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전에...
최근 여시 관련으로 논란이 되고 있으나,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자 하는 글이 아닙니다.
저 또한 여시가 비판받을 이유가 있다고 느끼고 있고 그런 문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시 사태를 계기로 낙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래서 낙태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시가 비판받는 이유는 인정하지만 낙태 관련으로 비판받는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닙니다. 낙태가 행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고민이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시사게에 올린 이유는 시사적으로 낙태가 논린이 되고 있고 여시 또한 그 관련으로 큰 논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낙태는 죄인가?
분명히 현행 한국법이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는 과거 유교문화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금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구 선진국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성 신체에 대해 자기결정권이 있고,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종교 교리나, 생명의 존중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특정 종교국가의 시대가 이니며, 생명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하나 태아의 생명은 인간으로서 완성되지 않았고, 모체로부터 독립되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합시다. 태아가 과연 인간과 같은 존재로 존중되어야 할까요?
"강경한 낙태 반대자들은 거의 모두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다. 참된 낙태 지지자들은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비종교적이고 결과론적인 도덕 철학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은 고통을 느낄까?" 라는 벤담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 힐과 브레이는 배아를 죽이는 것과 의사를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중략)
결과론자는 온갖 차이점을 본다. 초기 배아는 올챙이와 겉모습뿐 아니라 감각능력도 비슷하다. 의사는 희망, 사랑, 열망, 두려움, 대량의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미망인과 고아와 그들을 애지중지하는 노부모에게 깊은 감정을 느낄 준비가 된 성장한 인간이다."
"힐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계를 지닌 존재들에게 현실적이고 깊고, 지속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와는 달리 그에게 희생된 의사는 그런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 신경계가 없는 초기 배아는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경계가 발달한 뒤 낙태된 배아가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 비록 모든 고통은 슬픈 것이지만 -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니다. 얼마만큼 자랐든 인간의 배아가 같은 발달 단계에 있는 소나 양의 배아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인간이든 아니든 모든 배아가 도살장에 있는 소나 양보다 고통을 훨씬 덜 느낀다고 가정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이다. 특히 종교의식에 쓰이기 위해 목이 잘릴 때까지 온전희 의식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동물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고통은 측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가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주된 논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는 세속적인 결과론적 도덕철학과 종교적인 절대론적 도덕 철학의 차이에 관심이 있다. 한 사유학파는 배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다른 사유학파는 배아가 인간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종교적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질문을 갖고 논쟁할지 모른다. "발생중인 배아가 개인 즉, 인간이 되는 때는 언제인가?" 세속적인 도덕주의자들은 이렇게 질문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이 인간인지의 여부에 신경쓰지 말라(작은 세포 덩어리에게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보다는 어떤 종이든, 발생 중인 배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언제일지에 관심을 가져라"
리처드 도킨스 ' 만들어진 신' 중에서 453-454p
중요한 것은 고통의 여부죠. 종교적 절대원칙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낙태가 필요할 수 잇고, 그리고 낙태 처벌의 실효성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제 실효성 없는 규정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논의해 봐야죠.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낙태를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합니다. 임신 후 일정 주 이내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허용하는 식으로요. 아직 인간으로서 완성되지 아니한 초기 태아에 대해서 그러니까 24주 이내라던가, 14주 이내라던가 기간을 정해서 우선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낙태 문제로 여시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여시의 다른 독단적, 배타적, 비윤리적 행동이 많고 굳이 낙태 문제를 꺼내지 않더라도 여시에 대한 비판이 가능합니다. 저 역시 그런 비판들이 제기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낙태 문제를 꺼낸다면 바람직하지 않을 결과, 즉 여시 비판이 반페미니즘이라는 여시의 논리에 그대로 휘말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애초에 낙태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면 여시 비판이 여혐이라고 몰고가는 물타기도 줄었을 수 있죠.
낙태가 불법인데 그 글이 여시에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며 비판하나, 여시는 여성의 고민을 나누는 사이트로의 기능이 있습니다. 미혼 임신했는데 임신시킨 남자는 도망갔고 부모는 임신 사실 모르고...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낙태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인터넷 사이트 특히 여성 커뮤니티에서 그 고민을 나눌 수 있습니다. 현행법으로 불법이라 하여 그 법의 타당성이나,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외면한체 무조건 범죄 언급이라서 부당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낙태를 언급하는 것이 여시에서 금지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커뮤니티가 금지한 글을 올린 경우 그 커뮤니티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외부인이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 고민이 절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분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에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저도 남성이지만 그래서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여성의 경험담 등을 접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시의 다른 배타적이고 비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비난하면 될 것이지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하는 낙태 문제를 들어 여시의 비윤리성을 주장한다면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을 두 번 죽이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