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인 한 사람으로
'일부'드립이라는 말이나, 사실은 기독교 '교리' 자체의 문제라는 글을 보며
답답해서 씁니다.
현재 기독교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 몇 개를 들자면
1. 기득권력과 연결된 이른 바 '수꼴' 대형교회의 수상한 커넥션과
2. 전혀 '일부'가 아닌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3. 이미 '진리' 처럼 받아들여지는 과학적 성과에 대해 비논리적 비판을 일관하는데 있지 않을까요?
저는 현상에 대해서는 동감하고 변명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정신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다고 봅니다.
'교리'는, 사실 기독교 정신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기독교가 각 나라에 정착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싸우고 이해하면서
나라마다 특이한 교리를 가지게 되지요.
술문제나 담배 문제에 대해 나라마다 같은 기독교라도 다른 인식을 가지는 것은
교리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리'는 그 나라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시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교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독교 정신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에 큰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기독교 정신은
종교 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란 '이의를 제기하는 자' 혹은 '반론을 제기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 사실은 르네상스, 계몽주의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뿌나'를 보시면 알겠지만 서민이 글을 일고 쓸 줄 알게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게 되지요.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핵심이 서민의 글자 계몽운동이었으며
라틴어 성경만으로 성경 내용을 독점했던 중세 귀족과 신부들의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게 만드는 기반을 제공하게 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또한 칼뱅에 의해 주도된 '예정론'은 흥미롭게도
현대 자본주의를 만드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프로테스탄트 들에게
소박하게 쓰고 열심히 벌어서 쌓은 '부의 증가'가 선택의 표지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노동의 신성함(더 이상 성경 연구하는 귀족뿐 아니라 푸줏간에서 칼쓰는 백정의 노동도
신성하다고 선포함)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출처모를 이상한 죄책감을
씻어 주는 논리적 기반으로 기독교를 취하면서 생기게 되지요.
이의를 제기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은 미국에 나라를 세웁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 없었던 시민 주권을 만들지요.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도 그 때 생겼지요.
독립전쟁으로 왕권통치주의자가 축출되고
남북전쟁으로 북쪽 자본주의자들이 남쪽 장사꾼(노예제 찬성)을 이기게 되어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가 실험에 들어가게 되지요.(막스베버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미국은 엄청난 자본을 전 유럽에 쏟아 부어
가난으로 혹시 생길지 모르는 공산주의 혁명과 대치했지요.
이를 통해 전 유럽이 사실상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이 도입되고 현재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뿌리에 기독교가 있지요.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록 종교와 현실 사이에 모순이 더 커지고
둘 사이에 다리를 놓기가 더 힘들어진다'(자크 엘룰, 하나님이냐 돈이냐)는
말 처럼 사실상 자본주의의 주인인 자본가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기독교에 기대고
목사들도 이에 동조하게 되지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든 교회에 십일조만 하면 나는 의인이라는 잘못된 방식이
(마치 천주교 부패로 면죄부가 생겼던 것 처럼)
미국 교회 전반, 그리고 특히 한국 교회를 지배하게 되지요.
개인의 삶이 어떻든 조직의 목적에 자기의 모든 영적인 짐을 맡기고
꺼리낌 없이 사람을 탄압하는 사람을 자크 엘룰(프랑스 신학자)는 위선자라고 했지요.
정리하자면
1. 번 문제 기득권력과 기독교의 수상한 커넥션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리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하나님께 축복받는 사람이라며 떠들어대는 '교리'에 엄청난
문제가 있습니다.
2. 전혀 '일부'가 아닌 기독교인의 부패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 이후 2000년 동안 현실 교회가 현재보다 덜 부패한 역사는 거의 없습니다.
늘 기독교는 기득권력 그 자체이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바퀴를
굴려온 선각자 이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의 현재 개독교는 전자에 다름아니라고 생각됩니다.
(3.의 문제 과학도 마찬가지지요. 과학을 핍박한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기득권력 그 자체였지요.)
우리가 지금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으로
'인간이 만든 가장 순수한 시스템'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지요.
이 민주주의의 기본 뼈대와 기반을,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실제로 부딪히고 싸운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 입니다.
기독교 정신은 거칠게 표현하면
'현재 상황의 모순과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용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본주의 사상에 의해 모든 기독교의 덕이 다 부정되는 현실에도
용기 없는 겁쟁이만은 변명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c.s.lewis, 순전한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자리에 있으려면 '생명'을 걸어야 하는데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세상이 성경에서 배운대로 살기 너무 어렵고
또 많은 개독교인으로 만신창이가 된 세상이지만...
아직도 기독교 정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다고 봅니다.
차별받지 않고 폭력에 의해 굴복되지 않고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세우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해왔던 것처럼
또 하나님은 모르지만 '진리'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켜온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그러하였던 것 처럼
'굴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글 길게 써서 죄송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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