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는 친구들의 차를 얻어탈 기회가 있으면 한번쯤 물어본다.
한달 유지비가 얼마나 들어가느냐고.......
보험료, 기름값, 세금........
근데 이넘 저넘 누구에게라도 이걸 물어보면 주차비를 유지비에 포함시키
는 사람은 한넘도 없다.
아직 우리나라 차 오너들중에 주차는 공짜라는 관념이 박힌듯 하다.
우리나라 주차 환경과 도로 환경과 기타등등을 고려해 몇대정도의 차가 대한민국
위에서 굴러댕겨야 적절한 수준일까.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교통체증에 아무런 이의조차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교통 체증이 당연한듯 인식 되는거다. 빈자리 찾아 잽싸게 차 집어넣고 돈 한푼
안내고 주차하면 당연히 자신이 운이 좋아 그런건줄 안다.
유료주차장에 돈 내고 주차 시키면 생돈 들어간 기분이다.
아직 국민들 인식이 '차'를 갖기엔 좀 거리가 있다.
아직 도로 환경이 이렇게 많은 차가 굴러댕기기엔 좀 버겁다.
아직 여러 여건이 이렇게 많은 차를 수용하기엔 많이 비좁다.
근데 왜........
왜 이렇게 많은 차가 보급되고
우린 자가용 없인 단 한순간도 살기 힘들다고 느낄만큼 도태한걸까.
일자리 창출과 고용증대, 국제 경쟁력에 앞서는 자동차 공업을 발달 시키기 위해
역대 박통때부터 국가에서 장난친거다.
명분은 일자리창출과 고용증대 수출증대 어쩌구하지만 사실 실속은 정경유착과
대기업 중심경제구조, 대외 종속 경제구조의 시발점인거다.
대기업 장난에 수많은 중소기업 노동자 길거리로 쫒겨나고
국제경제 기침 한번에 나라가 거덜나는 비참한 대외종속 경제 구조의 그
출발점인거다.
시급 2500원 짜리 하청 노동자의 피를 빨아 정치인들 뒷주머니 채워주는 더럽고
이가 갈리는 정경유착의 그 근원인거다.
그리고 그의 악순환은 국내 농어업을 희생시켜야 겨우겨우 유지될만큼 그 폐혜성이
더 커진거다.
난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요즘엔 시인이라고 한다. - 원.시.인
핸드폰 보급이 일반화 되면서 나같이 핸드폰 없는 사람들에겐
엉뚱한 피해가 하나 생겼다.
꼭 전활 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별수없이 공중전화를 찾아야 하는데........
그나마 장사 안되는 공중전화는 대부분 철수해버렸고 한번 공중전화 찾으려면 보통 서너
블럭은 헤메야 겨우 찾을수 있다.
단순히 핸드폰이 없다는것이 그 상대적 빈곤감이 아닌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를 주는거다.
요즘 일반화 된 에어콘.
그나마도 난 없다. 별로 에어콘 좋아하지도 않고 그거 가진 사람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 에어콘 응축기에서 내뿜는 열기가 에어콘 가진 사람과 전혀 상관 없는 내게
피해를 준다는거다. 한 여름 주택가나 에어콘 실외기 많이 설치된 골목을 돌아댕기면
생각보다 무척 덥다.
단순히 상대적 빈곤감이 아닌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를 주는거다.
이놈 저놈 다 가진 차.
나 차 없어도 잘 산다. 차가 있어본적이 없기에 역시 없어도 불편함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이넘저넘 다 가진차 때문에 새벽 내 기상 시간이 30분 정도는 빨라져야 하며
역시 귀가시간도 30분 정도 늦어진다는거다. 내가 차 가진넘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 가진넘들은 내게 강제적으로 소중한 한시간을 강탈해간거다.
단순히 상대적 빈곤감이 아닌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를 주는거다.
그래서........
차 하나를 가져도, 또는 에어콘을 가져도, 핸드폰 하날 가져도 그것만큼의 사회적 책임은
있는것이다. 단순히 그것에 해당하는 소비세나 각종 세금을 낸다는 의미가 아닐것이다.
니가 무심코 들고 있는 핸드폰엔 우리 옆동네 마늘 농사하시는 아저씨의 눈물이 들어
있는것이고 바다에서 고기잡는 선량한 어부들의 피가 담겨있는것이다.
에어콘에서 나는 시원한 바람엔 구조조정으로 일자릴 잃어 시름하는 실업자의 한숨이
들어있는것이고 니가 무심코 몰고 다니는 그 차는 2500원짜리 하청 노동자의 피와 땀이
연료가 되어 굴러가는것이다.
이 말은 사회가 가진, 또는 축적한 여러 가치들을 또한 공유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뜻하며 어느 소수에게 독점 될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진리인거다.
이것을 독점하고픈 욕심이 있을때 그건 이미 '귀족'에 다름아니다.
귀족(악의적 의미로서의)이 별건가.
책임은 회피한채 특권만을 향유하려 한다면 그가 스패너를 잡고있건 키보드를 두드리건
역시 귀족임에 매일반이다.
어찌 이 사회가 축적한, 수많은 땀과 눈물과 피로 축적한 그 가치에 대해
소수 몇몇 정치인과 노동 귀족, 자본가들은 감히 그것을 독점하려 하는가.
정치인은 합법적으로 또는 합법을 가장하여 그것을 독점하려하고
노동귀족은 경제의 목을 죄어 그것을 강탈하려 하고
자본가는 이데올로기의 비호아래 그것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최소한의 시장의 원리도 무시한채 자본가는 정치가의 힘을 빌어 차를, 핸드폰을, 에어콘을
많이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써서 그 가치를 독점하려 하고
정치가는 자본가가 독점한 그 가치에 기생하려하고
노동귀족은 온 국민의 밥줄을 불모로 해서 협박으로 그걸 강탈하려 하고 있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안에서 서로서로를 정당화해주고
면책 시켜주며 점점 상승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거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아무도 이러한 '거대한 체재'에 적응하려 몸부림 치고
체재에 길들여지는 노예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성공이라는 당근에 이끌리는 이 더러운 노예의 삶은 때로 뻔지르르한 말들로 자신의 양심을
포장하고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들로 그들만의 소통을 하며 차후 자신의 몫이 될
'강탈한 독점'을 미리미리 변명해댄다. 제대로 변명해댈수 있어야 그 '귀족'에 기꺼이 한자리
끼일수 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그들에게 양심을 요구하는건 무의미하다. 그들만의 언어로 '휘황찬란한 양심'이 이미 존재
하기 때문이다. 기꺼이 그들과 한무리가 되길 원하는자가 있다면 역시 순식간에 좀비가 되어
그들과 똑같은 언어로 뇌까리고 중얼거린다.
가끔 알아들을 말이 있긴 하다.
왜 니들은 좀비가 되지 않는거냐는.......
푸헐헐.
찌질이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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