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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참사 이후 “정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고 초기부터 현재까지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어디에도 정부는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산업 잠수사 경력만 13년에 달하는 베테랑 잠수사인 김씨는 작년 4월23일 오후 사고 현장에 도착해 수색작업에 합류했다. 참사 직후 동료의 권유에 망설이던 김씨는 아들과 대화 도중 “아빠는 구할 수 있지?”라는 말을 듣고 진도행을 결심했다. 참사 초기 진도 사고 해역에는 김씨와 같은 민간잠수사 20여명과 해양경찰, 해군, 육군 소속 잠수사들이 함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처음 접한 참사 현장은 구조 상황, 장비, 정부 지원 등 모든 게 ‘최악’이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자신의 장비를 사용했어요. 정부로부터 마스크 하나도 받은 게 없습니다. 당시 정부는 수색작업에 꼭 필요한 세월호 설계도면 하나도 제대로 확보 못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설계도면과 (구조변경된) 선체 내부가 달라서 수색을 하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당시 해경은 민간잠수사를 거드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우리가 선체를 수색하면 해경은 공기 호수를 잡아주는 역할 정도를 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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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실종자 200여명 이상을 가족 품에 돌려보냈어요. 하지만 작년 7월 9일 실종자 11명을 남겨둔 상황에서 갑자기 해경이 수색방식이 변경됐다는 이유로 민간잠수사에게 수색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없었습니다. 그냥 고생만 하고, 욕만 먹고 버려진 것 같았어요. 목숨까지 걸고 수색하다 불명예스럽게 쫓겨난 이후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해경은 민간잠수사 선배에게 ‘고 이광욱 잠수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막가는 해경의 모습을 목격하며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해경은 수색 중단 통보 후 1달이 지난 작년 8월 당시 사고 현장에서 작업배치 업무를 했던 민간잠수사 공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이 같은 해경 조치에 대해 “바지선 위에서 해경이 민간잠수사의 수색을 지휘·감독했고, 공씨는 해경의 지시를 듣고 민간잠수사에게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을 했다”며 “해경이 책임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민간잠수사 선배를 살인자로 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세월호 침몰사고 21일째인 작년 5월6일,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된 민간잠수사 이광욱(53) 씨가 잠수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발생 초기부터 우왕좌왕하면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던 해경이 민간잠수사에게 수색작업을 맡기고 뒷짐을 지고 있다가 비극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기사:해도 해도 너무한 해경...잠수사에게도 ‘국가는 없었다’)
총체적 난국 ㅡ,ㅡ
메르스 사태랑 똑같음 진짜';;;
출처 | http://www.vop.co.kr/A0000089602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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