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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역동적인 한국의 정당사!
그러나 지금의 정당들이 '왜' 이러고 있는지 알려면 꼭 숙지하고 있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정당사!
심지연, 『한국정당정치사』, 서울 : 백산서당, 2013
한국선거학회, 『한국 선거 60년』, 서울 : 오름, 2011
위의 저서 내용을 중심으로. 정말 쉽게! 간단하게! 형태를 중심으로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로 핑계를 마무리하고.
진보정당은 또 나름의 갈래가 복잡하여 따로 연재했었습니다.
출처에 있는 저의 블로그나, 시사게시판 검색해보시면 찾으실 수 있습니다.
해방직후 북한을 포함한 한국사회에서 정당은 난립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남한에서 자리를 잡은 정당 중 정당이라고 판단될 수 있는 조직과 역량을 갖춘 단체는 조선공산당, 한국민주당, 국민당, 건국동맹 정도가 있었다. 이들은 우익내 ‘통합정당 창립 운동’과 온건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 좌익의 ‘남-북 노동당’ 결성이 주요 흐름이었다.
이들은 1945년부터 정당 통일 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수립을 통해서 남한 내부의 정당들을 대개 정리하였다. 위 운동은 자유당으로 이어진다. 윤보선계의 ‘한국국민당’, 김병로계의 ‘조선민족당’이 합당을 결의하였으며, 여기에 김성수와 송진우가 합류하여 ‘한국민주당’이 창당하였다. 위 두 정당은 제1공화국 정당사의 핵심 축을 이룬다. 이후 민주국민당과 한국민주당이 독재에 반대하여 ‘민주당’을 창당한다
민주당 내부의 갈등과 분당의 결과는 민심의 이반이었다. 결국 1961년 5.16 군사쿠테타의 발발로 이어졌고, 군부는 정권을 장악한다. 제2공화국의 수반인 윤보선은 쿠테타를 방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면은 수녀원으로 도피했다.
군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고 3권을 장악했다. 당시 의장인 장도영과 부의장 박정희는 갈등했으나 박정희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당시 군부는 정국 안정 이후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군부 핵심은 군에서 전역하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정치에 참여한다(심지연, 2013: 152-167).
군부는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 구파의 ‘민주정의당’(그 민정당 아님)은 제3공화국의 정당 체제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1963년 5대 대선에서 공화당은 박정희는 민주정의당의 윤보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민주당의 허정이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후 6대 총선에서 야권은 분열하였고, 공화당에게 야당은 대파 당한다.
이후 민주당과 민주정의당은 한일회담 정국을 통해서 ‘민중당’으로 통합 창당한다. 그러나 창당 1달만에 윤보선과 강경파는 탈당하여 ‘신한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6대 대선 정국에서는 야당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신민당’으로 통합 창당하게 된다. 대선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상대로 승리를 거었고, 바로 어이진 7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한국선거학회, 2011).
1971년 8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118석, 신민당 89석, 국민당과 민중당이 1석으로 여야 균형 의회가 만들어진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는 당시 군부에 대한 염증 민주주의에 대한 추구, 그리고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젊은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가 나타난 선거결과 였다(심지연, 2013: 197-217).
진보정당사 맛뵈기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eunpyeong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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