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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대체복무제, 진지하게 고민하자
–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논란에 붙여
Wycliff Luke 기자
13일(수), 프레스센터에서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국제앰네스티 기자회견. ©한국엔지오신문, 박미경 기자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광주지방법원은 5월 12일(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헌법에 국방의 의무보다 양심의 자유가 우선하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를 내리면서 판결이 미칠 영향을 의식한 듯 “이번 판결의 작은 불씨가 사회에 큰 변화의 불씨를 일으키기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행법상 양심적 병역거부는 불법이다. 병역법 88조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예외는 없지 않았다. 2004년 서울 남부지법, 200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 같은 예외는 1심에 그쳤고 상급심에선 줄곧 유죄로 결론이 났다. 또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병역법 88조에 대한 위헌제청이 제기됐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잇달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선례에 비추어 볼 때, 광주지법의 판결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무죄를 선고한 바로 다음 날인 13일(수) 인권NGO인 국제앰네스티는 「감옥이 되어버린 삶 :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란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보고서를 통해 “매년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사상ㆍ양심ㆍ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수감 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양심상의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 613명 이상이 수감돼 있다. 이외에 예비군 훈련 거부자(현역 복무를 마친 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도 약 80명 이상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군복무 수행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수감된 모든 사람을 즉시 무조건적으로 석방하고, 이들의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적절한 배상을 제공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되도록 국내법을 개정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병역거부자가 군복무를 완전히 면제받지 않는 경우 이들이 민간 통제를 받고 군복무와 기간이 유사한, 순수히 민간 성격의 적절한 비처벌적 대체 복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분단현실에서 가능한가?
한반도는 남북이 팽팽한 군사대치가 벌어지고 있으며 미-일-중-러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민감한 지점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젊은이들의 군 복무는 일정 수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는 반드시 공론화돼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 복무에 관한 한, 남한은 유연한 태도를 취해도 안보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현재 남한의 국력은 북한과 비교할 바 아니다. 특히 북한은 1990년대부터 식량 부족에 허덕여왔고, 이 같은 식량난은 북한 체제의 존립기반인 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주한미군은 북한군 전력 저하를 감지했다.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도퍼는 자신의 책 『두 개의 한국』에서 1997년 존 틸러리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자신에게 “물자 부족 등 북한 내 전반적인 사정 악화로 북한의 군대가 퇴화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확신했다는 말을 건넸다”고 적었다.
최근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북한군 병사들이 굶주림에 허덕인 나머지 민간인을 살해하고 식량을 탈취해가는 일이 횡행한다는 사실이 공중파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반면 남한은 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데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다. 물론 남북한 군사적 긴장이 언제 어디서 위기상황을 연출할지는 예측불허다. 그러나 현 전력상 북한의 돌출행동에 따른 충격은 얼마든지 상쇄가 가능하다. 즉, 국방의 의무를 넓게 해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한편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폐쇄적이고 구타 가혹 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병영문화 때문이다. 매년 세월호 희생자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군복무 중에 목숨을 잃는다. 특히 선임병사들의 가혹행위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윤 모 일병 구타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 같은 대형 사고에도 별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강원도의 한 포병부대에서 이 모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모 일병은 선임병사들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했고, 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모 일병이 남긴 노트엔 선임병사들이 뺨을 때린 후 실수라고 둘러대는가 하면, “군대만큼 자살하기 좋은 곳이 어딨어, 얼른 자살해”는 식으로 괴롭힘을 가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렇게 억울한 죽임을 당했어도 군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군 당국은 사고가 불거지면 은폐하기 급급하고, 모든 책임을 죽은 병사에게 전가시키는데 사력을 다한다.
만약 군 당국의 주장대로 죽임을 당한 병사가 군 조직에 적응이 어려운 부적격자라면, 징병검사 과정에서 반드시 걸러내 문제의 소지를 없앴어야 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입대자원 감소를 이유로 징병검사 기준을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그나마 이런 기준이 공평하게 적용되면 다행이다. 판·검사, 재벌, 고위공직자 및 그 자녀들은 지위와 재력을 이용해 징집을 피하고 힘없는 집 아들들만 끌려가다시피 입대하는 게 지금 이 나라 현실이다.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국방의 의무를 “전투원뿐 아니라 경찰·재해방지업무, 공익근무, 사회복무 등 대체복무를 포함한 의미”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대체복무를 수용하면서 그 기간과 근무여건 등의 부담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악의적 병역 기피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더 이상 낡은 안보논리와 국민개병제를 내세워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자. 그보다 젊은이의 신앙양심을 존중해주자. 그리고 양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국가에 젊음의 소중한 시간을 바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 그것이 성숙한 국가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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