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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1세가 된 여자입니다. 만으로 29세라고 우겨보려 하지만 결국은 31살이네요...
4-5년동안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다가 3개월 전에 다니던 회사를 이런 저런 이유로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왔어요. 회사,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너무 치여서 당분간 좀 쉬고 대학원 준비를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이래저래 고민이 너무 많아서 맘먹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네요.
떨어져 살던 동안에는 왜 처음에 따로 나가서 살기로 결심했는지 잊고 살았었는데, 들어와보니 딱 한달만에 다 기억이 나더라구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라 간단히만 말씀드리자면, 어려운 가정형편, 복잡한 가족사와 가족관계 그리고 끊임없는 불화... 저는 특히 아버지와 잘 맞지 않아요. 어렸을적 서러움도 많이 당하고 자랐고, 지금도 아버지라 부르고 같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얼굴을 바라보는 것 조차도 어색할 만큼 크게 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제게 불만을 표현하시는게 가장 큰 어려움 인것 같아요. 어머니가 챙겨주려고 노력하시고 감싸주려고 하시기는 해도 경제력이 전혀 없는 어머니는 저보다는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벌어오는 아버지께 의지하실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 그마저도 죄송스럽고 눈치가 보이네요.
집에 있는게 우선 너무 불편해서 하려던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3개월째 시간만 허송세월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꼭 좋은 학교에 합격해서 과정 수료 후에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이 집구석을 벗어나고싶다는 생각만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망상에만 빠져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다시 직장생활을 할까 하고 생각해보면, 또 이도저도 아닌 회사에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하며 매일매일을 불행하게 보내게 될 것 같아 선뜻 내키지가 않네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정형편과 불화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번에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공부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 집에 붙어있어야 하니까요... 며칠전 집에 들어오기 전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봤는데 요즘 너무 고민을 많이 해서 3개월만에 얼굴이며 표정이며 정말 많이 바뀌었더군요...
그러던 중, 설 연휴 직전에 작년 초에 헤어진 전 남친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전화해도 되냐고,,, 헤어지고 서로 번호가 바뀌었던 터라 제 번호를 모르거든요.
5년 동안 불같은 사랑도 했었고, 힘든 시절, 밋밋한 시절들을 보내다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헤어졌습니다. 5년동안 워낙에 헤어졌다 만났다를 많이 반복해서 이 사람은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했었죠. 저도 독하게 끊지는 못해서 5년 중 3년은 헤어지자고 결심하는데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거의 1년가까이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1년이 지났어도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나봅니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더군요...잠시동안...
하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어요. 제가 연락하면 분명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이번에는 어영부영 넘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연락이 다시 오면 내가 정말 그립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인거고, 다시 안온다면 그냥 또 지난 5년을 반복하려고 연락한 것일테니까요.
그런데 또 힘겨운 설 명절을 이 집구석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고 나니, 이사람 다시 만나버릴까 하는 약한 마음이 듭니다.
저보다 6살 위인 이사람, 겉보기에는 부족할 것 없는 남자예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학벌, 글로벌 기업을 다니면서 현재 2억 가까이 되는 연봉, 지금은 살도 많이 찌고 머리도 많이 빠졌지만 같이 다니기 창피할 정도는 아닌 보통의 외모.
좋을 때는 너무 좋았죠...
그런데 이사람 감정기복이 너무 심하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우울해 있는 사람이예요. 노력은 하지만 천성이 좀 이기적인 사람이기도 하구요. 이사람이 우울해져 있을 때 제가 전혀 기분을 바꾸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 우울함을 술로 달래는데 습관이 되어서 매일 퇴근 후에는 술을 마셨습니다. 주말에는 오전부터 마시더군요. 저랑 만난기간동안 술을 안마신 날이 아마 열흘도 안될거예요 이사람. 어느순간에는 도박에도 손을 대더라구요. 지금은 손을 떼기는 했지만 한창 빠져있을 당시에는 하루에 몇천만원을 잃고 딸만큼 정신이 나가있었어요. 술이며 도박이며 그만두게 하려고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는데 제말은 듣지도 않더군요. 뭔가 제가하는 말보다 친구들 말을 더 믿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또 제가 자신보다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면 왠지 모르게 많이 위축감과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존감이 조금 약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거리상으로 떨어져 지낸 기간이 많았는데 그 기간동안 바람을 두번 피웠습니다. 다른건 다 참았는데, 바람은 정말 참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단칼에 끊기엔 제가 너무 바보같아서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고 작년 초에 헤어졌습니다. 그땐 더 좋은 사람을 만날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사람이 다시 연락이 왔네요. 이번에 다시 만나면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습지만, 저 이사람 사랑하기는 해요. 그 사랑이 예전만 못한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더 사랑하게 될 자신도 없지만 한때는 가족보다도 가까웠고, 죽는것 말고는 뭐든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머릿속에는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어떻게 살게될지 벌써 그려지네요. 5년동안 한 고생을 평생 하게 되겠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 변했을지도 몰라... 결혼해버리면 이 집구석을 벗어날 수 있겠지... 공부는 결혼하고 해도 되니까... 아니면 아이낳고 잘먹고 잘사는게 일이나 공부보다 더 행복할지도 몰라... 내 주제엔 그사람이 아마 제일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나이도 먹어가는데 어쩌면 더이상 좋은남자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이게 최선일지도 몰라... 행복이란건 찰나일 뿐이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연락을 해볼까 하구요...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굉장히 긍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오니 정말 기가 다 빠지고 모든것이 부정적으로만 생각되네요. 용기도 없어지구요...
저 서울 탑은 아니지만 상위권 대학 졸업에, 외모도 성형한 곳 하나도 없지만 어디 빠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영어도 유학없이 네이티브랑 아무 문제없이 대화 할 정도이고 가끔 욱 하는 성향 빼고는 어디서나 성격 좋다는 소리 듣습니다. 요리도 즐겨하고 잘 하는 편이구요. 단지 집안 환경이 문제네요. 친구들이나 주위사람들은 제가 보통이상의 집안에서 가정교육 잘 받고 자란 아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그 코스프레 하는 것도 정말 지칩니다. 더욱이 한국은 개인간의 결혼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결혼이라서 저희 집 보면 시집가기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냥 이사람이랑 결혼 할까... 하고 고민이 되네요.
결국 도피성 결혼인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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