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대사관 앞 수요일 12시 "수요시위"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상 전무후무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20년간 지켜온 시위!, 일본정부는 물론, 우리정부, 국민들의 무관심이 더 서럽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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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727§ion=sc4§ion2= 세상에서 가장 오래 동안 진행되고 있는 시위를 아십니까? (1부)
1992년 1월 8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위.....
1992년 1월 8일 첫 시위 이래 어느덧 1천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위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전쟁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다. 그러나 반인륜적 범죄인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 시위가 20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가 미해결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0년 동안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돼 온 이 시위의 주축은 물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무려 반세기 가까이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이 끔찍한 진실을 세상 속으로 드러낸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끔찍한 역사의 희생자를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가진 만만찮은 성격을 드러내준다. 정신대(挺身隊)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뜻으로, '일제의 인력동원 정책'을 의미하는 낱말이므로 합당한 명칭이 될 수 없다.
또 위안부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전쟁 중 일본군의 '성 노예' 제도를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강제 종군 위안부', '일본군 성 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등을 거쳐 합의된 이름이 일본군 '위안부'다. '위안부'는 여전히 부당한 이름이지만 일제에 의해 불렸던 이름이므로 작은따옴표('')로 묶어서 사용하되 범죄 주체인 일본군을 붙여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쓰게 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뒤늦게 이 비극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들은 '고통스런 희생'이라는 글귀로 써내려가지만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과 그로 말미암은 상처를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공개 증언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했고 여느 여성들처럼 쉽게 혼인하지도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안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기도 했고 몸이 망가져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피해자였지만 그들이 겪은 희생의 성격 때문에 오히려 비난 받았으며 스스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랜 침묵 끝에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한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는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 동안 234명의 할머니가 피해자 신고를 했고 그 중 많은 분들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이제 생존자는 80여 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20년간 계속된 할머니들의 당당한 외침은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일본 정부는 국제 여론에 떠밀려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일부 책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강제성은 없었다'며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다 부분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배상금' 아닌 '위로금'에 지나지 않는 '국민기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형식의 기만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침묵 속에 살다가 뒤늦게 인권에 눈뜬 할머니들의 눈부신 활약은 국제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2007년 미국 하원과 유럽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지치지 않는 끈질긴 싸움은 현실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오랜 고통과 침묵 속에 살아온 할머니 자신들도 변화시켰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더러운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증언하면서 전쟁이 인권 유린의 근원임을 깨달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역사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반대는 전근대적 역사의식
할머니들은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또한 더 이상 여성들이 수난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평화의 나라'를 위해 그런 역사를 기록해 놓은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 미래 세대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박물관) 건립 사업을 시작했다.
박물관 건립 사업은 8년 간 모금활동을 펼쳐 17억원을 모으고, 서울시로부터 서대문 독립공원 매점 부지에 100여 평의 땅을 확보하면서 순조롭게 진척되는가 했다. 하지만 박물관 건립은 '독립공원 내 위안부 박물관 건립은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광복회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MBC <시사매거진 2580> '20년이 흘렀지만…' 편으로 방영되면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나 서대문 독립공원 안 박물관은 광복회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되고 정대협은 모인 돈으로 성미산 기슭의 한 단독주택을 매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물관 건립사업이 좌초된 것은 아직도 잔존해 있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일이었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과 고통을 자신들의 빛나는 무용담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이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독립애국지사의 유족 및 후손들이 대부분인 광복회의 행태가 더욱 서글프다.
몇일전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이병호 애국지사의 장례식에도 나몰라라 하는 광복회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광복회인지....? 깊은 자성과 환골탈태 하기를 기대한다.
(아래사진설명)서대문 독립공원 내 박물관 건립이 광복회의 반대로 정대협은 성미산 기슭의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은 광복회의 정신과 역사의식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