역사를 좀더 냉철히 바라보게 한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최고 지도자였던 명치(메이지, 1852~1912)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그가 어떻게 해서 상제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의 회오리 중심에 서서 

    일본은 임란 직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막부라고 하는, 쇼군에 의해 통치되던 무사의 사회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19세기 들어 계속되는 서양 이양선들의 출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급기야 1854년, 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통상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는 엄연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러한 막부의 서양 열강에 대한 문호개방은 당시 자국중심의 존화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던 많은 사무라이들의 반발을 샀다.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를 오랑캐와 화친함으로써 일본을 그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려는 술책이라며 막부를 비난했다. 
     
    당시 반막부 세력은 양이(攘夷)파와 존왕양이(尊王攘夷)파1)가 혼재하고 있었다. 
    1864년 조슈번의 보수파는 ‘양이’를 목적으로 영국·프랑스·미국·네덜란드 등 4개국과 전쟁을 벌여 패배하였다. 보수파는 패전의 책임을 존왕파에게 돌려 그들을 탄압하였다. 이에 ‘존왕파’는 거병을 일으켜 조슈번의 권력을 장악하여 개명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사쓰마번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일본이 서양 열강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개명정책으로 나아가며 정치적 통합을 꾀하였다.
      
    그리고 조슈와 사쓰마의 반막부 세력은 드디어 1867년 12월, 왕정복고를 위한 쿠데타를 감행하였다. 
     
    막부와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일왕 고메이가 죽은 이후, 68년 8월에 그의 아들 메이지가 등극한다. 메이지는 당시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당면한 일본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할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되었다.
     
    메이지, 다시 말해 ‘무쓰히토’는 아버지 고메이하고는 여러모로 다른 일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버지가 양이론(攘夷論)을 주장하고 있을 때 이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막부보다는 존왕파에게 더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1865년 7월 9일, 고메이가 아사히코 왕자에게 보낸 서한을 읽어보자.
     
    “무쓰히토(메이지)는 내 아들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내가 다스리기 어렵다. 짐을 잘 따르지 않는다. 짐의 명령을 따르는 자는 악인으로 알고 조금이라도 짐에게 불충한 사람은 매우 찬미한다. 천황의 명에 순종하는 자는 나쁜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마음 놓을 수 없다.”
     
     
    근대 일본 창업의 구심점, 메이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메이지는 신정부 세력이 막부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1868년 2월 17일, 메이지는 외국 공사의 알현을 받는다는 포고문을 발령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외국인을 혐오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자진해서 그들과 만나 일본의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1868년 3월 14일, 메이지는 국시 ‘5개조 어서문(御書文)’을 반포하였다. 핵심내용은 제반문제를 공론에 부치는 한편 합심하여 낡은 관습을 타파하고 신문명을 받아들여 황국의 기반을 튼튼히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서한형식의 고유(告諭)를 반포하였다. 이 서한은 기존의 왕들과는 그가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근대일본의 창업자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일본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메이지의 주장은, 봉건제도에 젖어있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메이지는 교토에서 만기친재(萬機親裁)의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자신이 일본의 주인이 되어 정무를 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신정부에 참여한 요코이 쇼난은 “천황이 다다미 여덟 장 되는 방 중앙에 다다미 두 장을 겹쳐놓은 옥좌에 앉아 아침 일찍부터 접견하고 정무에 몰두한 것”에 감탄했다고 한다. 
     
    관리의 공선입찰, 세금제도의 개혁을 통해 신정부는 인재를 고루 등용했으며 군비를 가다듬고 치안을 안정시켰다. 그후 1871년 일본역사상 최대의 정치사건으로 기록될 <폐번치현>이 단행되었다. 신분제 철폐, 징병제 실시, 교육칙어 반포, 제국헌법 선포 등이 그의 재위시절 착착 실시되어 강도 높은 근대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또한 군비확충·산업장려·교육제도 개혁 등 일본이 부강하게 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그는 폭넓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신민(臣民)들로부터 인망을 얻다

    메이지는 즉위한 이후 자신의 존재를 일본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는 백성들을 제국 일본의 역군이자 자신이 돌봐야할 신민으로 여겼다. 그래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국민들이 살고 있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위무하였다. 그는 행차시 연도에 있는 모든 신사에 공물을 바치도록 명했다. 고령자에게는 돈을 주고, 효자·절부 그리고 공익사업에 공이 있는 자에게는 표창을 하였다. 질병·조난·곤궁자에게는 재물을 나누어주는 등 백성들을 세심하게 보살폈다.
      
    한편 메이지는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치나 과시를 싫어했다. 그를 보좌했던 한 시종의 회상을 들어보면, 메이지는 붓이나 먹이 작아진 것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고, 몇 년에 걸쳐 똑같은 군복을 입었다고 한다. 
      
    1873년 뜻밖에 궁에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메이지는 아카사카 별궁을 임시거처로 삼으며 “국가 재정은 쓸 곳이 많은데, 황궁 건축을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짐의 거처를 위해서 민산(民産)을 축내고,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또한 1892년에는 ‘궁정의 지출을 줄여 6년간에 걸쳐 연액 30만 엔을 하사하고, 문무 관료의 봉급도 같은 기간에 10%씩 거두어 군함제조비로 보조한다’는 조칙을 내리기도 하였다.
      
