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24년 만에 누명 벗었다
한겨레 | 입력 2015.05.14. 10:40 [한겨레]
대법, 자살방조 혐의 무죄 선고 원심 확정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유서대필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강기훈씨가 재야단체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벌당한 지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강씨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991년 봄, 노태우 정권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시위와 분신이 잇따랐다.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도 그해 5월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그런데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하고 그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서와 강씨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결 과를 내놨다. 그해 7월 강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이듬해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2007년 김기설씨의 친구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김씨가 작성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제출하자, 재조사가 이뤄졌다. 국과수는 다시 감정해 "전대협 노트와 유서의 필적이 같고, 유서와 강기훈씨의 필적이 다르다"며 과거와는 정반대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토대로 "유서는 김기설씨가 쓴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고 강씨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다.
2012년 10월 대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다만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는 그대로 믿을 수 없으니 심리를 더 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재심 재판에서 또다시 국과수의 감정이 이뤄져야 했다. 검찰은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이 김씨가 쓴 게 아니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국과수에 김씨의 평소 필적과 전대협 노트·낙서장이 동일한지 감정 의뢰했다. 세번째 감정이었다.
국과수는 "김씨의 평소 필적은 정자체이지만 전대협 노트·낙서장은 흘림체여서 감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비교 가능한 부분을 찾아 감정한 결과, 두 필적이 동일 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사실상 전대협 노트가 김씨가 쓴 게 맞다는 취지였다.
이를 토대로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는 지난해 2월 "1991년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해 김씨 자살을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