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이제는 감정싸움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한쪽에서는 한-미 에프티에이를 안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고, 반대쪽에서는 에프티에이를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한다. 한쪽에서는 한-미 에프티에이를 반대하는 사람을 정통 경제학의 이단자 정도로 매도하고, 반대쪽에서는 이를 찬성하는 사람을 미국 경제학에 세뇌된 신자유주의의 정신적 노예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반대하거나 유보적 입장을 보인다고 해서 정통 경제학의 이단은 아니며, 에프티에이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여 반드시 미국식 경제학에 세뇌된 신자유주의 신봉자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미 에프티에이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영향이며, 우리가 이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리고 기대하는 것을 과연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앞서야 하고, 이러한 평가를 하는 각자의 관점이 어떤가 하는 것이 또다른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미 에프티에이 논쟁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미 에프티에이 논쟁을 바로잡고자 전통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 우려되는 바를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필자가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책임있는 정부·집권여당, 그리도 보수 학자들과 수구언론들의 주장이 일견 정통 경제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정통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들의 주장이 상당부분 근거 없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첫째, 에프티에이를 하면 개방경제가 되고, 안 하면 폐쇄경제가 된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지금을 마치 구한말 대원군 시대나 아니면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하던 시대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는 일부 예외적인 부분을 빼면 대부분 개방되어 있고 관세장벽도 높지 않다. 국제교역 측면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이미 문호가 다 열린 개방경제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더라도 이미 많이 개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엄청난 효과가 추가로 더 나타날 여지도 그리 크지 않다.
반대로 비록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다시 폐쇄경제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므로 엄청난 불이익을 겪을 것도 아니다. 에프티에이를 체결하지 않으면 통상쇄국주의가 되고 그러면 우리 경제가 50년은 후퇴할 정도로 파탄이 나서 북한처럼 붕괴할 것이라고 마냥 떠들고 있는 보수언론, 정부·여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은 유언비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개방을 매우 정치적으로 오도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교역규모에 비추어 볼 때 한-미 에프티에이의 단기적인 교역증대 효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극히 제한적이다.
둘째, 정부와 보수언론이 갈망하는 에프티에이는 경제학 무역이론에서 설명하는 비교우위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론에 근거한다면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해야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주장은 논리적인 자가당착에 빠진다. 이 이론은 교역당사국이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포기하는 대신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에 특화하면 교역당사국의 총생산량이 이전보다 더 많아지고 그러면 교역을 통해 당사국이 모두 다 더 잘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경우 비교열위에 있는 농업을 포기하기만 하면 더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경제학자들이 비교우위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바로 여기까지다. 통상경제학자들은 포기하는 산업이 어떤 산업이고, 특화하는 산업이 어떤 산업인지 관심이 없다. 식량주권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비교우위론에 의할 경우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산업은 농업만이 아니다. 정보·통신, 제약, 의료, 정밀기기, 정밀화학, 항공·우주, 금융, 소프트웨어 등 우리가 미래산업이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산업, 앞으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야 할 거의 대부분의 차세대 산업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비교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다며 차세대 산업을 다 포기하겠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다. 만약 정부가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더라도 차세대 산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비교우위론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 한-미 에프티에이의 근거가 되는 비교우위론을 부정하는 것이 되니 또한 자가당착이다.
셋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비위반 제소, 간접수용에 대한 손실보상 등은 독소조항이고 자유무역을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므로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정부·여당, 보수 언론 및 학자들은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필요하고 그래야만 외국인 투자가 촉진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대우 원칙만 확실히 보장해주면 족하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느 변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후진국이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라도 국민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고 만약 합당한 정책적 이유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때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차별 없이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우리의 사법권을 벗어난 지역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허용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내국인 대우만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재산권 보호가 미흡하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허용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과거 투자협정의 사례나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 에프티에이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켜야 하는 논거가 될 수도 없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국가의 자유로운 미래 정책 선택권을 제약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이 상태로는 한-미 에프티에이를 절대 체결하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기적인 실익도 크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국익에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내국인을 역차별하고 사법주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정책을 심각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려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필자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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