    평소 유학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이, 서양열강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더해져 그를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금욕주의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진강을 매우 열심히 들었는데, 헌법과 국제법을 시독(侍讀)한 가토 히로유키는 왕이 성실하여 매일 5시면 일어나 공부준비를 하는 바람에 황송해서 식은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도전 5편 51장을 보면, 1903(계묘)년 상제님께서 메이지에게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잠시 위탁하는 공사를 보시는데, 이때 메이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무 보답도 없이 인명만 상할 터인데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이는 메이지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치세(治世)중에 일어났던 전쟁시에 보여준 일면(그는 군복을 즐겨 입었으며 육군 훈련 시찰을 좋아했다)과는 달리 그는 사실 전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1894년 동학혁명을 계기로 하여 청·일 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정부의 많은 각료들은 전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메이지는 개전을 내켜하지 않았다. 이는 청·일간의 전쟁이 자칫 외국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일본을 해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많은 일본인들이 죽게 될 전쟁을 참을 수가 없었고, 이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았다. 
     
    러일전쟁 당시, 그는 뤼순의 포위상황에 대해 “뤼순은 언젠가 함락될 것이 틀림없지만, 이렇게 병사들을 죽이면 곤란하지 않나. 노기(대장)도 애썼지만, 저렇게 병사들을 죽이면 정말 곤란해”라고 그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뤼순 함락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가 최초로 보인 반응은 환희와 기쁨이 아닌, 패배한 적장을 적절히 예우하라는 지시였다.
     
    그는 전쟁을 내켜하진 않았지만 일본의 권익과 안녕이라는 목표를 위해 기꺼이 이를 수행했고, 승리를 열망하였다. 이러한 메이지의 삶은 국민을 감화시켜 인화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실현한 근대 일본의 산 역사라 말할 수 있다.
     
     
    한국을 일본에 잠시 위탁하신, 상제님의 깊은 섭리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이 조인되었다. 29일 메이지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국(대한제국)을 일본제국에 편입시킨다고 조서를 발표하였다. 한국문제와 관련하여, 처음 그는 날카롭고 신중하게 정세를 살펴 섣불리 일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즉위 초, 사이고 다카모리(1827∼1877) 등이 중심이 되어 신정부 내에서는 정한론(征韓論)이 크게 대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이와쿠라 도모미(1825∼1883)가 사절단(이와쿠라사절단)을 이끌고 구미를 다녀온 후 서양 국제법에 눈뜨게 되면서, 침략전쟁이 일본에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정부내에서는 정한론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당시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지는 조선침략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일본이 외세의 간섭을 피하고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하였다. 그로부터 40년 후,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어찌하여 우리 민족을 일본에게 위탁하셨을까? 이는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쉽게 논할 수 있는 그런 주제가 아니다. 당시 냉혹한 국제정세로 보았을 때, 러일전쟁은 분명 ‘한반도쟁탈전’이었으며 그것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미니세계대전’2)이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한반도는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러일전쟁 발발 직전 연해주의 총독 알렉세예프는 러시아 외무장관 람스도르프(1844~1907)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때가 되면 한반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게 돼 있습니다. … 우리로 하여금 한국에 침입하게 하는 힘은, 우리로 하여금 우랄 산맥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게 하기도 한, 우리로 하여금 중앙아시아를 우리의 영토나 우리의 보호국으로 만들게 한, 그리고 이제는 만주까지 뻗어나게 하기도 한 바로 그 힘입니다.”
     
    상제님은, 러시아가 한국을 집어삼켰을 때, 한민족이 혈통줄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서양제국주의의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을 크게 우려하셨다. 그리하여 차선책으로 한민족(韓民族)의 방계지류인 동양 제국주의 국가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잠시 맡아보도록 공사를 보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와 멸시 속에서 우리 민족은 극단적인 상극기운을 이겨내며 자주의식을 고양시켰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암흑기를 극복하면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집념을 키워냈던 것이다. 
     
     
    고단한 삶을 인내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다

    한일합방을 이룬 2년 후, 메이지는 심장마비로 1912년 7월 30일 사망하였다. 
    일본이 당면한 현실을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바라보았던 메이지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만세일계의 왕의 후예로서 신들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과 일본국의 수장이라는 책임감은 근대 일본을 창업하는데 크나큰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알현한 사람은 미미한 사람일지라도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치세 중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그가 멸사봉공의 지도자 상을 일본인들에게 깊이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한 예로 그는 ‘제국 헌법’이 반포되는 과정에서 심의를 위한 추밀원회의에 계속 참석하였는데, 왕자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국가건설의 주체로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삶을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이러한 메이지의 삶은 일본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 커다란 정신적 구심이 되었다. 
     
    침착하고 대담한 성품으로 자신의 과업을 성실하게 수행했던 메이지는, 특히 일본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오랜 세월동안 군림하며 신정부의 근대화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근대 일본의 안정과 번영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었다.
     
     
    상제님은 ‘명치가 나의 양장’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능력과 자질을 천지공사에 쓰셨다. 비록 상제님께서 그를 천지공사에 내어 쓰셨지만, 일제에게 수난을 당했던 우리 민족의 현실역사에서 보자면 메이지에 대한 시선이 결코 고울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근대 일본을 창업한 메이지 시대의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근대 일본사를 직관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를 좀더 냉철히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참고자료>
    1. 도널드 킨 저, 김유동 옮김 『명치천황』(상,하) 다락원
    2. 고미 후미히코 외 저, 한은미 옮김 『2천년 일본사를 만든 일본인이야기』 이손
    3. 유모토 고이치 저, 연구공간 수유+너머 동아시아 근대 세미나팀 옮김 『일본 근대의 풍경』 그린비
    4. 요시노 마코토 저, 한철호 옮김 『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 책과함께
    5. 박노자·허동현 저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푸른역사
    6. 배기찬 저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위즈덤하우스
    7. 을사늑약100년, 그때 일본이 탄생했다: 제1편 러일전쟁, 제2편 메이지의 유산 『KBS스페셜』,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08/09/23 22:11:23  58.225.***.79  차녕이
    [2] 2008/09/24 01:05:13  118.21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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